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 직업 외과의사
외과의사들은
수술 도중 칼이나 바늘에 찔리는 일이 많다. 특히 피가 튀어 눈에 들어가면 기분이
굉장히 찝찝하다. 혈관으로 직접 피가 들어간 것과 같기 때문이다.
15년 전 미국 캘리포니아로 유학간 첫 달, 척추기형 수술에서 조수를 서던 중
피가 튀면서 눈으로 들어갔다. 순간 당황했지만 ‘의료선진국인 미국에서 웬만한
수술 전 검사는 다 했겠지’ 생각하면서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고 수술 조수를 계속했다.
수술을 마치고 동료 미국의사에게 눈에 피가 들어갔다고 얘기하였더니 화들짝
놀라며 교수에게 긴급 사안으로 보고하는 것이었다. 잠시 후 어리둥절해하는 필자에게
교수가 직접 와서 환자의 피 검사를 원하느냐고 물었다.
알고 보니 미국에서는 환자의 프라이버시 보호 차원에서 수술 전 AIDS 검사를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수술했던 환자가 AIDS인지 아닌지 잘 모르니 필자가 원하면
환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피검사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아니 피검사를 해서
그 환자가 AIDS로 나오면 나더러 어쩌라고’ 피검사 필요 없다고 대범한 척 거절했지만
눈 앞이 캄캄했다.
그날부터 혼자서 끙끙 고민을 해도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 집에서 이야기도 못
하고 남(식구들) 몰래 수저, 식기 등을 따로 사용하는 등 미국 연수 기간 내내 ‘먼
미국에 공부하러 왔다가 재수없게 AIDS 걸리는 것 아닌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몇 년 후 텍사스의 한 병원에서 다시 연수할 기회가 있었다. 보고 싶던 고난도의
수술이 예정되었던 환자가 AIDS로 판명되어 수술이 취소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수술 전에 AIDS 검사를 할 수 있나’ 어리둥절해졌다.
캘리포니아에서 있었던 내 이야기를 들은 텍사스 의사들은 캘리포니아 놈들 웃긴다고
마구 비웃는다. 텍사스는 캘리포니아와는 달리 수술 전 AIDS검사를 한단다. 미국이라는
나라, 정말 황당 그 자체였다. 외과의사라는 직업이 겉으로는 멋져 보이지만 실제로는
3D 직업임을 보여주는 에피소드이다. 의대 졸업생들이 외과를 기피하는 현상이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