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일부 학회 ‘제약업체 편들기’ 행보 눈총

약값 논란에 제약사 두둔… "바람막이냐" 비판 일어

의료계 일부 학회 ‘제약업체 편들기’ 행보 눈총정부가 최근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으로 치료할 수 있는 만성호산구증가증

등 5가지 병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하지 않겠다고 고시하자 백혈병 환자들의 권익단체인

한국백혈병환우회는 21일 성명을 내고 정부의 조치를 성토했다.  

환자들은 지금까지 행보와 달리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대한혈액학회도 함께

비난하고 있다. 이 학회는 올 초 또다른 백혈병 치료제 스프라이셀의 보험 적용을

놓고 정부와 제약회사가 줄다리기를 벌일 때 두 차례나 성명을 내고 비싼 약값으로라도

빨리 보험을 적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당시 환자들은 임상시험을 통해 공짜로 복용하고

있었다.

환우회 측은 “학회가 제약회사의 이익에는 관심이 있지만 환자에게는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있는 듯하다”고 비판했다.

이보다 앞서 최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고지혈증 치료약 심바스타틴의

약값을 낮추겠다고 방침을 정한 데 대해 한국내과학회가 반박 성명을 내자 일부 언론이

학회가 제약사의 바람막이 역할을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학회 측은 이 보도에 발끈했지만, 의료계 내부에서조차 심평원의 방침대로 하면

의사와 환자 모두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의혹을 받을 만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들쭉날쭉 원칙

지난 1월 시작된 스프라이셀의 약가협상은 4개월 동안 3차례나 결렬된 끝에 제약회사가

내놓은 가격보다 1만4000원 정도 낮게 책정됐다.

당시 환자들이 ‘살기 위해’ 평생을 먹어야 하는 약값을 1원이라도 줄이겠다고

시위할 때, 혈액학회는 1월 23일과 4월 24일 두 차례에 걸쳐 복지부에 “약값 협상을

길게 끌지 말고 조속히 보험등재를 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혈액학회는 이에 대해 “환자들을 위한 행동”이라고 설명했지만 환우회 측은

“임상시험 중에는 스프라이셀을 무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데 굳이 환자를 위한다며

보험등재를 서두르면 비싼 값으로 약값이 책정돼 오히려 환자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안겨주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학회가 현실을 도외시한 채 제약사 편만 들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심평원은 최근 글리벡의 효과가 입증된 만성호산구성백혈병, 융기성피부섬유육종

등 5가지 병에 대해서는 건강보험을 적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글리벡의 경우 현재 백혈병 환자들은 약값의 10%만 내고 이마저도 약 제조회사인

노바티스로부터 지원금 명목으로 돌려받지만, 보험에 해당하지 않으면 1년 3400만~6800만원을

내야 한다.

지난 1일 발표한 글리벡에 대한 정부고시와 관련, 혈액학회 이종욱 총무이사는

“심평원의 의학적 자문에 응하고 있지만, 약값 결정은 학회의 할 일이 아니다”면서

“희귀질환에 대해서도 글리벡을 처방할 수 있게 된 것만 해도 좋은 일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학회가 할 일과 거꾸로

혈액학회는 이에 앞서 벌어졌던 제대혈(탯줄혈액) 실효성 논란에도 개입했다.

2006년 말 가톨릭대 의대 오일환, 조빈 교수가 제대혈을 오래 보관하면 이식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는  연구 결과를 ‘영국혈액학저널’에 발표하면서 ‘제대혈

실효성 논란’이 벌어졌다.  

이때 대한혈액학회, 대한조혈모세포이식학회,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는 △제대혈

이식은 백혈병 치료의 주요한 과학적 방법이고 △국내에서 300여 명이 제대혈 이식으로

건강을 찾았으며 △제대혈 효과 논란이 커지면 제대혈 기증자가 줄어들어 환자 치료에

차질을 줄 우려가 있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서를 서둘러 발표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대 교수는 “학회는 마땅히 제대혈 보관의 가이드라인을 수립하는

절차에 들어가야 했지만 엉뚱한 일을 했다”며 “학회 간부들이 비정상적으로 호황인

제대혈 보관회사들과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오일환 교수는 “공동성명서를 낸 학회들이 후속연구를 한다고 성명에서 밝혔지만

지금까지도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임원진이 대부분 교체됐기 때문에 이런 일은

다시 불거지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약값 내린다는데 왜 의사가 반발?

심평원은 지난 5월 고지혈증 치료제인 스타틴 성분의 약 중 심바스타틴을 제외한

6 가지에 대해 약값을 22~36% 내리지 않으면 보험을 적용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약값을 내리든가, 보험 적용을 포기하든가 양자택일하라는 것.

이에 대해 대한내과학회는 심평원의 경제성 평가에 대해 직접의료비용이 누락됐고,

연구 목적인 저밀도콜레스테롤에 대한 분석 자료도 없으며, 연구대상 환자도 균일하지

않아 자료 조작이 의심된다며 비판했다.

내과학회 박수헌 보험이사는 “심평원이 심장학회, 지질동맥경화학회 회원 20명에게

자문을 했다고 하는데, 200명에게 자문을 해도 심평원의 결론대로 될 수 없다”며

“심근경색, 뇌중풍은 2004년 의무기록을 반영하고, 협심증은 2006년 보험청구분을

반영하는 등 심평원의 평가 자체가 연구 윤리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학회 측은 심평원이 일을 졸속으로 추진한다고 지적했지만,

그 내용에서 약값을 낮추는 게 부당하다고 주장하는 제약회사와 한 목소리를 내는

꼴이 됐다.

심평원 한 관계자는 “이번 평가는 시범 평가이고, 어떤 평가든 한계점은 있기

때문에 꾸준히 제약사의 이의신청을 받고 있다”면서 “당사자들의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해 학회에서 추천한 전문가의 평가를 수렴했는데 학회가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전공 불문 성명서 냈다 비판받기도

제약회사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학회가 성명을 발표해 의사들이 반발한 경우도

있었다.

한나라당 고경화 당시 국회의원은 2006년 10월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 우리들병원이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새로운 척추수술법으로 환자들에게 막대한 치료비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대한척추신경외과학회와 척추포럼 등도 의견을 같이했다.

그런데 2006년 10월 20일 대한신경외과학회가 갑자기 김문찬 이사장과 강삼석

회장 명의로 우리들병원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을 발표한 두 전문가는

척추 전문가가 아닌 뇌 전문가인 데다 이사장의 임기가 끝나는 날에 성명이 나와

논란이 빚어졌다. 의사들 사이에서는 김 이사장과 강 회장의 ‘돌출 행동’에 대한

온갖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척추신경외과학회는 당시 신경외과학회에 강력히 항의했다. 코메디닷컴(www.kormedi.com)은

17일 오후 2시 30분 신경외과학회에 당시 우리들병원에 대한 학회의 성명서가 나가게

된 배경을 묻는 이메일을 보냈고 전화로도 설명을 요청했지만 22일 현재까지 답변이

없다.

▽학회는 환자 편인가?

외국이라고 의사가 제약회사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러나 미국 의료계는

스스로 제약회사와 유착관계를 끊으려는 노력을 펼치고 있다.

2006년 1월 컬럼비아 의대와 하버드 의대 연구직 의사들은 ‘미국의학협회저널’에

“의사들은 제약업체의 부적절한 영향력에 이끌려가지 않도록 스스로를 단속해야

한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모습을 보기가 드물다.

오랫동안 학회에 몸담았던 한 대학교수는 활동을 할수록 회의감만 커진다고 고백했다.

그는 “학회라는 게 겉으로 보면 환자편인 것 같아도 일부 학회는 여전히 제약회사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이해관계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면서 “학회는 다양한 학문적인

목소리를 주고받는 곳인데, 학회의 입장과 다른 의견이라도 내면 상당히 문제가 있는

것처럼 개인을 몰아가는 모습이 마치 정치적인 논리가 작용하는 정당 같다”고 말했다.

    강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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