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광우병 취약, 사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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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목> 한국인이 광우병에 취약하다는 것은 괴담인가 사실인가
2008-5-5
포어족을 집단으로 미쳐 죽게 한 kuru병과, 서퍽 품종 양들을 긁다가 죽게 만든
진전병, 소들을 일어설 수 없게 하고 집단으로 폐사시키게 만든 광우병, 그리고 젊은
사람들을 마치 치매에 걸린 노인들처럼 다양한 정신 증상과 운동 실조와 같은 신경
증상을 유발시키며 급속한 속도로 사망하게 만든 변형 크로이펠츠-야콥병(vCJD),
진전병을 제외하고는 3~40년 사이에 전염병처럼 급속도로 번진 이 사건들이 실은
동일범의 소행일 것이라는 단서는 이전 글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이 병에 걸려 사망한
개체들의 뇌가 심하게 손상되어 있었으며, 그 양상이 유사했고 조직 소견상 모두
스폰지처럼 구멍이 나 있는 소견을 보였다는 점입니다.
노벨상 단골 메뉴, 프리온 질환
양, 소, 서구인, 남태평양 원주민 너무 다른 개체들에서
나타난 동일한 현상에 흥미를 느끼고 연구를 하던 과학자들은 일단 전염성이 있기
때문에 어떤 형태든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등에 의한 감염의 일종으로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1982년 미국 스탠포드 대학의 스탠리 프루시너가
이 감염물질이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아닌 단백질이라는 충격적인 내용의 논문을 발표하자
학계는 발칵 뒤집혔습니다.
일단 프루시너에게 돌아온 것은 경멸과 조롱이 대부분이었고 본인 자신도 그 당시
비호의적이었던 분위기를 원망 섞인 어조로 회고하곤 했다고 합니다. 단백질이 자가
복제하는 DNA처럼 복제되어 증식하고 타 개체에 전염이 될 수 있다는 것은 가히 혁명적인
발상으로서 쉽게 받아들여질 수 없었지만 이후 지속되는 실험을 통해
‘프리온’(prion)이라고 명명된 이 단백질에 의해 병변이 발생하는 것은
거듭 확인되었습니다. 점차 비판자들의 입은 다물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프루시너는
연구를 진전시켜 이 단백질이 정상적으로 존재하는 내인성 단백질이며 사람의 경우
프리온을 암호화하는 유전자가 20번 염색체 단완에 위치한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이 와중에 1995년 인간 광우병 환자가 발생하고 이슈가 됨으로써 그의 업적은
더욱 부각되고 결국 1997년 노벨상 수상의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1976년 가이두섹에
이어 프리온 질환과 관련된 두 번째 수상이며 직접적인 것은 아니지만 프리온 단백질의
구조를 규명한 2002년 노벨화학상 수상자 쿠르트 뷔트리히가
또한 연관되어 있습니다.
범인의 몽타주는 나와 있다
정상 프리온 단백질은 253개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됩니다. 문제를 일으키는 변형
프리온 단백질은 DNA 염기서열, RNA 발현정도, 아미노산 배열 순서에서 정상 단백질과
동일하고 3차원적인 구조에서 차이가 납니다. 변형 프리온이 결합해서 정상 프리온을
자신과 같은 구조로 변경시키고 이것이 축적되어 신경세포에 독성을 발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부 인터넷에서 떠도는 문서들이 아직 광우병은 원인도 잘 모른다. 프리온이
아니라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다, 박테리아다, 그래서 쉽게 전염병처럼 될 수 있으며,
감기처럼 공중에 떠다니다 감염된다는 이야기들을 써놓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가 위협이
되는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함으로써 과장된 공포감을 조성시키기 때문에 적절하지
않습니다.
발병 기작이 정확히 규명이 안 되고, 프리온 외에 다른 요소들이나 물질들이 관련되어
있을 텐데 그것을 확실히 모르는 것이지 원인을 알 수 없다고 말하는 것과는 천지차이입니다.
프리온 단백질을 암호화하는 유전자를 제거시키면 아무리 병에 걸린 뇌를 갈아서
넣어주어도 병변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 최근 유전자재조합 기술을 이용해 순수하게
프리온만을 합성해 넣어주었더니 뇌병변이 발생했다는 점 등은 프루시너가 제안한
프리온 가설을 더욱 확고히 하는 증거들입니다.
M/M 유전자형과 한림대 김용선 교수의 출국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김용선 교수가 해외로 출국했다는 기사를 접했습니다.
물론 예정된 일정일 수 있지만 이틀 앞으로 다가온 청문회도 부담이었을 것이고 쇄도하는
인터뷰 요청도 마찬가지고 더 큰 이유는 본인의 2004년 5월 '한국인
프리온 단백질 유전자의 다형성질'이라는 논문의 내용 때문일 것입니다. 한국인이
광우병에 매우 취약한 유전자를 지녔다는 이야기는 요즘 같은 상황에서 자칫 잘못하면
큰 논란을 일으킬 거라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이것을 어떤 식으로 해명하든 곤란한
상황에 처할 것이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내용을 이해하려면 먼저 위 그림에서 파란 네모난 박스 안에 있는 129라고
써져 있는 부위에 M이라고 표기되어 있는 부분을 유심히 보아야 합니다. 단백질이란
아미노산이라고 불리는 분자들이 연결된 것으로 프리온 단백질은 253개의 아미노산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중 129번째 부분이 어떤 아미노산으로 되어 있느냐, 대부분은
한 종류의 아미노산으로 되어있는데 129번째 부분은 다형성을 보이고 있어 메치오닌(M)
아니면 발린(V)으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염색체는 각각 1쌍으로써 부모로부터 하나씩
전달받으므로 129번째 코돈에 올 수 있는 유전형은 M/M, M/V, V/V입니다.
그런데, 이 다형성이 화두가 된 것은 영국에서 광우병 걸린 사람들의 프리온 유전자를
조사해봤더니 한 명도 빠짐없이 M/M형이었다는 것이 발표되면서부터입니다. 조사된
바에 의하면 일반적인 영국인은 M/M 36.79%, M/V 50.94%, V/V 12.27%로써 광우병에
걸린 사람들이 모두 M/M형이라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더 의미심장한 사실은 이 글을 쓰면서 kuru병에 걸렸던 포어족의 유전형을
검사한 자료가 있는지 논문을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그 중 몇 논문에 나온 내용을
보니 인육을 먹었으면서도 kuru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 21명의 포어족을 조사한 결과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21명 중에 M/M형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죄다 M/V거나 V/V였습니다.
또한 병에 걸린 M/V,V/V의 경우 M/M에 비해 훨씬 잠복기가 길게 나타났습니다. 이
사실은 변형 프리온에 의해 뇌에 병변이 형성되는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알아보니 이 프리온 유전자 코돈 129번에서 M/M 형태 동형접합자(homozygote)의
취약성은 뭐 논란의 여지라기보다는 학계에서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었습니다.
그 기전은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아마도 광우병에 걸린 뇌에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대뇌와 소뇌 부위 광범위한 ‘아밀로이드 플라크’(amyloid
flaque) 형성이 메치오닌(M)이 있을 때 더 촉진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왜 우리는 M/M형만 가지고 있을까?
문제는 이 M/M 형이 김용선 교수가 한국인 529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해봤더니
94.33%더라. 이러다간 우리나라가 최대의 광우병 피해국이 될지 모르니 대비를 철저히
해야 된다는 내용이 논문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주로 아시아 국가들에서 M/M
비율이 높은 편이며 미국은 영국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합니다. 왜 이렇게 분포에
큰 차이가 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흥미 있는 해석을 하는 분도 있더군요.
다음 부분은 여담으로 들으시면 됩니다.
'아마도 이전에는 모두 M/M 형이었을 것이다. 인류 진화상의 어느 시점에서 식인
풍습에 의한(고대에는 전투가 끝나고 적의 시체를 먹거나, 아니면 굶주림, 또는 문화에
의한 식인 풍습이 있었을 것이므로) kuru병과 같은 질환이 발생하고 이 때 메치오닌(M)
부위가 발린(V)으로 바뀌는 돌연변이가 생긴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M보다 저항성이
강해 그 비율이 늘어났다. 그러니까 이에 따르면 우리 조상들은 일찌감치 부터 식인
풍습을 중단했다는 해석이 나올 수 있고(V 돌연변이가 생존에 더 유리할 이유가 없었던
것) 그래서 대부분 M/M형이 주류를 이루는 것이다. 영국에서 광우병으로 인해 변형
프리온이 체내에 유입되었을 때 M/V형들은 방어를 해 낸 반면 M/M형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마도 M/V형인 사람에게 악심을 먹고 광우병 걸린 고기를
냅다 쳐 먹여도 멀쩡할 가능성이 높다.'
관문을 모두 통과할 고수는 누구일까?
제 의견으로는 일단 우리가 가지고 있는(우리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습니다. M/M형이
아닌 나머지 5.67% M/V, V/V를 제외하고, 저도 그 예외에 해당할지 모르지만...)
유전형이 광우병에 취약한 것은 상당한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광우병에 덜덜 떨어야 되나, 왜 우리는 그렇게 취약한데 광우병이 창궐하지
않는 것이냐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겠습니다. 이것은 왜 영국에서 그 무서운 광우병에
걸린 소들이 식용으로 상당히 대량으로 유통되었는데 겨우 166명밖에 안 죽었는지,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는 왜 광우병이 창궐하지 않는지, 미국에 사는 한인교포들은
왜 이렇게도 다들 멀쩡해서 우리가 뭐 어쨌다고 하며 기분나빠하는 지와 연관되는
문제입니다.
상당히 오래된 중국 무협 영화중에 제목은 잘 기억나지 않는데 우리의 주인공은
소림사에 있는 10대 관문인가 뭔가 하는 관문을 통과해야 되는 임무를 부여받습니다.
주인공 말고도 무술 좀 한다는 사람들이 도전하는데 대부분 끝까지 가지 못하고 실패합니다.
문을 지날 때마다 힘센 괴물이나 무림고수들이 나타나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주인공은 아슬아슬하게 그 험난한 관문들을 힘겹게 지나서 결국엔 목표에 도달합니다.
지금 한국에 사는 우리가 향후 광우병에 걸리는 것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상당히
험난한 방해물들을 제치고 관문을 지나야 인간광우병이라는 목표 지점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입니다. 자신의 유전형이 M/V이거나 V/V인 사람은 벌써 첫 관문에서부터
탈락입니다.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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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 : BRIC 소리마당 집중토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