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 연구하다 바이러스 감염되다니…
연구사육 시설 열악, 관리 시스템도 ‘구멍’
1996년 서울대 의대 동물실에 근무하던 연구원들이 병원에 실려 왔다. 원인은
유행성출혈열. 연구원이 쥐 연구를 하다 쥐로부터 한탄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이다.
유행성출혈열은 신증후군출혈열로도 불리며 사망률이 7%에 이르는 무서운 병이다.
연구원의 입원을 계기로 서울대 동물실 연구원들의 한탄바이러스 감염 사실이 쥐를 연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알음알음으로 알려졌다. 나중에 언론에서 보도되며 연구원들의 감염 문제에 초점이 맞춰졌지만 쥐끼리의 감염 문제에는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다. 이 무렵 다른 대학 동물실 담당자들은 '혹시 쥐들의 이동 중 우리 쥐들도 감염돼 지금껏 연구가 수포로 돌아가지 않을까’하며 초조하게 연구를 지속했다.
그로부터 12년이 흐른 2008년 5월 29일 서울대학교 실험동물 자원관리원에서는
각 대학 동물실 실장에게 메일을 발송했다. 서울대 동물실에서 2008년 1/4분기 미생물모니터링을
실시한 결과, 동물실 101, 203호가 간염 바이러스(MHV.mouse hepatitis virus)에
감염됐다는 내용이었다. 서울대 동물실은 후속조치와 방안에 대해서도 메일로 공지하겠다고
밝혔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동물실 감염사실을 공개적으로 공지한 것이다. 쥐 연구는
생명공학산업의 기본이지만 지금까지 모니터링시스템도 없는 상태에서 연구원들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고전분투하고 있는 영역이었다.
“감염사고 나면 실험 결과값 신뢰못해”
쥐는 매우 예민한 동물이다. 아주 작은 환경의 변화도 금세 알아차리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때 엄마쥐 한 마리가 낳는 새끼쥐의 숫자 즉 '산자수'가 줄어들고, 새로운 시설로
옮기면 적응하기까지 6개월~1년의 시간이 걸린다. 쥐의 수명이 2, 3년인 점을 감안하면
삶의 2분의 1이나 걸리는 셈이다.
이토록 예민한 쥐 실험을 정확하게 진행하기 위해서는 무균(SPF.specific pathogen
free) 동물실이 필요하다. SPF 동물실은 20가지 알려진 위험한 균이 없는 상태로,
무균에 가까운 상태다. 1년 내내 일정한 온도와 습도 유지는 필수고, 동물실에는
오염된 공기 한 줄기도 유입돼선 안 된다. 실험자는 물론 종이 한 장도 소독하지
않은 상태로는 통과할 수 없다. 감염사고가 생기면 동물실 안에 있는 모든 쥐는 안락사시켜야
한다. 감염사고가 일어난 곳의 실험결과를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서울대 수의대 박재학 교수는 “MHV가 있다는 사실을 미리 공지해야만 감염된
쥐가 다른 동물실로 이동되는 것, 감염된 동물실로 반입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면서
“동물실 책임자는 연구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남아 있는 쥐를 안락사시킨 뒤 동물실을
소독하고 다시 실험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감염 형태에 따라 전부
다 안락사를 시키지 않고, 체외수정으로 실험을 이어가는 사례도 있다”고 덧붙였다.
연세대학교 생화학과 이한웅 교수는 아직까지도 많은 대학 연구실에서 동물실
감염 사실을 숨긴다고 지적했다. 그는 동물실 감염 사실을 공유해야 한다고 앞장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가 연구, 관리하는 동물실은 국내에서 가장 잘 관리되기로
손꼽히고 있다.
인체실험 대신하는 최적의 실험동물
이 교수는 “몇 년을 공들여 실험하던 쥐가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감염돼 모두
죽여야 할 때 연구자들은 죽고 싶은 심정까지 든다”면서 “그러나 감염된 쥐 혹은
감염위험이 있는 쥐가 실험에 사용돼 엉뚱한 결과가 나오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선진국에서는 감염사고가 일어나면 바로 그 사실을 공유하기 때문에 반입에
따른 감염을 미리 예방할 수 있다”며 “이런 시스템이나 인식이 일반화돼 있어야
쥐 실험의 결과 값에 대한 정확성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쥐는 인간과 유전적 특성이 80~90% 같다. 이 때문에 인간에게 직접 적용할 수
없는 실험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실험동물이다. 인간의 평균수명은 70~80년이지만
쥐는 2, 3년이라 쥐 실험을 통해 어떤 물질이 전 생애 혹은 여러 세대에 미치는 영향을
쉽게 연구할 수 있다.
쥐는 질병의 원인규명, 치료방법, 새로운 수술법 개발, 실용화 연구 그리고 최근엔
인공장기 연구에도 사용되고 있다. 또 염색체나 유전자를 분석해 유전병, 선천적
질환, 암 등의 연구도 진행한다. 이뿐만 아니라 행동관찰, 심리학적 연구를 통해
인간의 행동, 심리학 연구에 적용하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쥐는 의약품의 스크린, 안전성 연구에 가장 많이 사용된다. 인간의
피부에 직접 바르는 화장품을 개발할 때 피부나 눈에 대한 자극성 여부를 미리 확인하는
데도 쓰인다. 그 외에도 염료, 색소, 세제, 의료, 식기, 가구 등의 안전성을 검사할
때도 쥐를 사용한다.
쥐 연구는 의약품 개발-생명공학산업의 바탕
식품의약품안전청은 2005년 3월 국내의 동물실험 시설이 모두
960여 곳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주요 동물실험 시설은 식품의약품안전청, 한국화학연구원, 생명공학연구원 등
30여 곳, 대학 동물실은 약 363 곳이다. 하지만 대부분이 20~30평 미만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규모의 동물실이 사육시설로는 부적합하다고 지적한다.
이화여대 생명과학과 오구택 교수는 “국내에는 무균동물실이 아닌 곳이 너무
많다”면서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거의 모든 동물실이 무균상태에서 운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한웅 교수는 “동물실에서는 쥐를 깨끗하게 키워야 하기 때문에 사람도 멸균
뒤 들어가야 한다”면서 “150평 이하 동물실은 준비실 만드는 공간으로도 벅차기
때문에 실제로 있으나 마나한 시설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의무적으로 1년에
네 번씩 동물실을 검사하고 국가에 보고하도록 돼 있지만, 이조차도 예산이 많이
들어가 규정대로 이행하는 곳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연구용 쥐의 품질이 보장되는 것은 생명공학산업의 기본”이라면서
“학교운영 책임자들의 지원과 국가의 과학기술분야 예산이 뒷받침돼야 쥐 연구가
잘 될 수 있고 생명공학산업이 국가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가와
연구자들의 노력으로 지금까지 많은 발전을 이루어온 생명공학 분야의 연구 결과들이 사람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기위하여 이제는 이러한 선진국 수준의 기본 인프라에 적극 투자할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