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박사, 나무시인' 고규홍
나무가 나무끼리 어울려 살듯
우리도 그렇게
살 일이다.
가지와 가지가 손목을 잡고
긴 추위를 견디어 내듯
나무가 나무끼리 어울려 살듯
우리도 그렇게
살 일이다.
가지와 가지가 손목을 잡고
긴 추위를 견디어 내듯
나무가 맑은 하늘을 우러러 살듯
우리도 그렇게
살 일이다.
잎과 잎들이 가슴을 열고
고운 햇살을 받아 안듯
나무가 비바람 속에서 크듯
우리도 그렇게
클 일이다.
대지에 깊숙이 내린 뿌리로
사나운 태풍 앞에 당당히 서듯
나무가 스스로 철을 분별할 줄을 알듯
우리도 그렇게
살 일이다.
꽃과 잎이 피고 질 때를
그 스스로 물러설 때를 알듯
<오세영 ‘나무처럼’ 전문>
보통 떡갈나무 한 그루엔 잎이 10만 장이나 매달린다. 하지만 그 잎들은 다투지 않는다. 서로 ‘가슴을 열고 똑같이 고운 햇살을 받아’ 안는다. 경기 양평 용문산 은행나무(키 67m 가슴둘레 14m)는 나이가 1100살이나 된다. 그는 여태까지 단 한 마디도 한 적이 없다.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단 한 번도 때를 놓친 적도 없다. 봄이면 연두색 잎이 우우 돋고, 가을이면 어김없이 열매를 맺었다. 그는 그렇게 ‘일천 일백년을 하루처럼’ 살았다.
사람은 ‘삶의 때’를 모른다. 언제 잎이 돋고, 언제 꽃이 피고 지는지 캄캄하다. 그저 천방지축 콩 튀듯이 산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바뀐다. 자꾸 앞으로 나아가려고만 한다. 언제 물러서야 하는지를 모른다. 그래서 ‘철부지(不知)’이다.
고규홍(48) 씨는 나무에 미친 사람이다. 벌써 10년째 나무를 찾아 전국을 떠돌고 있다. 지금까지 자동차로 달린 거리만 약 40만여km. 지구 10바퀴 거리다. 휘발유값으로 한 달 1백만 원 가까이 쓴다. 그는 12년 경력의 중앙일간지 학술기자 출신. 서른아홉(99년) 때 무모하게(?) 사표를 던지고 나왔다. 아내는 산후조리중이었다. 그는 나무 중에서도 수백 년 넘는 늙은 나무들만 찾는다. 나무나 사람이나 삶은 별 다를 게 없다. 곱게 늙은 나무가 있는가 하면 뒤틀리고 찌든 나무도 있다.
“난 영 회사인간 체질이 아니다. 직장에 가면 늘 숨이 막히고 머리에 쥐가 났다. 그래서 어느 날 충남 태안 천리포수목원으로 튀었다. 거기서 딱 나무와 눈이 맞았다. 11월이었는데도 미국산 리틀 젬이라는 목련나무에 꽃이 피었다. 황홀했다. 아내도 격려해 줬다. ‘남자들은 자연을 관찰이나 정복 대상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당신은 자연에 한번 취해 살아보라’고. 고마웠다. 힘이 절로 났다.” 사람이 나무를 좋아한다고, 나무가 선뜻 마음을 여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그 이름을 불러준다고 ‘꽃’이 되는 건 아니다. 사람은 나무의 발밑도 못 따라간다. 사람들은 흔히 ‘나무처럼 살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늙은 나무 속에는 천둥 벼락이 우르르 들어 있다. 칼바람과 먹장구름이 무수히 배어 있다. 이글이글 타는 태양도 끓고 있다. 나무의 삶은 인생보다 천 배 만 배 더 고행이다. 나무는 그래도 참고 또 참는다. 결국 나무처럼 살아야 나무처럼 늙을 수 있다.
“난 나무처럼 살겠다고 못 한다. 그렇게 늙고 싶다고도 안 한다. 내 깜냥으론 어림없다. 세상의 그 어떤 생명도 나무만큼 나이 들수록 더 아름다워지는 것은 없다. 난 그저 나무와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경북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키 47m 가슴둘레 14m 700살)는 만난 지 7년 만에 비로소 마음을 열었다. 그 무뚝뚝하던 나무가 나를 받아주던 날, 난 가만히 그의 늙은 몸에 기대어 응석을 부렸다. ‘할배, 왜 그랬어?’라고 묻자 그 나무는 소리 없이 하회탈 같은 웃음을 웃었다.”
나무는 늘 그 자리에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잘 몰라본다. 350살 먹은 경기 화성 전곡리 물푸레나무(키 20m 가슴둘레 4m)가 그렇다. 150살 파주 적성 물푸레나무(키 13.5m 가슴둘레 2.7m)는 천연기념물로 보호받았지만, 그 때까지 이 나무는 거의 버려지다시피 했다. 고 씨는 이 나무를 찾아내 천연기념물로 지정받게 했다. 500살이나 먹은 경남 의령 백곡리 감나무(키 28m 가슴둘레 4m)도 마찬가지다. 고 씨는 한눈에 나라 안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감나무임을 알아봤다. 그는 여러 매체를 통해 줄기차게 이를 세상에 알렸다. 결국 이 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물푸레나무는 이 땅에서 가장 흔한 나무다. 그런데도 150살 파주 물푸레나무만 보호되고 있다는 게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딘가에 더 오래된 나무가 있으리라 믿었다. 전국 물푸레나무가 있음직한 곳이라면 샅샅이 훑었다. 그리고 마침내 화성 전곡리 언덕 뒤에 숨어 있던 이 늙은 나무를 찾아냈다. 뛸 듯이 기뻤다. 백곡리 감나무는 마을 천덕꾸러기였다. 동네사람들은 ‘그까짓 감도 안 열리는 나무’라며 함부로 했다. 반대인 경우도 있다. 나무를 보호한다며 주민들이 뿌리에 흙을 너무 북돋워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나무가 시들기 십상이다. 늙은 나무는 뿌리로도 숨을 쉰다.”
고 씨는 길 찾는 데 영 젬병이다. 헤맨 게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가다보면 어디쯤에 어느 나무가 있다는 것은 몸으로 그냥 안다. 눈을 감으면 전국 모든 나무들의 모습이 하나하나 또렷이 떠오른다. 오래된 나무로는 단연 느티나무가 으뜸이다. 산림청 보호수만 5000그루가 넘는다. 1000년 넘은 나무도 19그루나 된다. 이중 최고 멋쟁이는 경기 양평 두물머리 400살 느티나무. 연인들이 많이 찾고 영화촬영지로 인기가 높다.
은행나무는 강원 삼척 늑구리 나무가 1500살로 최고령이다. 아름답기로는 800살 먹은 강원 문막읍 반계리 나무가 으뜸이다. 배롱나무는 800살 부산 양정동 나무가 최고 어른이지만 충남 논산 윤증고택 배롱나무, 경북 안동 병산서원 배롱나무, 전북 남원 교룡산성 선국사 배롱나무 꽃이 황홀하다.
고 씨는 ‘나무 시인’이다. 시는 기다림이다. 나무도 그렇다. 나무 한 그루를 제대로 알려면 봄 여름 가을 겨울 모두 봐야 한다. 한 번 보고 오면 그리움이 쌓인다. 또 한 번 보고 오면 그리움이 쳐들어온다. 그래서 다시 길을 떠난다. 나무 찾아 길 위에서 떠돈 삶. 저 멀리 저녁 밥 짓는 연기. 슬프다. 민박집 빈방에서 밤새 쓴 소주를 들이붓는다. 금세 그의 모든 감각세포들이 ‘노란 감꽃’처럼 우우 입을 연다.
“요즘 수목장이 유행인데 그건 나무에 대한 모독이다. 나무가 무슨 ‘인간기념 푯말’인가. 사람이 죽으면 흔적도 없이 가야 한다. 저 광활한 우주 속으로 사라져야 한다. 그의 발자취는 남은 사람들의 맘속에 남아있는 것으로 충분하다. 난 나무로 태어난다면 감나무가 되고 싶다. 아버지 닮은 밭둑의 늙은 감나무, 집 뒤란의 까치밥 달고 서 있는 겨울 감나무, 있는 듯 없는 듯 소 웃음을 웃고 있는 울안의 감나무….”
나무가 살지 못 하면 사람도 못 산다. 나무가 단 한 그루라도 자란다면 법적으로 무인도가 아니다. 잘 나고 큰 나무는 열매를 잘 맺지 못한다. 겨울을 혹독하게 이겨내는 나무일수록 봄꽃이 황홀하다. 고 씨는 말한다. “난 없다.” 나무도 말한다. “나(我)~ 무(無)!”
▼고규홍이 쓴 책들=이 땅의 큰 나무(눌와 2003), 절집 나무(들녘 2004), 옛집의 향기, 나무(들녘 2007), 주말이 기다려지는 행복한 나무여행(터치아트 2007), 나무가 말하였네(마음산책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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