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사무장-제약사원 커넥션
은밀한 뒷거래 여전…상호 '윈-윈 전략'으로 불법 자행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의 대대적인 조사 결과에서 드러난 것처럼 진료실에서 제약회사
영업사원과 의사가 처방을 대가로 은밀한 거래를 진행한다는 사실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이에 정부는 불법 리베이트를 적발하기 위해 연일 감시망을 넓혀가고 있으며
영업현장에서는 겉으로는 불공정거래 관행 근절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반면 정부의
단속에 걸리지 않기 위해 더욱 교묘한 리베이트 기술(?)을 연마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제약사에 대한 우월적 위치를 이용, 영업사원으로부터 돈을 뜯어내려는 의사들의
수법도 날로 대담해지고 있다. 데일리메디는 최근 본지에 제보된 한 사례를 고발함으로써
진료실 내에서 행해지는 불법 영업관행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진단한다.
서울 강북에 소재한 A가정의학과 사무장은 2005년 초 어느 날 B제약사에 갓 입사한
신입 영업사원에게 매월 제공하는 처방 내역표를 조작하자는 은밀한 제안을 건넸다.
영업사원들 사이에 흔히 집계표라고도 불리는 이 내역표는 주로 매달 초 영업사원에게
제공해 주는 것으로 한 의원에서 특정 제약사의 의약품을 얼마나 처방했는지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자료다. 처방 내역표는 해당 제약사가 매출을 미리 예상하거나 영업사원을
평가할 수 있는 자료가 될 뿐만 아니라 주로 병의원에 지급할 리베이트를 산정하는
잣대로 이용되기도 한다.
A의원 사무장의 제안은 처방 내역표를 위조함으로써 영업사원은 실제 처방이나
매출 증가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매출 실적 증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며 A의원은
B제약사로부터 매달 허위 처방내역표를 토대로 일정 비율의 리베이트를 획득할 수
있다는 윈-윈(win-win) 효과를 노린 것이다.
이는 제약사의 매출 실적이 의사가 매달 뽑아주는 처방 내역표에 상당 부분 의존할
뿐만 아니라 제약사가 영업사원이 아닌 의사에게 처방 품목 및 금액에 대한 직접적인
문의를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영업현장의 허점을 교묘하게 파고든 수법이다.
결국 이 영업사원은 A의원 사무장의 제안을 수락했다. 그 결과 이전에 월 평균
50만원 정도에 불과하던 처방금액은 실제 처방이 증가하지 않았음에도 처방 내역표
상으로는 단숨에 1000만원을 훌쩍 뛰어넘었으며 만 3년 정도 이후인 2007년 말에는
A의원에서 B제약사의 의약품을 처방하는 금액이 2000만원을 넘어서기에 이르렀다.
또한 B제약사는 매월 1000만~2000만원 규모 처방금액의 10% 정도인 100만~200만원을
영업사원을 통해 상품권 및 현금으로 지급했다.
뿐만 아니라 A의원은 이 기간 동안 B제약사가 판촉 용도로 진행한 모든 PMS를
진행한 것으로 서류를 조작했다. 심지어 집중 육성 제품에 한해 제약사가 진행하는
100대 100(100만원 처방시 100만원 지급) 리베이트까지 모두 수용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처방 행위가 없었음에도 B제약사로부터 연간 2000만원이 넘는 리베이트를 착복했다.
처방 내역표의 조작이 A의원에게만 혜택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조작에 가담한
이 영업사원은 매월 A의원에 처방 내역표 조작을 협조해주는 대가로 매달 1000만원~2000만원의
매출을 올리는 효과를 거뒀으며 그 결과 제약사로부터 각종 인센티브를 부여받을
수 있었다. 특히 PMS 할당 및 집중육성 품목 등 높은 비율의 인센티브가 걸려있는
품목을 중점적으로 처방 내역표에 포함시키며 보다 많은 인센티브를 회사로부터 챙길
수 있었다.
병원과 영업사원의 비밀스런 행각 지속
이 과정에서 A의원과 이 영업사원은 이러한 행각을 들키지 않기 위해 각종 철두철미한
작전을 구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를 들어 A의원 건물과 인접한 약국과의 직거래를
해지함으로써 제약사의 의심을 한 발 빗겨간 것이다. 제약사가 영업사원의 매출 실적을
산정할 때는 의원의 처방내역표와 더불어 제약사와 직접적인 거래가 이뤄지는 이른바
문전 약국으로의 납품 실적 및 근접 도매상의 실적을 종합적으로 참고한다.
특히 문전 약국과 거래하는 실적은 실제로 인근 의원에 처방을 유도했다는 실질적인
증거가 되기 때문에 매출 실적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하지만 이 영업사원은
A의원 인접 약국과의 직거래를 해지함으로써 제약사가 문전 약국을 통해 A의원의
조작된 처방내역을 확인할 수 없도록 미리 차단한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이 영업사원과 A의원은 인근에 소재한 다른 의원에서 처방하는
의약품을 합의하에 처방 내역표에 포함시키며 제약사의 감시망을 빠져나갔다. 이를테면
길 건너에 위치한 C내과에서 새로운 고혈압치료제의 처방이 시작될 경우 A의원에서도
이 고혈압치료제가 처방된 것처럼 자료를 위조했으며 반대로 C내과에서 한 당뇨치료제
처방이 끊기면 A의원에서도 이 당뇨치료제가 더 이상 처방되지 않은 것처럼 처방
내역표를 조작했다.
C내과에서 나온 약물이 B제약사와 직거래를 하는 주변 약국으로 납품이 되는데
A의원에서 처방을 받은 환자들도 주변 약국에서 약을 받은 것처럼 위장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처방내역을 조작한 A의원의 문전약국이 도매상을 통해 의약품을 주문받더라도
A의원에서 처방한 의약품이 B제약사와 직거래를 진행 중인 인접 약국 가운데 어디에서도
판매가 되지 않았다면 조작 혐의를 의심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 같은 수법을 쓴 것이다.
뿐만 아니라 C내과와 A의원이 처방하는 의약품이 중복된다면 이 지역을 담당하는
도매상 실적을 통해서도 A의원으로부터 파생된 매출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제약사의 감시망을 뚫게 되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이처럼 영업현장에서 은밀하고 철저하게 진행된 거래 관행에 B제약사는 점차 의혹을
품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수년 동안 줄곧 50만원에 불과했던 월 처방금액이
한 신입사원이 거래처를 인수인계 받자마자 단 숨에 1000만원대로 상승했으니 말이다.
통상적으로 차별화된 신약이 없는 국내제약사 사정상 PMS 및 거액의 물품을 먼저
지원해주는 ‘선지원 방식’을 거치지 않고서는 적은 금액의 처방이 한 번에 수십
배로 상승할 수는 없다고 판단한다. 또한 새로 오픈했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전한
의원에 수십여종의 의약품을 한 번에 랜딩했을 때에만 이처럼 처방액 급상승이 가능하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하지만 이러한 절차도 없이 그것도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 아닌 막 제약 영업사원의
길을 걷기 시작한 신입사원의 역량으로 누구도 해내기 힘든 성과를 거뒀으니 더욱
의심이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는 게 B제약사의 판단이었다.
결국 A의원과 이 영업사원의 조직적인 행각은 채 3년이 가지 않았다. 더욱이 이
영업사원 이전에 A의원을 담당했던 전임 영업사원 역시 A의원으로부터 똑같은 제안을
받은 적이 있던 터라 해당 제약사에서는 A의원의 처방금액이 최초로 1000만원을 넘었을
당시부터 의혹의 눈초리를 보냈다.
특히 통상 1000만원이 넘는 대형 거래처의 경우 처방금액 대비 리베이트 비율이
20% 이상을 제공하는데도 이 영업사원은 일관되게 10% 리베이트만 받아갔다. 또한
제약사는 대형거래처의 처방 급감을 방지하기 위해 앞서 설명한 ‘선지원 방식’을
주로 쓰는데 이 영업사원은 선지원 방식에 대해 절대 불가 입장을 고수하며 처방
증대는 결코 조작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의 성과라는 입장을 거듭 강조했기 때문에
쉽사리 물증을 확보할 수 없었다.
데일리메디 (webmaster@dailymedi.com)
기사등록 : 2008-04-0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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