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가 되는 토끼

호랑이가 되는 토끼어떤

소설가가 그랬다던가. 고향이란 정녕 돌아갈 수 없는 곳이라고. 정신없이 앞만 보며

뛰어 다니면서 사는 내게도 나무에 물 오르고 봄꽃이 피기 시작하는 이맘때 쯤이면

어린 시절 고향에서 보던 진달래랑 동백꽃도 보고 싶고 파아랗게 돋아나는 보리밭가를

뛰어다니고 싶은 고향그리움으로 마음앓이를 한다. 이제는 내 고향 시골에도 신식건물과

자동차 물결로 보리밭이나 개울가가 다 덮혀 버렸을테고 어린 시절 날 귀여워해주시던

고향 어른들도 이제는 많이 늙으셨을 텐데….  정녕 고향이란 돌아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지만 봄이 되면 어김없이 오래된 추억의 흑백 사진첩을 들추듯, 혹은

남몰래 가끔 꺼내보고 만지작거리던 추억의 조약돌처럼 생각나는 정겨운 얼굴들이

있다.

우리 동네에 단 하나 있었던 외과의원의 대머리 한 선생님은 이북에 계신 가족을

만날 날만을 기다리며 혼자 사셨는데, 그래서인지 아이들에게만은 친절해서 조무래기

친구가 많으셨다. 호기심 많던 나는 꼬마 친구의 자격으로 병원에 자주 들락거렸다.

“선생님. 오늘은 무슨 수술해요?”

“맹장.”

“그러면 맹장을 떼내는 거예요?”

“허허, 글쎄. 일단 들어가 봐야지. 토끼 잡으러 갔다가 호랑이를 잡는 수도 있으니까.”

“뱃속에 토끼가 살아요?”

“그럼. 토끼를 제때 못 잡으면 호랑이가 되지. 어흥 어~흥.”

얼마 전 정기 신체검사를 받으며 이런저런 암검사를 받은 적이 있었다. 유방암

검사 결과를 기다리면서 문득 옛날 한 선생님의 토끼와 호랑이를 기억해내고는 참으로

묘한 기분이 들었다. 고백하자면 건강칼럼을 쓰는 사람답지 않게 나도 병원 가는

일을 즐기는 편이 못된다. 어쨌거나 꼭 해야 되는 암검사도 몇달씩 작심을 해야 겨우

약속을 하고 검사를 하게 되는데 바쁜 일정은 핑계일 뿐 모름지기 나도 내 몸안에

키우고 있을지도 모를 토끼나 호랑이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지난 3월은 대•직장암에 관심을 갖고 검사를 장려하는 달이었다. 한인들에게도

꽤나 많이 발생하는 대•직장암 (colorectal cancer)은 초기에 발견하면 90%이상 완치가

가능한 암이다.

그래서 50세가 되면 꼭 대장경 검사 (colonoscopy)를  받도록 권고하는데

암의 조기 발견은 물론 암의 전구 증상인 대장내벽의 물혹(polyps)도 발견 즉시 제거할

수 있으므로 매우 효과적인 검사이다. 값이 비싼 것이 흠이기는 하나 50세가 넘으면

의료보험이 있는 경우 대부분 커버가 된다. 정상인 경우는 10년마다, 물혹이 있는

경우  5년마다 대장경 검사를 반복한다. 또 각 카운티마다 저소득층을 위한

무료 대•직장암 검사와 치료 프로그램이 있기 때문에 조금만 부지런하면 혜택을 볼

수 있다. 몽고메리 카운티 주민의 경우 50세 이상인 한인으로 보험이 없고 소득이

많지 않으면 무료로 대장경 검사를 해주고 있다. 많은 한인들이 참여해서 토끼를

호랑이로 키우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내 고향 한 선생님은 건강하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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