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폐증, 과거의 병 아닙니다”
진폐병동 붙박이 의사 명준표
“지난해 한 환자가 중환자실에서 4일 사경을 헤매다 결국 생명의 끈을 놓았습니다. 보호자가 저를 찾아와서 사람답게 돌아가시게 해줘서 고맙다고 말씀하시더군요. 눈물이 핑 돌면서 ‘정말 이 일을 잘 선택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가톨릭대 의대 성모병원 산업의학과에 근무하는 명준표(30) 씨는 이제 전공의 4년차 의사다.
다른 병원에서는 선배 전문의들에게 가르침을 받지만, 명 씨는 4년 동안 전문의 하나 없는 환경에서 교수에게 ‘나홀로 교습’을 받았다. 교수는 국내 최고의 진폐증 전문가로 꼽히는 임영 교수. 수련의가 진폐증 분야가 힘들고 보상이 적다며 지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진폐증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크기의 먼지가 숨을 쉴 때 폐로 들어가서 폐 기능을 떨어뜨리는 질병입니다. 환자는 대부분 어두운 땅속 갱도 안에서 석탄을 캐며 캔다고 열심히 일하며 우리 경제를 일궈낸 분들인데….”
그가 일하고 있는 성모병원 산업의학센터는 1962년에 설립됐으며 재작년 경기 안산중앙병원에 진폐전문병동이 생기기 전까지 국내에선 유일하게 중증 진폐증 환자를 진료하는 의료기관이었다.
명 씨가 근무하는 곳은 비록 지금 진폐증 환자를 위한 격리실과 병동 하나가 전부지만 진폐증에 관한 한 국내에서 노하우가 가장 많은 곳이다. 이 때문에 환자들이 증세가 심각해지면 마지막으로 찾는 곳이기도 하다.
진폐증 병동에 한 번 들어가면 하루하루가 응급실 같다. 환자들은 생존에 필수적인 숨쉬기를 잘 하지 못하기 때문에 잘 지내다가도 순간적으로 위급상황이 생긴다. 명 씨는 그래서 병원을 벗어나 식사하는 것을 엄두도 못낸다.
서울시 성동구 금호동에 사는 권성자(57) 씨는 올 4월 명 씨의 도움을 받아 남편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8년째 진폐증을 앓고 있는 남편이 갑자기 숨쉬기를 힘들어 하다 쓰러졌어요. 명 선생님이 점심을 먹다 뛰어 들어와 응급조치를 하고 사흘 동안 밤낮 가리지 않고 성심껏 돌봐주셨죠. 고맙다는 말을 수백 번 해도 아깝지 않아요. 다른 병원에 가면 세상 떠날 날만 기다리는 사람처럼 별다른 치료도 없이 눈 감을 날만을 기다리는데….”
진폐증 환자는 대부분 경제성장기에 어둡고 후미진 곳에서 피땀 흘리며 청춘을 불태웠던 왕년의 산업역군들이다. 명 씨는 중환자라고 판단되면 그냥 그 자리에서 말뚝처럼 밤을 새우기 일쑤다.
“처음에는 산업의학이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있는 분야라고 생각하고 왔는데 이젠 아무 상관없어요. 저에게는 소중한 환자가 있습니다. 저보단 우리나라가 살기 어려웠을 때 열심히 일하시면서 가족의 건강을 책임지셨던 환자분들이 진짜 ‘건강지킴이’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