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 고치는 곳에서 흡연이라니…” 병원 금연 유명무실

길거리 흡연보다 더 위험…금연 확대 필요

“병 고치는 곳에서 흡연이라니…” 병원 금연 유명무실23일 서울 C병원. 현관 이쪽저쪽에서 5, 6명의 남성이 담배를 들고 서 있었다.

이들을 위한 재떨이도 마련돼 있다. 한 여성은 아이와 함께 병원을 나서다 담배 연기를

피해 멀찌감치 돌아갔다. 층마다 마련된 베란다는 아예 흡연자들을 위한 장소다.

입원 환자 임 모 씨(여.25)는 “바람을 쐬고 싶어도 베란다에는 언제나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한두 명씩 있거나 없어도 재떨이에서 나는 담배 냄새 때문에 나갈

수가 없다”며 “복도에서 마주쳐도 담배 냄새가 훅 밀려오면 숨이 막힌다”고 불쾌함을

호소했다.

병원에서 담배를 피우는 흡연자들 때문에 환자들이 괴로워하고 있다.

최근 서울 S병원에서 암 수술을 받은 이 모 씨(71)는 최근 담배 연기 때문에 속이

뒤집히는 경험을 했다.

아내가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바람을 쐬러 현관에 나왔다가 옆에서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성이 담뱃불을 붙이기에 “저기 흡연공간으로 가서 피우시라”고 말했다가

봉변을 당한 것.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성은 “가족의 생명이 위독해 담배 하나 피우는데 당신이

뭔데 이래라 저래라 속에 불을 지르냐”고 목소리를 높인 것.

이 씨는 ‘나도 암 환자이고 담배는 당신 건강에도 좋지 않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말이 통하지 않을 것 같아 참았다.

병원에서는 환자가 담배 연기 때문에 구역질이나 구토 등의 반응을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금연이 필요하다. 일부 병원에서는 환자의 동선에서 뚝 떨어진

곳에 흡연공간을 설치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병원에서 누구나 현관 부근이나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울 수 있다. 환자가 담배를 피우다가 숨진 사고도 있었다.  

“몇 년 전 가슴이 아프다고 응급실에 온 환자에게 검사를 하려 하는데 안 보이는

거여요. 1~2시간 뒤 누가 병원 현관 쪽에 쓰러져 있다고 해서 갔더니 그 사람이었습니다.

담배 때문에 협심증이 생겼는데 병원에 와서도 담배를 피다가 쓰러졌죠. 심폐소생술을

시행했지만 결국 숨졌습니다. 그래도 병원 현관에 흡연공간을 없애지 못하고 있어요.

병원이 환자를 이길 수 없기 때문이죠.”(서울 K병원 응급실 간호사 김 모 씨)

국민건강증진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의료기관은 2006년 7월부터 절대 금연구역으로

지정됐다. 그러나 흡연자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병원 출입문이나 베란다 등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이 현실이다. 이들이 화장실이나 복도 등을 지나며 풍기는 담배 냄새 때문에

괴로워하는 환자도 적지 않다.

병원은 환자의 건강과 직결돼는 곳이지만 복지부는 업소에게 과태료를 부과하거나

지도 감독하는 방법 외엔 다른 규제 수단이 없다. 흡연을 하다 적발되면 경범죄 처벌법에

따라 3만원의 범칙금을 물게 되지만 경찰에 신고를 해도 현장 증거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이마저도 쉽지 않다.

복지부 관계자는 “관할 보건소 직원이 병원을 비롯해 금연 시설을 틈나는 대로

점검할 뿐 병원만을 대상으로 따로 점검하지는 않는다”며 “금연 구역에서 담배를

핀 사람은 경찰이 적발해 경범죄로 범칙금을 물게 해야 하는데 그 정도의 인력이

없기 때문에 사실상 단속이 이루어지기 힘들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담배 연기 없는 깨끗한 병원’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한국금연운동협의회도

병원들의 금연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낮다고 우려했다.

‘담배 연기 없는 깨끗한 병원(Smoke-Free Hospital)’ 은 병원 안팎 모든 장소에서

흡연을 금지하는 노력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병원을 대상으로 성과를 평가해 우수병원을

선정하는 캠페인이다.

금연운동협의회 이영자 기획실장은 “지난해에는 병원 20여 곳이 신청해 7개 병원을

우수병원으로 선정했고 올해는 접수 중인데 70여 곳이 신청했다”며 “이는 동네의원을

제외한 병원 급이 전국에 1300개라는 것을 감안하면 참여율이 낮은 편”이라고 분석했다.

이 실장은 “참여율이 낮은 이유는 병원의 의사, 직원, 환자 모두가 금연에 동참해야하고

내부뿐 아니라 외부까지 금연 구역으로 정해야하는 등의 규칙을 병원들이 까다롭게

여기기 때문”이라며 “전국의 병원을 복지부나 경찰이 일일이 지도하고 단속할 수

없으므로 병원 스스로 의식을 바꿔 실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병원의 ‘말발’이 통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병원에서 전

지역의 흡연을 금지하려고 해도 환자나 보호자들의 격렬한 반발에 맞설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소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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