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기관 계약제 '시기상조'
시민단체들 반발 커…정부, 추진에 부담
요양기관 계약제는 보건의료에 있어서 국민건강보험의 독점적 지위를 해체하는
의미를 가진다. 의료기관들은 건강보험과 계약할 것인가를 자신의 의지에 따라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며 보험자 입장에서는 기준에 맞지 않는 의료기관을 퇴출시키거나
계약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키포인트는 바로 여기에 있다. 건강보험 체제 하에서 요양기관 계약제가 실시되면
건강보험의 독점적 지위가 사라지고 민간보험과 의료기관간의 계약이 허용돼 민간의료보험이
‘대체형’, ‘경쟁형’ 모델로 바뀐다는 것이다.
정부는 민간의료보험에 대해 공보험의 역할을 보완하는 수준의 '보충형' 모델로
두고 정책을 검토했다. 이와 관련 시민단체 한 관계자는 “요양기관 계약제가 실시될
경우 민간의료보험은 대체형과 경쟁형 모델로 전환될 수밖에 없으므로 정책방향의
큰 변화가 발생하게 된다”며 “요양기관 계약제가 도입되면 기존 우리나라 건강보장
틀 전체가 크게 변화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정부에게 큰 부담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한 "참여정부의 의료산업화 추진 방향을 새 정부가 이어 받아
영리법인 의료기관 허용이 추진될 것으로 전망 된다"며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요양기관 계약제는 사실상 민간의료보험의 활성화와 의료산업화 완성이라는
목적이 숨어 있고 이에 대한 경계심리가 시민사회 내부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요양기관 계약제가 실시되면 일부 대형병원과 보험회사가
결탁해 독자적인 의료서비스체계를 구축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로 인해 자본이 의료서비스
시장을 장악하게 되고, 이는 곧 의료이용의 불평등, 즉 양극화가 심화되는 분수령이
된다고 한다.
반면, 일각에서는 요양기관 계약제가 시행되면 대형병원들이 건강보험과 계약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반박하는 입장을 내놓고 있기도 하다.
시민단체 다른 관계자는 "서울아산병원의 경우 건강보험 환자들에 대한 급여수입이
한 해 약 4000억원에 이르고 본인부담금을 포함하면 약 7000억원 가량 되는데 이를
포기하면서까지 건강보험 요양기관에서 탈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며 "이러한
요인 때문에 요양기관 계약제가 시행된다 할지라도 실제로 탈퇴할 대형 의료기관은
많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중소규모의 전문병원에서 건강보험 계약을 포기하고 탈퇴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언급했다.
즉, 전문성과 상품성을 내세운 중소규모 병원은 건강보험과의 계약을 포기하는
대신 자본과 결탁해 영리법인 의료기관으로 전환해 의료산업화를 주도할 세력이 될
수도 있다는 것.
현재 시민단체는 요양기관 계약제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반대할 수 없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의료산업화 배경에서 요양기관 계약제가 검토되는 것은 우려하고
있으며 현 시점에서의 도입은 반대하고 있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근본적으로 요양기관 계약제를 반대하지 않으나 의료서비스
산업화에 대한 우려와 계약제의 현실적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시기상조다"고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공공의료 확충 비급여 관리방안 등 필요
건강세상네트워크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요양기관계약제를 시행되려면 다음과
같은 선결 과제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주요 골자로는 ▲공공의료의 충분한 확충 ▲의료자원의 지역 간 불균형 해소 ▲건강보험수준
최소 80% ▲비급여서비스 관리방안 확보 ▲민영의료보험법 제정 필요 ▲1차 의료의
경우 국민주치의제 통해 계약 실시 ▲총액예산제 및 DRG 확대 실시 ▲의료서비스
질 평가체계 확립 등이다.
특히 건강보험 보장수준이 최소 80%가 돼야 하는 이유는 요양기관계약제가 실시될
경우 대체형, 경쟁형 민간의료보험 모델의 등장이 불가피하게 되므로 공적보험으로서
건강보험만으로도 충분한 보장을 받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건강세상네트워크 관계자는 "치과진료는 필수적 진료에 해당 된다"며
"치과에 대해 요양기관 계약제가 시행되면 치과진료 중 예방을 포함한 기본적
진료에 대해 먼저 건강보험 급여화가 시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국민주치의제와 관련해서는 1차 의료의 경우 국민주치의제를 실시해 주치의
의료기관은 건강보험과 계약하고 그 외 1차 의료는 건강보험과 계약하지 않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를 통해 건강보험 의료서비스 전달체계를 확립코자
하기 위함이다.
당연지정제 폐지 논란, 어제와 오늘
1976년 요양기관 강제지정제 도입 이후 3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 당연지정제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1998년과 2000년 요양기관 대표자들이
당연지정제로 인해 영업활동의 자유 및 재산권 등이 침해됐다는 이유로 헌법소원을
제기한 바 있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2002년 요양기관이 제기한 내용을 인정하면서도 당시
우리나라 공공의료시설의 점유율이 지나치게 부족해 의료법에 의거 등록된 의료기관
모두가 공공 의료보험의 요양취급기관으로 당연히 적용받도록 규정한 국민건강보험
제 40조가 공공복리를 위한 기본권 제한으로서 합헌임을 인정했다.
의료계 등 일각에서는 지난 2002년 국민건강보험법상 요양기관 당연지정제의 합헌
판결 이후에도 요양기관 계약제를 주장하고 있다. 특히 경제특구지역의 외국계 의료기관의
요양기관 당연지정제 제외 및 이들 요양기관의 특정 진료영역에 대한 요양기관 당연지정을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경제특구지역에 개설되는 요양기관은 국민건강보험 당연지정제 제외 대상이지만
내국인 진료도 가능하다. 따라서 이들 요양기관들은 특정 진료 영역에 대한 당연지정제를
요구하고 있으며 국내 요양기관 중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전문병원
등의 경우 현행 국민건강보험법상의 요양기관 당연지정제의 폐지를 희망하고 있다.
현재 상황은 지난 2002년 당시 헌법재판소가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리는데 근거가 됐던 공공의료기관 확충 등 보건의료 환경이 국민건강보장을
위해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이와 같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대통령 선거 때
이명박 후보가 대한의사협회의 정책질의에 대한 답변에서 “요양기관 강제지정제를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언급, 사회적인 쟁점으로 급부상하게 된 것이다.
김영남기자 (maha@dailymedi.com)
기사등록 : 2008-04-0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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