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큰 남자, 수술 유혹하는 상술에 속앓이
여성형유방증 남자 늘어… “건강 무해, 콤플렉스 버려야”
김현식(35.가명) 씨는 요즘 지하철을 타면 ‘푸훗’하는 쓴 웃음이 나온다. 여성형
유방증 수술병원 광고 때문이다. 15년 전 그는 군대 신체검사에서 2급을 받았다.
팔다리 멀쩡해서 당연히 1급인 줄 알았는데, ‘여성형 유방증’으로 2급 판정을 받은
것이다. 그전까지 자기 가슴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도 없었는데, 국가에서
여성형 유방이라고 일깨워준 모양새가 됐다.
‘여성형 유방증(여유증)’에 대한 관심이 점점 늘고 있다. 처음에는 서울 강남
지역을 중심으로 늘어나더니 인터넷에 ‘여유증’을 검색해 보면 부산, 대구 등 지방의
여유증 전문 병원도 심심찮게 찾을 수 있다. 지하철에 광고를 하는 병원도 등장했다.
서울 강남의 한 여유증 수술 전문 병원 관계자는 "하루 두세 건, 한달 평균
80여건 수술을 하고 있으며, 1개월 정도 수술 대기자가 밀려 있다"고 말했다.
여성형 유방증은 우리나라에서는 빈도 자체에 대한 조사도 없다. 그만큼 문제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이다. 신생아는 산모의 에스트로겐 호르몬 양으로 태어날 때
가슴이 몽글한 경우가 있지만 이는 일시적인 현상으로 금방 사라진다.
지방 과다섭취-여성 호르몬 탓 추정… 일시적 현상일 수도
청소년들은 호르몬 변화가 왕성하기 때문에 가슴이 커질 수 있지만 20대 정도면
정상으로 돌아온다. 40대 이상의 중년은 술 때문에 간기능이 약화되면 여성호르몬
비율이 증가해 가슴이 커질 수 있다.
여유증은 그 자체가 병은 아니다. 유방암과도 전혀 관계가 없다. 서울대병원 외과
한원식 교수는 "서구식 식생활 등으로 지방질 섭취가 예전보다 훨씬 늘었기
때문이라는 추측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지방 조직에서는 남성호르몬이 여성호르몬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 교수는 “갑상선 기능 항진증, 간질환, 신부전 등으로 여성형 유방이 생기기도
하고, 혈압약, 무좀약, 전립선약 등을 먹으면 일시적으로 가슴이 커지는 수도 있다.
고환종양 같은 호르몬 이상으로도 가슴이 커질 수 있지만, 이런 사례 자체가 매우
드물다”면서 “이런 이유라면 여성형 유방 자체가 아니라 원인 질환을 먼저 치료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슴이 큰 남자들은 남들이 자기만 쳐다보는 것도 아닌데 누가 볼까 수영장이나
목욕탕에 가는 것 자체를 꺼리게 된다.
“사춘기 청소년은 수술 안 하는 게 원칙”
청소년 시기에 가슴이 커지면 학교에서 놀림을 당하기 쉽다. 가슴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면 자신감도 없어지고 집중력도 떨어져 학업 성적에도 영향을 끼친다. 뉴스에
가끔 보도되는 ‘군대 내 성추행’ 문제도 언젠가 군대에 가야 하는 가슴 큰 청소년들에게는
남의 일로 다가오지 않는다.
건국대병원 성형외과 신동혁 교수는 “사춘기 때는 수술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며 “사춘기 청소년이 수술을 원해도 의사는 설득을 해야 하며, 가슴
때문에 괴로워하고 다른 문제까지 일으킨다면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자신감을 찾을
수 있는 상담 프로그램 등을 먼저 받아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여성형 유방증 수술이 늘어나는 현상에 대해 서울 강남 청담동 여우성형외과 빈원철
원장은 “본인이 콤플렉스로 느끼는 정도뿐만 아니라 얼굴이나 몸매를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나 매스컴도 큰 가슴에 대한 콤플렉스를 부추기는 역할을 한다”고 분석했다.
전혀 수술할 필요가 없다고, 그 정도 가슴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고 설득해도
막무가내라는 것이다.
놀림당해 괴로워하면 자신감 상실 우려
신동혁 교수는 “개원가에서 또 다른 수입원을 발굴한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성형외과학에서 관심의 대상도 아니었던 여유증이 사회 분위기와 맞물려
극복해야 할 콤플렉스로 인식됐다는 것이다.
한원식 교수는 “개인의 삶의 질 측면에서 본다면 콤플렉스를 해결하는 방법일
수는 있지만 수술병원들의 광고를 보면 아무 문제없이 잘 지냈던 사람들도 ‘수술을
해야 하나’하는 걱정을 만들어 주는 측면도 없지 않다”고 해석했다.
가슴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는 사람에게 ‘콤플렉스로 느끼지 말고 자신감을
갖고 당당하게 살라’고 말하는 건 이들이 겪는 콤플렉스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경희대 동서신의학 병원 정신과 박진경 교수는 “수술을 받기 전에 동기, 자아,
자존감 등에 대해 한 번쯤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면서 “여유증 수술이 자신감
회복에 어느 정도 도움을 줄 수는 있겠지만 수술 후에도 이러한 내적인 요인에 대해
꾸준한 자기계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