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사]“존엄사 결정, 대법원 판결 따르겠다”
존엄사 재판, 2심 건너뛰고 대법원으로 ‘비약적 상고’
지난달 28일 1심 법원으로부터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김 모(여·76) 씨의 평소
뜻에 따라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라’는 판결을 받은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은 17일 2심에
항고하지 않고 바로 대법원에 최종 법률적 판단을 해달라는 ‘비약 상고’를 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비약 상고(飛躍上告)는 1심 판결에 대해 제2심(항소심)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대법원(상고심)에 상고하는 것을 말한다. 비약 상고를 하려면 1심 판결에서 승소한
원고 측(김씨의 가족)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박창일 연세의료원장은 이날 오전 11시 기자회견을 열고 비약 상고 결정 이유를
△환자의 기대 여명이 3~4개월 정도이며 △1심 판결에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10조
'응급 환자에 대한 진료를 중단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의 적용에 있어 과오가 있다고
판단되며 △2004년 보라매병원 사건에서처럼 의료진의 인공호흡기 제거가 살인죄로
처벌받지 않으려면 사망 시기가 임박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1심 판결에서는 이에
대한 언급 없어 기존 판례에 배치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박 원장은 “지난 4일 1심 법원으로부터 판결문을 송달 받고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종교인, 언론인, 법조인, 의료인 등이 참여하는 윤리위원회를 그 동안 7차례
열어 의견을 모았다”며 “환자와 보호자의 고통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현실적 고려와
어떠한 경우에도 인간의 존엄성을 최대한 지켜야 한다는 명제 모두를 만족시키기
위해 항소 없이 바로 대법원에 비약 상고를 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병원 측은 곧 비약 상고 절차에 따라 원고 측과 상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가족
측 변론을 맡고 있는 법무법인 해울의 신현호 변호사는 이날 “현재 가족 입장에서는
비약 상고를 결정한 세브란스병원의 방침에 동의를 해주지 않을 수 없다”며 “동의를
해주지 않으면 병원 측이 2심 항소 절차를 진행할 것이고, 그럴 경우 2심 판결에
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가족 측이 병원 측의 비약 상고에 동의할 경우 빠른 시일 내에 대법원 심리가
시작돼 한국 최초의 존엄사에 대한 결정이 내려질 전망이다. 세브란스병원 측은 18일까지
비약적 상고장을 대법원에 제출할 예정이다.
서울서부지법은 지난달 28일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김 씨의 자녀들이 세브란스병원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김씨의 평소 존엄사 의사를 인정, 김 씨의 인공호흡기를 병원 측이 제거하도록
판결한 바 있다.
김 씨는 지난 2월 기관지 내시경 검사를 받던 중 식물인간 상태에 빠졌으며, 현재
뇌간 기능만 일부 유지되고 있고, 자발적 호흡은 극히 미약해 인공호흡기 없이는
연명이 불가능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