난삽의 극치, ‘로맨틱 아일랜드’

로맨스도, 휴식의 섬도 없는 영화

난삽의 극치, ‘로맨틱 아일랜드’

‘참, 배짱 좋다!’라는 말이 시사회장을 떠나면서 솟구친다!

1,000원짜리 중국산 김밥을 사먹으면서도 ‘단무지가 달다, 시금치가 질기다,

한 개 시켰다고 국물도 안주느냐!’고 타박하는 것이 사람 마음이다. 그러니 극장

입장료 7,000원을 받아 챙기려면 뭔가 가슴 뭉클한 사연이나 2시간을 몰두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로움을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2006년 공개된 비슷한 제목의 할리우드 영화 ‘로맨틱 홀리데이(The Holiday)’처럼

사랑의 상처를 치유 받으려는 여성의 심리나 바람둥이 남성들의 속물근성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나?

그도 아니면 영화 중 영화음악 작곡가 마일스 역의 잭 블랙처럼 천연덕스러움과

푸근함을, 영국 배우 쥬드 로의 기품 있는 섹시함을, 아니면 카메론 디아즈나 케이트

윈슬렛 같은 유명 배우의 연기를 본다는 이름값을 내세우던가.

이에 비해 ‘로맨틱 아일랜드’는 왜 이런 영화를 만들었는지를 의아하게 만들면서,

이런 걸 극장에 내걸고 관객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보겠다는 정신에 그저 경악스러움을

느낄 뿐이다.

배경만 아름다운 영화

필리핀 휴양지 보라카이. 오만함이 가득한 중소기업 CEO 재혁(이선균 분), 직장

상사 등쌀에 못 이겨 통장을 털어 첫 번째 해외여행에 나선 중소기업 여직원 수진(이수경

분), 영문과 출신이지만 영어 면접에서 번번이 낙방해 본의 아니게 백수 신세인 정환(이민기

분), 아이돌 스타지만 악플에 시달리다 훌쩍 외국 휴양지를 찾은 인기 가수 가영(유진).

그리고 뇌종양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자 가족을 위해 생명 보험을 가입한 뒤 죽을

공간을 찾아 필리핀에 온 우유 배달 보급소 사장 중식(이문식 분)과 아내 연숙(이일화

분).

각기 사연이 다른 이들이 낯선 외국 관광지에서 펼쳐놓는 좌충우돌이 스토리의

얼개를 이룬다.

시종 양미간 주름을 잡으며 놀러 와서도 정장 차림을 고집하는 이선균. 그는 주인공이

방향타를 잘못 잡으면 배가 산으로 올라간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 주신다.

그는 필리핀에 거주했던 아버지의 죽음을 확인하게 위해 왔지만 부친 장례식에

참석하기를 거부한다. 그가 왜 부자지간의 정을 그악스럽게 끓어야 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의 인상 찡그리는 연기는 불편함을 준다.

백수 이민기. 초등생이 국어 교과서를 읽는 듯 한 어리바리 대사 처리가 그의

콘셉트인가? ‘바람피우기 좋은 날’에서 발칙스런 유부녀 김혜수의 꼬임에 넘어가

불륜의 노리개가 되는 대학생 역을 그는 여기서 되풀이한다.

문근영이 ‘어린 신부’에서 각인된 학생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해 한동안 침체기를

겪다가 신윤복 화백의 일대기를 그린 ‘바람의 화원’으로 옹골찬 연기를 입증한

본보기를 모방하지 못한다면, 그는 연기 인생을 빨리 끝내 주는 것이 좋겠다. 헤어스타일

하며 어투가 유치의 극단을 보여 준다.

인기 가수 유진. 졸작 ‘그 남자의 책 198쪽’의 은수 역에 이어 이 영화에서

그녀는 시종 히스테리를 부리는 여가수 역을 맡아, 유명세를 치러야 하는 연예인의

가슴 아픈 속내를 드러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녀가 시도 때도 없이 내지르는 괴성은 보는 이들의 짜증지수까지 한꺼번에

수직 상승 시킨다.

그리고 아무리 외국 여행이 정신과 마음을 느슨하게 만든다 해도 어떻게 인기

가수로 설정된 이가 백수 청년과 침대에서 성적 유희를 벌이는 장면을 보여줄 수

있단 말인가?

‘마파도’에서 등장만으로도 웃음을 선사한 이문식. 그는 이 영화를 짐 캐리의

‘덤 앤 더머’로 알고 있다. 보트를 타고 가다 자살을 시도하는데 강물이 얕아서

실패한다. 그리고 ‘죽을 뻔했다’며 허우적댄다. 이게 웃음을 터트리는 코미디 반전의

영상인가?

연출자도 105분 내내 배우의 연기와 영상을 이끌어 가는 직조(織造)의 힘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같은 날 개봉하는 미국 영화를 이긴다면…

시사회에서 필리핀의 마피아 조직원으로 카메오 출연한 개그맨은 “같은 날 개봉되는

키아누 리브스의 ’지구가 멈추는 날‘의 흥행을 멈추게 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지구가 멈추는 날’은 한국 흥행이 염려되는 지극히 미국적인 영화다.

이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로맨틱 아일랜드’가 관객 동원 수에서 제압한다면

필자는 한국 영화에 대한 일체의 프리뷰를 중단하겠다.

똑똑하고 지적이며 혜안을 갖춘 관객들보다 먼저 영화를 관람한 뒤 자의적이고

주관적인 험담을 풀어 놓은 것에 대한 자숙의 의미에서 하는 선언이다.

곰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이 영화에서 건질 볼거리는 단 하나다. 필리핀의 대표적

휴양지 보라카이가 보여주는 잉크를 풀어 놓은 듯 한 오염되지 않은 푸른빛 바다다.

필자가 사는 인천 앞바다의 똥덩어리와 온갖 오물과 비교되면서 유람 욕구를 자극했다.

12월 24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올해 크리스마스 이브를 망칠 각오를 하신 분들만

보시길.

    코메디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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