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격자 진술, 100% 믿으면 안된다?
목격자의 착각 가능성을 실험으로 증명
사건을 자신의 눈으로 본 목격자의 진술은 결정적 중요성을 갖는다. 그러나 가끔
목격자에 의해 진범으로 주장돼 무기징역을 받은 사람 중에서 나중에 다른 진범이
드러나면서 무죄 석방되는 ‘목격의 오류’가 가끔 확인되기도 한다.
이처럼 목격이 오류를 범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의 단서를 밝혀주는 연구가
미국에서 발표돼 화제가 되고 있다.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 심리학자 제이슨 첸 박사 팀은 대학생 36명과 은퇴자 60명을
대상으로 목격의 진실성을 실험했다.
실험은 우선 이들에게 테러리스트의 비행기 공중납치를 다룬 ‘24’란 제목의
TV 드라마를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됐다.
실험은 순서대로 1.드라마 시청 직후 피실험자 절반(A 그룹)만
드라마의 내용에 대해 묻는 퀴즈식 시험을 치렀다. 나머지 절반(B 그룹)은 시험을
치르지 않았다.
2. 30분 뒤 피실험자 전체는 드라마 내용에 대해 참과 거짓이
섞여 있는 요약을 들었다. 예를 들자면 ‘극 중 테러리스트는 주사로 승객을 마취시켰다’(참),
‘마취약 천으로 입을 막아 승객을 마취시켰다’(거짓)는 등으로 피실험자들을 헷갈리게
만드는 내용이었다.
3. 이러한 설명 뒤에 A그룹에 실시한 퀴즈식 시험을 전체가 치렀다.
결과는 놀라웠다. A
그룹에서 대답이 틀린 경우나 질문 자체에 대답 않고 공란으로 비워 둔 경우는 더욱
많았던 것이다.
첸 박사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첫 번째는 목격 직후 시험을 치르는
것이 오히려 잘못된 정보를 뇌에 입력시킬 수 있다는 것이며, 두 번째는 기억을 되살리는
과정이 기억의 내용을 모호하게 만들지 모른다는 가능성이다.
이 실험이 의미 있는 것은 보통 목격자들의 첫 번째 행동이 112번으로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보자마자 퀴즈 문제에 답해야 했던 A 그룹과
같은 상황에 처한다는 것이다.
첸 박사는 “어떤 내용에 대해 첫 번째로 회상할 때 우리의 뇌는 제3자의 잘못된
진술을 받아들이기 쉬운 상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때 제3자의 잘못된 진술에는
경찰, TV, 변호사 등으로부터 들은 내용이 포함될 수 있다.
첸 박사는 “사건을 더 빨리 기억해야 할수록 잘못된 정보가 들어갈 가능성은
높아진다”고 말했다.
기억 회상 과정에서 ‘잡기억’이 끼어들 수도
인간의 기억 과정에 대한 연구 결과, 뇌는 단기 기억 내용을 장기 기억으로 변환해
저장하며, 같은 내용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여러 번 단기 기억될수록 장기 기억이
좋아진다는 것이 정설이다. 단기 기억을 장기 기억으로 바꾸는 과정을 응고화(consolidation)라
부른다.
옛날 기억이 되살아나려면 장기 기억이 단기 기억 속으로 들어와야 한다. 이처럼
장기 기억이 단기 기억으로 바뀌는 과정은 재응고화(reconsolidation)라고 불린다.
첸 박사는 “기억의 단편들이 재응고화될 수 있음을 이번 연구는 보여준다”고
말했다. 즉 과거의 단편적 기억이 현재의 단기 기억에 끼어들면서 목격자를 헷갈리게
만들 수 있으며, 방금 목격한 사건에 대해 정확히 기억하려고 서두를수록 이러한
헷갈림은 심해질 수 있음을 이번 실험이 보여줬다는 설명이다.
잘못된 정보가 기억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을 1970년대에 처음 제시한
캘리포니아주립대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로프터스 박사는 이번 연구에 대해 “정말
놀라운 결과”라고 평가했다.
그녀는 “보통 시험이 기억력을 향상시킨다고 하지만, 이번처럼 시험이 오히려
기억 형성을 방해하는 경우도 있음을 이번 연구는 보여 줬다”고 평가했다.
이 연구 결과는 심리학 전문 학술지 ‘심리 과학(Psychological Science)’ 최신호에
발표됐으며, 영국 과학전문지 뉴사이언티스트 등이 최근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