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놔둬도 나을 병
어떤
질병을 치료하지 않았을 때 병이 진행되는 경과를 그 질병의 ‘자연경과’라고 한다.
모든 질병은 특유의 자연경과를 가지고 있다. 맹장염의 경우 치료하지 않고 방치한다면
수일 내에 충수돌기가 터져 복막염을 일으킴으로써 생명이 위태롭게 된다. 위암을
방치한다면 1년 내에 암 세포가 온 몸에 퍼져 생명을 잃게 될 것이다.
이에 반해 감기는 “약 먹으면 일주일, 약 안 먹으면 7일”이라는 농담이 있듯이
별다른 치료를 하지 않아도 대개 잘 낫는다.
허리디스크의 자연경과는 어떨까? 특별한 치료를 하지 않아도 전체 환자의 약
80%에서 한두 달 정도 안정가료만 취하면 증상이 현저하게 호전된다. 시간이 좀 걸려도
결국 자연치유된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입증돼 있다.
가만히 놔둬도 저절로 좋아질 환자가 80%라는 이야기다. 이와 같은 자연치유는
돌출된 디스크의 크기가 엄청 크거나, 디스크를 쌓는 막이 터진 ‘파열 디스크’의
경우에도 잘 일어난다.
만약 어떤 디스크 환자가 서둘러 수술을 받았다면 수술 덕분에 좋아졌다고 감사해할
것이다. 침을 맞거나 한방 탕제(湯劑)를 먹어서 좋아졌다면 침이나 탕제 때문에 좋아졌다고
고맙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자연경과를 생각해보면 한두 달 안에 저절로 좋아질
환자가 공연히 불필요한 수술을 받았거나 불필요한 탕제를 복용했을 가능성이 80%나
된다.
어떤 치료방법이 널리 사용되려면 최소한 자연경과보다 좋은 치료 효과를 보여야
한다. 그러나 현재 사용되는 치료법 가운데 자연경과보다 치료효과가 우수하다고
입증되지 않은 경우(못한 치료방법)도 적지 않다.
디스크를 잘 모르던 시절에는 디스크로 진단되면 무조건 수술을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전체 환자의 80%가 자연치유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수술을
하는 비율은 전체 환자의 20% 이내로 줄어들게 되었다. 무식해서 용감했던 시행착오의
시절을 거쳐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신중한 단계에 이르러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