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영사진으로 장수믿음 전하고 행복 얻어요"

근영촬영 자원봉사 서울아산병원 성준혁 물리치료사

“사진사

양반, 몸이 떨려서 그런지 어깨가 반듯하지 않은 것 같어, 이쁘게 다시 한 번 찍어줘,

김치~.”

근영(近影, 최근의 모습을 찍은 인물사진)을 찍는 노인은 설렌다. 독거노인들은

세상을 떠나도 자신의 사진을 보며 기억해 주는 사람이 없을 거라며 우울해하지만

이내 소년, 소녀 같은 설렘을 감추지 못한다. 생전의 모습 중 가장 곱고 아름다운

모습을 남기고 싶은 마음은 노인들의 외로운 마음을 녹이고 카메라 앞에 서게 만든다.

이들을 위해 카메라를 드는 사람이 있다. 서울아산병원 성준혁(29) 물리치료사다.

병원 내 동아리인 사진동우회에서 총무를 맡고 있는 그는 회원 10여 명과 함께 지난해부터

병원 인근 독거노인들의 근영사진을 무료로 촬영해 준다.

가장 적극적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성 물리치료사는 “병원 내 사진동우회에서

회원들과 활동하던 중 취미를 살리면서 봉사활동을 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독거노인들에게

사진을 찍어주는 봉사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병원 내 사회복지팀에서도 인근 독거노인들을 추천해주는 등 적극적인 지원이

있어 뜻을 같이하는 동우회 회원들과 함께 기쁜 마음으로 작은 봉사를 하고 있을

뿐입니다.”

뇌중풍이나 척추신경손상으로 거동이 불편한 환자의 재활을 돕는 그는 자연스럽게

봉사활동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근영 촬영 봉사를 시작하기 전인 2006년 5월

개인적으로 충북의 한 산골마을을 찾아 노인 100여 명의 사진을 찍어드리기도 했다.

병원 사진동아리 80여 회원 ‘사랑 나눔 한마음’  

일상의 소소한 기억을 기록할 수 있다는 매력에 평소 사진 찍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던 그는 2003년 대학 졸업 후 아산병원에 입사하면서 사진동우회 활동을 시작했다.

2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 병원 사진동우회의 회장은 정형외과의 김영태(60)

교수. 김 교수를 중심으로 80여 명의 회원이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사진을 찍고 서로의

사진을 평가해주는 등의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다.

회원들 중 성 물리치료사를 비롯해 김 교수와 진료부 영양팀의 조용정(53) 과장,

윤인진(26) 작업치료사 등이 강동구와 송파구 독거노인들의 근영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김 교수는 촬영한 사진을 전달하는 수여식을 따로 마련한다.

김 교수는 “4월에 촬영하면 5월쯤에 수여식을 하게 되는데 이 수여식은 노인들에게

있어서 단순한 사진 증정식이 아니라 자신의 제대로 된 말년 사진을 갖게 되는 기쁨의

순간”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근영을 담은 사진을 ‘장수사진’이라고 불렀다. 성 물리치료사는 “흔히

영정사진이라고 표현하지만 영정사진은 돌아가셨을 때 부르는 말이고 살아계실 때는

근영사진이라고 불러야 한다”며 “우리는 근영사진을 미리 찍어두면 더 건강하게

오래사실 수 있다는 믿음을 드리고자 장수사진이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달마다 모여 노인들 ‘생애 최고사진’ 선사

이들은

1년에 두 차례씩 노인들의 ‘장수사진’을 찍어준다. 첫 촬영이었던 지난해 4월에는

마땅한 스튜디오가 없어서 병원 내 의학사진실에서 촬영했다. 장소도 협소하고 장비도

부족했던 첫 촬영이었지만 성 물리치료사는 이때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처음에는 쑥스러워하시며 대강 찍어달라고 하시던 어르신들이 디지털 카메라로

방금 찍은 사진을 보여주니 아이들처럼 즐거워하더라”며 “나중에는 눈이 이상하다,

고개가 돌아갔다며 적극적으로 카메라 앞에 서는 모습에 덩달아 즐겁게 촬영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촬영팀은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위해 직접 집으로 찾아가기도 한다. 한 번은

뇌중풍으로 집밖 출입이 어려운 독거노인 부부의 집을 방문했다. 2평 남짓한 반지하

방. 촬영팀은 햇빛이 들지 않는 방에서 형광등을 조명 삼고 배경지는 이불로 대신했다.

성 물리치료사는 “촬영팀에게 연신 고마운 마음을 전하던 어르신들이 자식들의 사진을

보여주며 끝내 눈시울을 적셨다”며 “가슴이 아팠던 그 때의 기억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전했다.

촬영 횟수가 늘어날수록 이 아마추어 장수사진 촬영팀에게는 나름대로의 노하우가

생겼다. 회비와 후원금을 모아 조명과 배경지 등의 장비를 마련했다. 부끄러워하며

사진 찍기를 꺼려하던 노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요령도 생겼다. 성 물리치료사는

“할머니들은 한복을 입으시는 게 양장보다 훨씬 곱고, 할아버지는 딱딱한 표정을

푸는 게 관건”이라며 “좀처럼 웃지 않는 분들에게는 일부러 우스운 얘기를 하며

긴장을 풀게 한다”고 말했다.

지방 출장-시설아동 성장앨범 제작도 계획

무료 촬영이라고 해서 대충하는 법은 없다. 사진의 주인공이 마음에 드는 사진이

나올 때까지 촬영은 계속된다. 어느 땐 한 분을 위해 30컷 이상을 찍을 때도 있다.

경우에 따라선 포토샵으로 사진을 보정하기도 한다.

“올해 4월 안면마비가 있어 얼굴의 좌우가 심하게 비대칭적이었던 할머니가 사진이

못나올 까봐 계속 걱정을 하셔서 포토샵으로 조금 손 봐드렸더니 아이처럼 기뻐하셨다”는

그는 이러한 순간의 보람과 기쁨에 힘을 얻고 다음 촬영 때를 기다린다. 장수사진

촬영팀은 앞으로 봉사 분야를 더 넓혀갈 계획이다.

“지금은 강동과 송파지역 거주 독거노인들의 사진만 찍고 있지만 앞으로는 지방이나

시골 오지의 어르신도 찾아갈 계획입니다. 이밖에도 시설아동들의 성장앨범을 제작해주는

등의 계획도 갖고 있습니다. 사진으로 할 수 있는 봉사라면 무엇이든 행복한 마음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요.”

나이 많은 어르신들의 외로움을 녹여드리며 ‘생애 최고의 사진’을 찍는 사람들.

성 물리치료사를 비롯한 서울아산병원 사진동우회 봉사팀의 따뜻한 정이 묻은 포부를

듣자니 강퍅한 원망들이 칼끝같이 부딛치는 요즘의 답답한 가슴 밑으로 뭉클한 감동이

지나가는 듯했다. 서울아산병원 사진동우회 홈페이지 (http://amcphoto.net)

    소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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