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높이뛰기 선수의 고독1
누나야, 사는 게, 왜, 이러냐
사는 게, 왜, 이리, 울며, 모래알
씹듯이 퍽퍽하고
사는 게, 왜, 진창이냐
엄마야, 누나야
이젠, 웃음마저도 시든 꽃처럼
무심한 손길도 왜 가슴 데인 화열처럼
왜, 쉬이 넘기지 못하고, 가벼이 사랑치 못하고 말이다
…중략…
사는 게 왜, 이리, 숨 막힌 것인지 엄마야
강변에 햇살이 표창처럼 반짝일 때
누나야
저 억장 무너지는 바다에
물안개가 니, 부서지는 웃음처럼
번져올 때
나는 이 악물고 이 모든
아름다움을 부정한다
엄마야, 누나야
네 얼굴에 박힌 웃음이
언 강 물밑처럼 풀려나갈 때까지
모든 꽃들은 사기다
<함성호 ‘엄마야 누나야’ 부분>
놀라워라. 지구의 꼭지점 에베레스트(8850m) 정상 위에도 새가 난다. 훅 불면 날아갈 듯한 노랑부리 까마귀(Pyrrhocorax graculus)가 상승기류를 타고 맴돈다. 작은 새. 그 새들은 설산(雪山)을 오르다가 죽은 산악인들의 주검을 쪼아 먹는다.
1924년 6월 영국 산악인 조지 맬러리(당시 38세)와 앤드루 어빈(당시 22세)은 에베레스트 에 오르다 사라졌다. 그들을 망원경으로 마지막 본 것은 정상을 불과 240m 남겨놓은 지점. 그들은 과연 어디로 사라졌을까.
그들은 정상을 밟은 뒤 산을 내려오다가 사고를 당했을까. 아니면 정상 도전에 실패하고 그대로 하산하다가 추락했을까. 만약 그들이 정상을 밟은 게 확인된다면 1953년 5월 29일 에드먼드 힐러리(뉴질랜드)와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의 에버레스트 최초 등정 기록은 무효가 된다.
히말라야 최고봉 정상, 기어오르려는 인간
75년이 지난 1999년 5월 맬러리의 주검이 에베레스트 북벽 제1스텝(능선에 계단처럼 돌출한 곳) 아래 해발 8170m 고지에서 발견됐다. 맬러리는 자갈이 깔린 비탈 오르막을 향하여 엎드려 있었다. 두 팔은 산비탈로 미끄러져 내려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한 듯 위쪽을 향해 뻗고 있었다. 등산복은 너무 오래 돼 손만 대도 부스러졌다. 오른쪽 종아리뼈와 정강이뼈 그리고 오른쪽 어깨뼈 갈비뼈가 부러져 있었다. 가슴엔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추락으로 죽은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몸은 말짱했고 심한 상처는 없었다. 아주 높은 데서 떨어진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추락한 뒤에도 한동안 의식이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엉덩이 부분은 노랑부리 까마귀들이 군데군데 쪼아 먹어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 아프게 했다. 상의 앞쪽 호주머니에서는 가족과 친구들이 보낸 3통의 편지가 들어있었다.
맬러리는 왜 산에 올랐을까. 그는 2년 전인 1922년에도 에베레스트에 도전했지만 8320m지점에서 눈물을 머금고 발길을 돌렸었다. 1923년 그는 미국의 워싱턴 시카고 필라델피아 보스턴 등을 돌며 ‘에베레스트 등정에 대한 강연 여행’을 다녔다. 가족 부양을 위해 어쩔 수없이 돈(강연료)을 벌어야 했던 것이다.
어느 날 한 기자가 “왜 에베레스트에 오르려고 하느냐”고 맬러리에게 물었다. 맬러리는 피곤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이 질문을 수도 없이 들었던 것이다. 맬러리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그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라고 내뱉고는 총총히 강연장을 빠져나갔다.
지상의 모든 생물은 비상의 날갯짓 꿈꿔
새는 왜 나는가. 한번 날면 9만리 장천을 나는 붕새는 왜 나는가. 새는 그의 뼈를 비운다. 대나무처럼 뼈 속을 텅 비운다. 그리고 몸속 공기주머니에서 뼈 속으로 끊임없이 바람을 불어넣는다. 새의 조상은 파충류다. 뱀은 하늘을 날려고 5000만년이 넘도록 ‘날갯짓’을 꿈꿨다. 저주받은 몸통에 깃털을 틔우기 위하여 수도 없이 허공에 뛰어오르다 나뒹굴었다. 온 몸은 시퍼렇게 멍들었고 밤마다 피울음을 울었다. 그리고 마침내 쥐라기 시대, 익룡의 몸이 두둥실 하늘로 떠올랐다.
새의 날개는 앞발이다. 파충류의 앞발이 피눈물 나는 날갯짓 끝에 깃털로 변했다. 하지만 아직 새들의 꿈은 끝나지 않았다. 더 높이, 더 멀리 날기 위해 몸부림친다. 높이 나는 새는 멀리 본다. 날갯짓을 많이 하는 새는 그만큼 높이, 멀리 날 수 있다. 가수 정광태는 노래한다.
“도요새, 그 몸은 비록 작지만 가장 높이 꿈꾸는 새. 저 밑 없는 절벽을 건너서, 저 목 타는 사막을 지나서, 저 길 없는 광야를 날아서…. 도요새, 그 몸은 비록 작지만 가장 멀리 나는 새. 저 검푸른 바다를 건너서, 춤추는 숲을 지나서, 저 성난 비구름을 뚫고서….”-<도요새>
‘상상 속의 새’ 붕새는 한번 날갯짓에 9만리를 난다. 벌새는 1초에 90번이나 날갯짓을 해도 몇 십 미터도 못 간다. 새는 왜 높이 나는가. 왜 멀리 날려 하는가. 새는 도대체 어디로 날아가는가. 가수 송창식은 외친다.
“새는 노래하는 의미도 모르면서 자꾸만 노래를 하고, 새는 날아가는 곳도 모르면서 자꾸만 날아간다.”- <새는>
지상의 모든 생물은 날갯짓을 꿈꾼다. 돌고래는 7m가 넘게 공중으로 껑충 뛰어오르고, 날치는 은비늘을 반짝이며 허공을 가른다. 심지어 나무도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까치발을 딛는다.
자유와 해방의 전율, 장대높이뛰기
인간도 타는 목마름으로 날갯짓을 꿈꾼다. 어깨 죽지가 늘 가려워 피나게 긁는다. 하지만 깃털은 아무리 기다려도 움을 틔우지 않는다. 손 때문이다. 그렇다고 인간의 손은 새처럼 날개로 변하지 않는다. 대신 인간은 도구를 사용한다.
한때 라인 강 유역에 거주하던 고대 켈트족은 막대를 짚고 개천을 뛰어넘으며 비상(飛翔)을 꿈꿨다. 러시아 농민들은 쇠스랑을 장대삼아 2m가 넘는 건초더미를 뛰어오르는 놀이를 즐겼다. 영국에선 긴 나무장대를 이용해 돌담을 뛰어넘고 아일랜드에선 장대를 짚고 개울을 뛰어넘었다.
중국인들은 한술 더 떴다. 손오공을 내세워 시간과 공간을 자유자재로 주름잡았다. 손오공은 여의봉을 사용해 산과 산을 훌쩍 뛰어넘고 과거와 현재를 가로 질렀다. 그래서 원숭이는 중국인들에게 ‘보다 높이, 보다 멀리’ 뛰는 영물로 통한다. 원숭이해가 되면 중국의 산부인과 병원마다 꽉꽉 차는 것도 다 그런 이유다.
장대높이뛰기엔 날갯짓을 향한 인간의 욕망이 담겨 있다. 수평 운동에너지가 두둥실 한순간에 수직에너지로 바뀌며 한 마리 새가 된다. 인간은 그 순간 자유와 해방을 느낀다. 몸이 허공에 떠오르는 순간은 무아지경이다. ‘중력의 법칙’에 반항하는, 저 가슴 속 끓는 피의 간지러움. 그래서 막 허공을 향해 뛰어오르려는 장대높이뛰기 선수의 자세는 먹이를 막 잡아채려는 독수리의 모습과 같다.
오직 두둥실 떠오르려는 생각뿐, 잡념이 전혀 없다. 몸의 균형도 완벽하고 에너지의 낭비가 하나도 없다. 미학적으로도 너무 아름다워 슬프기까지 하다. 이 세상에 수평에너지를 단박에, 거의 직각으로 수직 에너지로 바꾸는 생물은 지구상에 오직 장대높이뛰기 선수뿐이다. 그 수많은 종류의 새들도 한 순간에, 직각으로 공중에 떠오르는 새는 없다. 대부분 비행기처럼 사선을 그으며 비상한다. 제이콥 브로노우스키는 말한다.
“도약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장대높이뛰기 선수는 인간 능력의 집결체이다. 손의 움켜짐, 발의 구부림, 그리고 어깨와 골반의 근육, 화살을 날리는 활시위처럼 에너지를 저장했다가 방출하는 장대 등 그 복합적인 행동의 두드러진 특징은 선견력(先見力)이다. 다시 말해 앞으로의 목표를 세워놓고 자기의 관심을 거기에다 집중시키는 능력이다. 장대의 한끝에서 다른 끝에 이르는 그의 행동과 뛰는 순간의 정신집중 같은 것들은 계속적인 계획의 수행이며 그것이 바로 인간의 낙인이 되는 것이다.”-<인간 등정의 발자취>
장대는 하늘로 비약하는 ‘선승의 화두’같은 것
장대는 선승들의 화두나 같다. 화두는 깨달음으로 가는 방편이다. 오직 화두에 매달리다 보면 저절로 망상과 잡념이 사라진다. 그러나 그 화두조차 털어내지 않으면 깨달음의 길은 멀다. 화두도 하나의 집착이다. 배를 타고 강을 건너면 이젠 배를 버려야 한다.
장대도 하늘로 가는 ‘화두’다. 허공에 두둥실 떠올라 정점에 이르기까지는 장대에 의지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장대를 버려야 한다. 장대에 너무 매달리면 다시 중력의 힘에 이끌려 지상으로 떨어진다. 그 뿐만이 아니다. 장대에 너무 집착하다 보면 장대가 창이 되어 자신을 찌른다. 어느 순간 때가 되면 장대는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2000년 일본 미야지마현에서 열린 일본선수권대회 장대높이뛰기 남자부 경기에서 야쓰다 다토루(25)는 장대에 똥침을 맞았다. 5m40cm 3번째 도전에서 무사히 바를 넘었지만 떨어지다가 그만 장대에 항문과 직장을 찔린 것이다. 야쓰다는 이 사고로 유니폼은 물론 장대 끝과 안전용 매트까지 흥건하게 피를 흘렸다. 결국 수술까지 받고 한달이 넘게 병원신세를 져야만 했다. 다행이라면 5m40cm를 넘은 기록이 인정돼 2위에 입상한 것.
장대는 힘을 싣는 데에만 쓰이는 게 아니다. 몸의 균형을 잡는데도 쓰인다. 망상이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를 때 화두는 그것들에 휘둘리지 않게 중심을 잡아주듯 장대는 몸이 체조선수처럼 균형 있게 떠오르도록 지지해준다.
2001년 중국의 한 위그르 족 청년은 중국 후넌성(湖南省) 헝산(衡山)에 위치한 해발 1200m와 1290m 높이의 두 봉우리 사이를 오직 장대 하나만을 의지해 건넜다. 두 봉우리 사이를 연결한 1400m의 외줄 위를 장대(12kg)로 몸의 중심을 잡으며 52분 만에 건넌 것이다. 놀랍게도 그 청년은 단 하나의 보호 장구나 안전벨트도 없었으며 안개가 끼어 가시거리가 불과 3m에 지나지 않았다.
화두는 그것이 무엇이든 상관없다. 그 유명한 조주스님의 ‘무(無)’자 화두이든, ‘이 뭣꼬(是甚?)’나 ‘차나 마셔라(喫茶去)’이든, 아니면 ‘뜰 앞 잣나무(庭前栢樹子)’나 심지어 ‘마른 똥막대기(乾屎?)’이든 뭐든지 좋다. 그래서 선승들의 화두는 무려 1700개나 된다.
장대도 길이나 직경의 제한이 없다. 소재도 어느 것이든 좋으며 무게도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는다. 길이는 보통 남자 기준으로 5.7~6.15m를 쓰며 가벼운 것일수록, 탄력이 좋을수록 좋다. 선수 개인의 신체조건이나 체중, 신장, 스피드에 맞춰 장대를 고르면 된다. 선수가 장대를 잡는 위치는 장대 밑 끝부터 4.9m~5.1m 사이. 오른 손 잡이는 오른 손을 위로 잡는다. 장대는 1개에 무려 100만원이 넘는다.
물푸레나무서 탄소섬유로 발전한 장대 소재
장대높이뛰기는 고대올림픽에서도 있었으며 1896년 부활된 근대올림픽에서도 있었다(남자). 여자 장대높이뛰기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 때부터 채택됐다. 장대높이뛰기 기록은 어느 장대를 썼느냐에 따라 다르다. 탄력이 좋을수록 더 높이 뛸 수 있다.
1911년까지 골프채의 샤프트로 쓰였던 히코리나무(서양호두나무)나 옛날 우리 서당에서 회초리로 주로 쓰던 물푸레나무가 쓰였다. 하지만 그런 장대들은 탄력이 거의 없어 에너지 낭비가 많다. 그 당시 남자 세계 최고 기록도 3m55cm에 불과하다.
더구나 선수들은 장대가 거의 구부러지지 않는 점을 이용해 일단 점프를 해 몸을 떠올린 후 순간적으로 몸을 장대를 타듯 기어 올라가 바를 넘었다. 소위 ‘봉 타고 올라가기’가 성행한 것이다.
1904년 미국 세인트루이스대회에 일본산 대나무 봉이 등장했다. 1912년엔 대나무 봉으로 4m 벽을 처음 넘었고 그 후 4m77cm까지 뛰어 넘었다. 하지만 일본(대만)산 대나무 시대는 1945년 일본의 제2차 세계대전 패배와 함께 끝난다. 승전국 미국의 알루미늄 장대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57년에 장대를 땅에 박을 때 지탱해 주는 버팀쇠(박스)와 낙하하는 선수를 보호하기 위한 두꺼운 매트리스(그 전까진 모래바닥)가 등장했다. 알루미늄 장대는 1960년까지 사용됐으며 최고 기록은 4m88cm. 1961년부터는 유리섬유나 탄소섬유가 쓰였다. 그리고 마침내 1994년 우크라이나의 세르게이 붑카가 꿈의 기록인 6m14cm의 세계 최고기록을 달성했다.
유리섬유나 탄소섬유는 낚싯대처럼 끝부분만 휘어져 도약의 속도를 잘 전달하면서도 휘어짐이 커 몸을 더 튀어 오르게 한다. 또한 탄력이 좋아 봉의 위치를 더 높이 잡을 수 있고 많이 휘어지므로 많은 에너지를 축적할 수 있다. 바를 넘을 때 신체적 여유가 있어 동작을 탄력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요즘 장대는 탄소 코팅 처리한 첨단 유리섬유로 만들어져 탄성과 내구력이 더 좋아져 90도 이상 구부러진다.
오페라 공연 버금가는 ‘육상 경기의 종합예술’
장대높이뛰기는 육상의 종합 예술이다. 육상 경기의 오페라와 같다. 단거리선수의 스피드(도움닫기)가 필요한가 하면 높이뛰기선수와 멀리뛰기 선수의 도약력(구르기)을 요구한다. 체조선수와 같은 균형감(공중자세)이 필요하고 포환·해머·원반·창던지기와 같은 투척선수의 마무리자세(낙하)가 요구된다.
여기에 장대를 효과적이고 감각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조정력이 있어야 한다. 상하체가 고르게 발달하고 다리가 길고 강하며 팔이 긴 사람이 유리하다. 어깨 근육과 복부 근육이 발달해야 높이 뛸 수 있다. 체조선수 출신 러시아 ‘미녀 새’ 이신바예바(26·174cm 65kg) 복부에 임금 왕(王)자가 새겨진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올림픽 출전 남자 선수의 평균키가 182cm 79.8kg(여자선수 169cm 59.8kg)에 이르는 것도 다 그런 이유다.
또한 근력, 순발력, 민첩성, 평형성이 발달해야 하며 리듬 타이밍에 대한 감각이 뛰어나야 한다. 그래서 높이뛰기 선수에게 단거리, 체조, 철봉, 평행봉, 트렘블린, 로프 타기 연습은 필수다.
자 그럼 우리도 장대를 들고 한번 두둥실 떠올라보자. 1m를 날면 어떻고 또 2m를 날면 어떤가. 두발 달린 짐승이 땅 위만 어슬렁거리다가 어느 날 두둥실 허공으로 상승하는 기분은 짜릿하지 않을까.
<☞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