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는 그릇이 되지 말아야 한다
예전에는 의사들의 전문 분야가 그다지 세분되어 있지 않았으나 의학의 비약적
발전에 따라 198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점차 세분화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정형외과의
경우 척추, 고관절, 슬관절, 손, 어깨, 발, 스포츠 외상 등 여러 분과로 나누어졌으며,
척추 분과는 다시 목, 허리, 척추기형 전공으로 더욱 세분화되고 있다. 이런 경향은
의료 선진국일수록, 대형 병원일수록 더욱 두드러진다.
군자불기(君子不器)는 논어(論語)의 위정(爲政)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군자는
그릇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릇의 의미는 특정한 기능의 소유자,
즉 전문가를 의미한다. 논어의 배경이 되는 춘추전국시대에도 현재와 마찬가지로
전문화된 직업이 있었다고 한다. 수레바퀴를 만드는 일, 배 만드는 일 등이다.
하지만 이런 전문직은 언제나 하층계급의 몫이었다. 전문화는 노예 신분에게(만)
요구되는 하찮은 직업윤리였기 때문이다. 이상적, 전인적(全人的)인 인간이 되려면
모든 면을 두루 갖춰야 한다는 논리에 따라 귀족은 전문가가 되어서는 안 되었다.
귀족이라면 누구나 어려서부터 예(禮), 악(樂), 사(射), 어(御), 서(書), 수(數)의
육예(六藝)를 두루 익혀야 했다. 전인성(全人性)을 강조하는 동양 사회의 관점에서
볼 때 의학의 세분화, 전문화는 그다지 바람직한 현상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의학의 세분화, 초전문화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어떤
질병을 깊이 연구하고 효율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는 면에서 보면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세분화가 진행될수록 환자를 한 인격체로 보지 못하고 단지 질병을 가진 개체로만
취급하는 부작용이 우려되기도 한다.
따라서 세분화가 진행될수록 환자를 전인간적(全人間的)으로 파악하려는 군자불기의
정신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의학이 발전할수록 의학교육 과정에서 휴머니티(humanity)를
강조하는 문사철(文史哲)의 인성(人性)교육이 더욱 중요해지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