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드의 적은 이제 환경오염
5년만에 재등장한 007 ‘퀀텀 오브 솔러스’
제임스 본드가 온다!.
학창 시절 종로 3가 단성사나 피카딜리에서 상영된 007 제임스 본드 시리즈는
늘 장사진을 이룬 오락극의 대명사다.
본드가 걸어 나오며 관객을 향해 권총을 쏘고, 1급 가수들의 주제가를 배경으로
늘씬한 본드 걸의 나신(裸身)을 실루엣 처리한 영상 등은 007이 20세기 오락영화의
사상 최장기 시리즈물로 장수를 누린 원동력이었다.
특히
007 제임스 본드 권총으로 알려진 발더 PPK(Walther Polizeipistole Kriminalmodell)
권총은 블로우백 방식 반자동 권총으로, 한국에서는 10.26 사건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박정희 전 대통령와 차지철을 향해 쏜 총으로 알려지면서 더욱 유명세를
탔었다. 이후 피어스 브러스넌의 <007 네버 다이>는 월터 P99 권총을 선보였다.
007은 90년 구 소련이 예상치 못하고 붕괴되면서 제작이 근 5년 동안 중단되는
곤욕을 치렀다.
62년 숀 코넬리의 <닥터 NO>로 시작된 영국 첩보원 본드의 활약상은 구
소련이 자행하는 세계 평화 위협을 제지하는 것이 1차 목적이었고 이런 스토리 구조는
자유세계 시민들의 애국심을 규합시키는 일등 공신이 됐다.
소련 붕괴 뒤 본드의 상대방은 아랍 테러리스트를 거쳐 북한, 통신위성으로 세계
제패를 노리는 미디어 그룹까지 이어졌다.
<카지노 로얄>로 피어스 브로스넌에 이어 6대 제임스 본드의 영예를 차지한
영국 배우 다니엘 크레이그의 22부 본드 <007 퀀텀 오브 솔러스>는 흥미롭게도
물 부족 문제를 거론하고 있다.
‘녹색 성함’ 쓰는 악당을 물리쳐라
악당
도미닉 그린(마티유 아말릭)은 외형적으로는 친환경주의자. 환경기업 '그린 플래닛'(Green
Planet)의 최고경영자이자 '그린'(Green)이라는 성까지 갖고 있다.
하지만 그는 친환경주의자를 표방하며 자선 파티를 열어 지구 온난화의 위험성을
알리는 데 힘쓰지만 실은 '퀀텀 오브 솔러스'라는 거대 조직의 수뇌로 살인과 납치를
서슴지 않는 악당이다.
그는 볼리비아 군부를 도와 황무지 독점 개발권을 확보하기 위해 애쓴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아 쓸모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거대한 댐이 있어 물을 팔 수 있는
곳. 이런 그린의 음모를 본드가 저지시킨다는 것이 주요 스토리다.
공익
광고를 유심히 본 독자들은 짐작할 수 있겠지만 물좋고 산좋은 한국도 30여년 뒤에는
물 부족 국가로 전락할 것이라고 한다. 사우나, 자동차 세척, 화단 가꾸기로 흥청망청
물을 써대고 있지만 곧 물 부족으로 우리끼리 아우성을 칠 날이 남지 않았다는 징조는
여기저기 보인다.
이번 본드 걸은 좀 약한 느낌?
환경 오염에 물 부족, 거기에 날로 혼탁해져 가는 대기 오염. 필자는 예비 신혼
부부들이 결혼해 자식 낳는 것도 이제는 큰 죄악을 자행하는 것이라는 극단적인 생각도
하고 있다.
어쨌든 다시 본드로 돌아와서!
이탈리아의
명소 투스카니 마사-카라라 지역에서의 자동차 추격 장면으로 시작하는 오프닝은
역시 007 본드다운 긴박감을 보여준다.
다니얼 크레이그의 신장은 178cm. 1대 본드 숀 코너리 189㎝, 티모시 달튼과 로저
무어가 188㎝와 185㎝, 피어스 브로스넌 187㎝인데 비해 역대 본드 중 최단신.
그렇지만 그는 영화 속에서 혈혈단신으로 악인들과 추격전을 벌이면서 기와 지붕을
뛰어 다니고 수송기를 몰다 낙하산 없이 스카이 다이빙을 하는 등 몸사리지 않는
격투 장면을 통해 역대 최고의 본드 액션을 보여주고 있다.
아쉬움이 있다면 우선 우크라이나 출신 본드 걸 카밀 역의 올가 쿠리엔코가 본드
걸 특유의 섹시미를 풍겨주지 못했다는 점.
또 하나 두란 두란, 마돈나, 셜리 베시, 쉐릴 크로우, 폴 맥카트니 앤 윙스, 칼리
사이먼, 아하 등 내노라 하는 1급 뮤지션들의 불러준 007 테마 곡은 팝 팬들에게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잭 화이트와 알리시아 키스가 부른 듀엣곡
‘Another Way to Die'가 별 감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 결정적 흠집이 되고 있다.
하지만
106분 동안 본드가 펼치는 숨 가쁜 활약상과 직속 상사 M(주디 덴치)과의 갈등 때문에
본드의 일거수일투족이 인공 카메라로 체크 당하는 장면 등은 할리우드의 영상 테크닉
발달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11월 5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 추신
1. 본드가 그린을 쫓아간 볼리비아의 거리에서 시민들은 ‘월급의 반이 물 값으로
나간다’고 푸념한다. 지금 지하철 매점에서 500ml 생수 한 통을 800원에 사서 먹고
다닌다. 20년 뒤 80만원이 안되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2. 라스트. 물을 갖고 농간을 부리는 그린과 본드가 대결하는 곳은 거대한 댐으로
물줄기가 막혀 사막이 된 지역. 그린은 볼리비아 상수원의 60%를 소유하고
정부로부터 식수 공급권을 독점 양도받기로 하는 데 성공하지만 본드의 기습을 받고
사막에 혼자 버려지는 신세가 된 것.
물과는 한참 떨어진 곳에 악당을 내려놓으며 본드는 ‘곧 이거라도 마시고 싶어질
것’이라며 엔진 오일 1병을 그에게 건넨다. '공공의 재산인 물을 가지고 장난치지
마라'는 충고. 얼마 후 사막에서 발견된 시체 몸 안에서 ‘오일 성분이 발견됐다’고
M에게 보고된다.
정부나 기업에 반강제적으로 협찬금을 받은 뒤 모은 기금을 일부 직원의 사금고로
남용해 요즘 사법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는 국내 환경 단체들도 자동차 엔진 오일을
받아야 할 때다.
3. 영국 TV 채널은 본드 차에 대한 여론 조사에 2,300여명이 참여했으며, 1등은
1964년 '골드핑거' '썬더볼트' 등에서 선보인 'The Aston Martin DB5'가 차지했다고
발표했다.
'골드핑거'에서 13분간 화면을 장식한 '애스톤 마틴 DB5'는 앞 범퍼에 브라운색
자동 기관총을 장착했고 도로 주행에 맞추어 헤드라이트가 자동으로 움직이는 등
첨단 장비를 자랑했다.
같은 메이커의 최신 모델 'DBS'는 다니엘 크레이그가 새 본드로 등장한 2006년작
'007 카지노 로얄'서부터 본드 카로 등장한다. '재구어 E-타이프'과 '미니 쿠퍼',
'애스톤 마틴 V8 밴티지' '어스틴 미니'가 각각 2-5위를 차지했다. 본드 시리즈는
다양한 자동차 모델을 등장 시켜 자동차 마니아들의 호기심과 구매 열기를 자극해
오고 있다.
4. 영화 촬영지는 칠레의 안토파가스타를 비롯해 멕시코, 오스트리아, 이태리,
파나마, 스페인 등의 주요 관광지와 해변이다. 7000원의 입장료로 크루즈 여행을
온 듯한 시원한 풍광을 맛보게 하는 것도 본드 영화의 보너스다.
5. 007의 단골 설정인 본드와 본드 걸의 야릇한 로맨스 장면. 아쉽게도 신작에서는
오금을 저리게 만드는 19세 이상 장면이 없으니 큰 기대는 하지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