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연말 무기력 증후군’ 확산
우울한 연말…모임 피하고 새해 계획도 못세워
세계적 금융 위기와 경제 불황으로 여느 때보다 침체된 연말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한 해를 마무리 하는 12월의 분위기가 예년 이맘때와는 사뭇 달라 거리의 캐럴
송보다 여기저기 한숨 소리가 더욱 크게 느껴진다.
서울 강남구에서 웹 디자이너로 일하는 황시영(27세, 가명)씨는 요즘 무기력감에
시달리고 있다. 황 씨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지고, 거리에 연말 분위기가
시작된 것이 오히려 달갑지 않다”며 “뭐 하나 이룬 것 없이 직장 분위기까지 뒤숭숭하니
연말 기분은커녕 새해가 두렵기만 하다”고 말했다.
연말이 되면 몸이 약해지고 감정의 기복이 심해지며 활력이 떨어져 우울해 하는
심리변화를 ‘연말증후군’이라 하는데 올해 연말증후군은 그 어느 해보다 심각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한 취업 포털에서 직장인 1000여명을 대상으로 ‘연말증후군’에 관해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반이 연말증후군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23.2%는 연말증후군이 우울증으로 발전한 경험이 있다고 대답했다. 올해는
경제위기 등으로 연말증후군이 더욱 심해질 전망이다.
“남들은 즐기는데 나만…” 자책감으로 발전
고려대 안암병원 정신과 이민수 교수는 “연말의 심리 변화는 한 해에 다 이루지
못하고 놓친 것들에 대한 보상 심리 때문에 나타난다”며 “열심히 일하고 노력해
목표를 이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 해를 정리하는 연말이 뿌듯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상대적 박탈감으로 연말에 더욱 무기력함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연말증후군이 확산되면서 사회 전체가 몸살 감기에 걸린 것 같은
양상이 나타난다”며 “지난 한 해 동안 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다는 좌절감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하면서 새해에는 뭔가 반드시 이루겠다는 자기 암시를 의도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말증후군에 시달리는 사람의 증세는 우선 각종 연말 모임을 부담스럽게 여겨
피하며, 참석하더라도 전혀 즐거워하지 않는 형태로 나타난다. 연말 분위기를 즐기는
사람이 못마땅하게 느껴지는 한편 왜 나는 즐기지 못하나 하는 자책감으로 발전한다.
새해 계획도 세우기 어렵다. 연세대의대 세브란스병원 정신과 민성길 교수는 “연말이
즐겁지 않으면 새해 계획에서도 가치를 못 느낀다”며 “연말증후군에 빠진 사람은
음주, 흡연에 매달리면서 더욱 우울해지는 악순환에 시달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몸-마음 바삐 움직여 좌절감에 틈 주지 말아야
연말증후군에 대한 대책으로 민 교수는 “모든 책임을 ‘내 탓’으로 돌리지 말고
‘나는 최선을 다했지만 외부 환경의 변화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스스로를 위안하면서
다시 한번 ‘으싸 으싸’ 하는 마음으로 재충전 시간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연말증후군에 빠진 사람은 골방에 숨으려는 경향이 강해진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혼자 있으면 더욱 초라하게 느낄 수 있으므로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응어리를
적극적으로 풀어내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몸을 움직이는 것도 연말증후군 극복에 도움을 준다. 골방에 머물지 말고 밖으로
나가 가볍게 운동을 하면 기분전환에 도움이 된다.
이밖에 주위 사람들에게 조그만 선물하기, 불우이웃 돕기, 한해 동안 잘했던 일
스스로 칭찬하기 등의 방법으로 무기력감, 우울감이 느껴질 틈을 주지 않는 것도
연말증후군을 벗어나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