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졸한 이민 일기
살아가며
별달리 옹졸한 성품이라고 느끼는 편도 아니고, 혹 어쩌다 못나게 마음 쓰게 되면
곧 부끄러워하는 편이라 같은 경우에 여러 번 못나고 옹졸한 마음이 삐죽 삐죽 솟아
나오면 몹시 당황스럽다.
게다가 그 못난 마음 씀의 상대가 피붙이이거나 가까운 지인일 경우, 그 황당함과
수치감을 가누기가 힘든데, 그때마다 “배 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다”라는
내 조상들에게 받은 유전인자 탓인가 하고 애꿎은 ‘조상 탓’을 해 보기도 한다.
예를 들자면, 누군가가 쫓아 내어 미국땅에서 귀양을 사는 것도 아니고 살아가는
일이라는 게 결국은 '새옹지마'라는 생각을 굳게 믿고 있음에도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모든 일에 치사하게 키를 재면서 어쨌거나 내 키가 조금 더 클 것이라고 억지 떼를
쓰고 있는 내 자신을 종종 발견하곤 한다.
유학 초기엔 아직 가난했던 조국의 형편없는 환율 탓으로 별다른 갈등이 없었다.
부자나라에서 일하며 공부하고 어쩌다 동생들 용돈까지 줄 수 있었고, 값싼 선물도
모두들 귀하고 고맙게 받아주어 가방 무거운 줄도 모르고 볼품없이 커다란 이민가방을
꾹꾹 눌러가며 쌓던 기억이 나만의 추억은 아닐 것이다.
문제는 그동안 자랑스럽게도 커다란 부자가 된 듯한 최근의 내 조국을 만나는
일이 나의 복잡한 갈등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경제적인 안락함으로만 보자면 그동안
보고 싶었던 친구들, 애틋하던 동기간들, 정겨운 고향산천과 떨어져 말도 제대로
안 통하는 타국에서 아둥바둥 살 필요는 정말 없었던 것 같고∙∙∙. 여기쯤에서
조금 삐죽한 내 심술버섯이 살짝 돋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매연을 좀 봐.
아이구, 이 정신 없는 사람 물결들, 어쩌면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사람들 무례한
것은 알아주어야 된다구∙∙∙. 아직도 커다란 찌개 그릇에 여러 사람들의 침 묻힌 숟가락을
담가 먹는 것도 여전하구나. 소주잔 돌리는 것도 여전하고 그러니 B형 감염이
그렇게 많은 게지∙∙∙.
이쯤 되면 내 옹졸함은 극에 달하여 제 스스로 터지는 풍선처럼 내 부끄럼으로
얼굴을 붉히게 된다. 얼마 전에는 간염을 전공하는 친구로부터 국그릇이나 숟가락,
소주잔으로는 B형 간염이 옮겨지는 게 아니라는 지적을 받고 내 스스로 그동안 얼마나
무식했었는지를 돌아보게 되었다. 다만 칫솔이나 면도기는 어쩌다라도 함께 쓰게
되면 간염을 옮기게 되므로 조심하라고 한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간염에 대해 한 마디만 더하자면 최근 5년 동안 간염치료
연구만큼 획기적인 성과를 올린 분야도 드물다는 것이다. 간염 보균자가 많은 우리
교포들도 무조건 무시하거나 방치하지 말고 검사를 한 후 적절한 치료를 한다면 무서운
합병증으로 가는 것을 현저하게 막을 수 있다고 하니 올 해는 한번쯤 꼭 검사를 받아보았으면
한다.
그나저나 내 옹졸함은 치유될 수 있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