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딩크 ‘마법의 리더십’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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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팀보다 ‘가능성 있는 팀’ 선택
모든 조직의 성공여부는 리더와 구성원 간의 마음이 하나가 되느냐 아니면 따로 노느냐에 달려 있다. 그것은 가치와 목표의 공유에서 나온다. 리더가 구성원들의 가슴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하기 위해선 우선 서로 뜻이 맞아야 한다.
2002년 한국축구대표팀의 목표는 ‘자나 깨나 월드컵 16강’이었다. 선수자신들도 그랬고 국민들도 그랬다. 히딩크는 오자마자 “내가 한국축구의 해답은 아니지만 16강이 꼭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라며 선수들의 가슴에 슬슬 불을 지르기 시작했다.
히딩크는 “팀의 목표는 선수단 전체가 같이 해야 한다. 그들 앞에서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설명하고 완벽한 공감을 이뤄내야 한다. 감독은 선수들에게 목표를 제시하고 선수들로 하여금 스스로 자신의 역할을 알게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목표 즉 비전이 제시되면 그 다음에는 팀 빌딩(Team building)을 해야 한다. 팀 빌딩을 잘하면 그 리더는 50% 이상은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히딩크의 팀 빌딩 방식은 뭘까?
히딩크는 우선 잘 나가는 팀을 맡지 않는다. 최고의 팀을 맡지 않는다. 철저하게 그 가능성을 보고, 한번 도전할 만한 팀인가 아닌가를 따진다. 물론 히딩크도 네덜란드 대표팀이나 ‘지구 방위대’로 불리는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 같은 팀을 맡은 적이 있다. 성적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네덜란드대표팀 감독일 때는 승부차기에 울었다. 유로96 때는 프랑스와의 8강전 승부차기에서 4-5로 무너졌다. 98프랑스월드컵 때는 브라질과의 4강전에서 1-1로 비긴 뒤, 역시 승부차기에서 2-4로 졌다.
프랑스월드컵 직후, 히딩크는 98~99시즌 레알 마드리드 감독으로 부임했다. 마침 레알 마드리드엔 98프랑스월드컵에서 6골로 득점왕을 차지한 크로아티아의 다보르 수케르(1968년 출생)와 유고대표팀 출신의 미야토비치(1969년 출생, 현 레알 마드리드 단장) 그리고 스페인 토종인 라울(1977년 출생) 모리엔티스(1976년 출생) 등이 있었다.
히딩크는 당시 20대 초반인 라울과 모리엔티스를 중용했다. 그리고 그 뒤를 노련한 미야토비치로 하여금 받치게 했다. 결과적으로 당시 서른의 노쇠한 수케르는 거의 벤치신세를 면치 못했다. 히딩크는 젊은 선수들을 키워 팀을 장기적으로 튼튼한 팀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성적이 문제였다. 라이벌 바르셀로나는 1위를 질주하고 있는데, 레알 마드리드는 2위 유지도 아슬아슬 했다.
언론에선 거액 연봉자이며 월드컵 득점왕 출신인 수케르를 벤치에 앉혀놓는다고 연일 비난을 퍼부어댔다. 결국 데포르티보와의 시즌 전반기 마지막 19라운드 경기에서 0-4로 대망신을 당했다. 그때부터 경질설이 나돌았다. 그리고 후반기 99년 1월 바르셀로나와의 숙명의 일전에서 0-3으로 처참하게 무너졌다. 결국 떠날 수밖에 없었다. 6개월 단명감독(11승4무9패). 히딩크로선 두고두고 잊지 못할 쓰라린 경험이었다.
주목받은 “북한 팀 맡고 싶다”는 언급
그러나 히딩크가 뿌린 씨는 레알 마드리드의 기둥으로 자랐다. 라울과 모리엔테스, 카시야스(1981년 출생)가 바로 그들이다. 히딩크는 레알 바티스 등 다른 스페인 프로팀에서 감독생활을 했지만 성적은 별로였다.
히딩크는 스페인생활 이후 크게 달라졌다. 그 이후 두 번 다시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았다. 우선 팀을 맡을 때 최고의 팀보다는 가능성 있는 ‘될성부른 팀’을 골랐다. 프리미어리그 명문 첼시나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에 수없이 물망에 올랐지만 결코 마음을 주지 않았다. 대신 한국, 호주, 러시아 등 축구 변방 팀을 택했다.
히딩크는 말한다. “내가 일부러 그런 팀들만 고른 게 아니다. 그들이 나를 고른 것이다. 나도 강력한 우승후보 팀을 맡고 싶다. 하지만 한국, 호주, 러시아가 그런 정도의 성적을 냈다는 것은 우승 못지않게 대단한 것이다.”
그러나 결국 선택은 다른 사람 아닌 히딩크 자신이 한 것이다. 히딩크는 요즘 사석에서 농담반 진담반으로 ‘북한 팀을 한번 맡고 싶다’고 말한다. 그의 러시아 대표팀 계약은 2010년 남아공월드컵까지이다. 어쩌면 남아공월드컵이 끝난 후 히딩크가 북한감독으로 나타날지도 모른다.
히딩크는 네덜란드대표팀 이후 승부차기에서도 지지 않았다. 그 비결은 상대 주전골키퍼의 습성까지 파악하는 철저한 준비에 있었다. 2002 월드컵 한국-스페인 8강전 승부차기에서 5-3 승리. 2005년 4월 아이트호벤-리옹의 챔피언스리그 8강전 승부차기 4-2 승리. 2005년 11월 호주-우루과이 독일월드컵 플레이오프 2차전 승부차기 4-2 승리.
히딩크는 어떤 선수를 좋아할까? 역시 젊고 가능성 있는 선수다. 일단 그의 말을 들어보자.
“여기 2명의 선수가 있다. 한 명은 기술이 뛰어나고, 한명은 기술은 좀 모자라지만 헌신적이다. 난 단연코 헌신적인 선수를 뽑을 것이다. 나의 선발 기준은 ‘사력을 다해서 뛰는 헌신성’이다. 내가 진정 선수들에게 원하는 것은 넘치는 에너지와 집념이다. 한국과 러시아에서 대표팀에 대한 자부심과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 선수는 절대 뽑은 적이 없었다. 러시아도 처음에는 FIFA(국제축구연맹) 랭킹 30~34위에 불과했지만, 내가 책임감을 강조했고 이에 선수들이 잘 반응한 덕분에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내가 아는 한국선수들은 팀을 위한 희생정신이 투철하다. 러시아에서도 대표선수들을 선발할 때 이러한 부분을 우선적으로 고려해 팀을 꾸렸다.”
2002년 월드컵 때 히딩크는 고종수와 이동국을 버렸다. 두 선수는 한국의 최고 테크니션이었는데도 그의 선택은 냉정했다. 그는 말했다. “고종수는 기술은 타고났다. 하지만 현대축구에선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히딩크는 러시아 팀을 맡자마자 노장 선수들을 대거 퇴출시켰다. 그리고 파블류첸코, 아르샤빈(이상 1981년 출생) 같은 중견선수들과 비스트로프(1984년 출생), 빌랴레트디노프(1985년 출생), 아킨페에프(1986년 출생) 등 젊은 피를 대거 수혈했다. 평균 나이 26.16세. 유로2008 참가 16개 팀 중 가장 젊은 팀이었다. 2002월드컵 당시 노장이었던 황선홍(1968년 출생)은 회고한다.
“그 때 난 처음으로 주전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나라고 히딩크가 선발을 보장해줄 리가 없었다. 히딩크는 선수단을 자유자재로 조율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그는 정말 불가능한 일을 현실로 보여준다.”
“똥볼 차도 좋으니 겁내지 말고 마음껏 차라”
젊음의 특권은 무엇인가? 그것은 한번 상승세를 타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겁 없이 돌진한다는 것이다. 도대체 세상에 무서울 게 무언가? 하지만 새파랗게 젊다고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자신감이 철철 넘쳐야 한다. 주눅 들면 한순간에 풍선바람 빠지듯 피그르 사그라진다.
히딩크는 바람 넣는 데 천재다. 히딩크는 한국선수들에게 ‘똥볼을 차도 좋으니 제발 소심하게 슈팅을 자꾸 미루지 말라’고 했다. 겁내지 말고 너희들 생각나는 대로 마음껏 한번 해보라고 자꾸 불을 땠다. 히딩크는 말한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팀의 실수는 100% 상대의 골로 연결되는 반면, 한국팀은 왜 상대의 실수를 골로 연결시키지 못하는가? 한국선수들은 기술적으로 절대 유럽선수들에게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창조적이지 못하다. 특히 젊은 선수들은 선배들이 무엇인가 해주기를 바란다. 스스로 상상력을 맘껏 발휘해 플레이를 해나가야 할 나이에, 위를 바라보고 있다니 안될 말이다.”
“한국선수들은 기술이 좋다. 하나같이 양발을 자유자재로 쓴다. 유럽선수들 중에서 양발을 한국선수처럼 자유자재로 쓰는 선수는 그리 많지 않다. 한국선수들은 약하다고들 하는데 난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문제일 뿐이다.”
“유럽선수들은 실력이 뛰어나 자기 포지션에서 어떠한 역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자기 생각과 맞지 않을 때는 강하게 불만을 표시한다. 개성이 너무 강해 도리어 팀워크를 다지는 데 해가 될 수 있다. 한국선수들은 수동적이긴 하지만, 그 뜨거운 열정과 성실성은 세계 으뜸이라고 할 수 있다.”
히딩크는 절대 남 앞에서 선수를 비난하지 않는다. 잘못을 지적하고 야단을 치는 것은 팀 안에서만 한다. 그것이 감독과 선수의 신의라고 생각한다. 언론의 인터뷰에서도 결코 특정선수를 톡 꼬집어 칭찬하거나 잘못을 지적하지 않는다. 그는 늘 팀 전체로서만 이야기한다.
가령 골을 먹었을 땐 ‘최전방 공격수부터 수비가 안됐고, 이로 인해 미드필드에서 밸런스가 깨졌다. 결국 수비진이 막아봤지만 어쩔 수 없이 골을 먹었다’는 식이다. 반대로 골을 넣었을 때는 ‘수비진에서의 첫 번째 패스가 잘됐고, 이에 상대가 당황했다. 마침 미드필더들이 공간을 확보해 줬고, 이에 공격진이 쉽게 골을 넣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개인에 대한 칭찬이나 꾸지람은 없다. 러시아대표팀 훈련과정은 모든 게 한국팀을 맡았을 때와 똑 같았다.
“(러시아 대표팀을 유로 2008 4강에 올린 것은) 6년 전 한국을 맡았을 때와 비슷하다. 젊고 새로운 선수들을 데리고 시작했다. 한국을 이끌 때처럼 열심히 뛰었고 선수들을 믿었다. 우선 젊은 선수들에게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게 해야 한다. 선수들이 실수를 했을 때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해 줬다.”
유로2008 러시아팀은 2002한국팀과 닯은꼴
러시아는 한국과 닮은꼴인 벌떼 축구다. 강한 체력으로 끊임없이 압박한다. 볼을 빼앗겼을 땐 최전방 공격수부터 수비하고, 볼을 소유했을 땐 전원이 유기적으로 공격했다. 체력 강화프로그램도 같다. ‘체력은 곧 실력’이라며 끊임없이 선수들을 다그쳤다.
개인별 체력강화 프로그램에 따라 ‘강철 인간’을 만들었다. 결국 히딩크의 이런 전략은 그대로 적중했다. 유로 2008 러시아-네덜란드 8강 연정전에서 체력으로 밀어붙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밑바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히딩크는 이기고 있는 상황이라도 결코 수비를 강화하지 않는다. 스코어를 지키려고 공격수를 빼고 수비수를 투입한다는 것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행위라는 것이다. 그건 마치 상대팀에게 ‘나를 공격해 주십사’하고 간청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왜 리드하게 만든 좋은 전술을 바꿔 죽을 꾀를 내는가? 우리 공격수가 빠지면 상대는 수비 걱정을 하지 않고 우리를 마음 놓고 공격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상대로부터 공격받고 싶지 않으려면 그만큼 더 수비가 아니라 공격을 해야 한다는 논리다.
유로 2008 러시아-네덜란드 전에서도 히딩크는 마찬가지 작전을 썼다. 1-0으로 앞서다 후반 41분 동점골을 내줬지만 러시아는 교체멤버 3명을 모두 공격수로 바꿨다. 2-1로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도 공격수를 투입했다. 그만큼 체력적으로 러시아 선수들이 강하다는 얘기다. 러시아는 스페인과의 4강전에서도 총 뛴 거리가 109.37km(스페인 106.58km)나 됐다. 평균 스피드는 시속 6.58km(스페인 시속 6.50km). 그만큼 러시아선수들이 빠르게 많이 뛰었다는 얘기다.
홍명보 올림픽팀 코치는 말한다. “유로2008 러시아-네덜란드 8강전에서 러시아선수들은 우선 체력으로 네덜란드를 압도했다. 연장전에 가면 집중력이 떨어지는 게 보통인데 그런 것을 강한 체력으로 커버했다. 2002한국팀과 너무도 흡사했다.”
선수들은 기꺼이 ‘히딩크 추종자’를 자청
히딩크는 영어, 스페인어, 독일어, 네덜란드어를 번갈아 구사하면서 인터뷰에 응한다. 각국 기자들을 다루는 데도 도가 텄다. 그는 네덜란드, 벨기에 시민권에다가 한국 명예시민권을 가지고 있다. 러시아에선 러시아시민권까지 줘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그는 세계시민이다. 이제 그는 이룰 것은 다 이룬 것으로 보인다. 돈도 벌만큼 벌었고, 명예도 그만하면 세계 어느 누구보다 높다. 그런데도 그는 아직도 계속 도전하고 싶다고 말한다.
“난 아직 힘이 남아있고, 사람들이 날 ‘고약하고 심술궂은 노인네‘로만 여기지 않는다면 계속할 것이다. 난 여전히 배고프다”
역시 말을 잘한다. 유로2008 네덜란드와의 8강전에서 “난 조국의 반역자가 되고 싶다(I hope to be a big traitor). 체력적으로 기술적으로 완벽한 팀을 만나게 돼, 나도 지옥만큼 두렵다. 그러나 뒤로 물러서면 물러설수록 두려움은 커진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공격뿐이다.”라고 너스레를 떤 것도 압권이다.
그는 결국 그의 말대로 ‘조국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후 반역자의 칭호를 얻었다.’ 하지만 그의 조국에선 그를 별로 반역자로 여기지 않는 것 같다. 그의 열정과 끝없는 도전 정신에 토를 달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리더십 비밀은 ‘11명선수 부분의 합보다 더 많은 힘을 이끌어 내는 데’ 있다. 그의 용병술은 러시아선수들 각자의 합보다 강한 팀으로 만들어냈다. 도대체 그의 마법의 비밀은 뭘까? 우리는 차두리의 말을 통해 약간의 힌트를 얻을 수 있다.
“2002년 히딩크는 나를 경기장에 내보낼 때마다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viel spass!!!" 우리식으로 말한다면 “재미있게 해봐!!!”란 뜻의 독일어다. 경기를 재미있게 하라고? 감독의 이런 주문은 신선한 충격이었고 귀에 와 닿는 히딩크의 입김은 나만 특별히 사랑하는 듯한 착각을 주었다.(…) 그가 우리를 다스렸던 무기는 솔선수범 모범 이런 것들이 아니라 선수들을 언제 조이고 언제 풀어줘야 하는지를 너무나 잘 아는 ‘절묘한 감각’이었다.”
프로축구 성남 김학범 감독도 “히딩크의 강점은 선수들의 기량을 최고로 이끌어내는 데 있다“는 데 이의를 달지 않는다. 홍명보 올림픽팀 코치도 ”히딩크는 모든 것이 머릿속에 있다. 그때그때마다 강조하는 포인트가 다르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허정무 월드컵팀 감독도 ”그는 게임을 읽는 시야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측면에서도 배울 점이 많은 감독이다. 경기장에서 선수 독려 방법, 심리 파악, 전술 대처 등도 탁월하다“고 말한다.
누구나 히딩크 리더십의 핵심을 안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능가하지 못한다. 따라할 수는 있지만, 결코 그만큼 효과는 내지 못한다. 보이지만 결코 보이지 않는 리더십. 똑같은 것도 히딩크가 하면 마법이 되지만, 다른 사람이 하면 그저 평범한 것이 돼버린다. 선수들은 다 알면서도 기꺼이 그의 포로가 된다. 도대체 그의 마법은 언제까지 효력을 발생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