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제가 더 배워요”
삼성서울병원 병원학교 유연희 교무부장
“선생님, 우리 아이가 5학년이 돼 하늘나라에 가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성균관대 의대 삼성서울병원 병원학교의 유연희 교무부장(41)은 가끔씩 지난해
4월 백혈병으로 숨진 이 모 군 어머니의 목소리가 귓전에 울려 눈시울이 붉어지곤
한다. 이 군은 갑자기 병이 악화돼 4학년을 마치는데 필요한 수업일수 5일을 못 채우고
병실에 들어왔다. 이 군과 어머니는 “5학년이 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눈물로
애원했다. 병원학교 교사들은 이 군의 병실에서 수업을 진행했다. 그러나 이 군은
5학년 학급배정을 받은 지 한 달 만에 하늘나라로 떠나야만 했다.
유 부장은 가끔씩 이처럼 먼저 떠나간 학생 생각에 가슴이 저미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병원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밝은 표정으로 학교에 되돌아가는 것을 지켜보며 온몸이
뿌듯한 감격에 휩싸이곤 한다.
병원학교는 말 그대로 치료를 받느라 학교에 못가는 아이들을 위해 병원 내에
설립된 학교. 교육인적자원부는 2005년 병원학교를 공식 인정해 병원학교 학생은
나중에 또래와 같은 학년으로 들어갈 수 있다. 삼성서울병원 병원학교에서는 36개월
된 아이부터 고교 3년까지 한 달 평균 80명이 공부한다. 유 부장은 2006년 10월 아픈
아이들을 위해 봉사하고 싶다는 생각에 마침 문을 열려는 병원학교에 지원했다.
“소아암 환자 대부분이 학교에서 1~2년 유급해요. 병원학교를 다니면 친구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부모가 아이의 생명에만 신경 쓰다가 나중에
아이가 학교에 복귀할 때 어려움을 겪습니다.”
유 부장은 “요즘 병원학교를 돕는 현직 교사와 자원봉사자가 늘어 다행”이라며
“특히 현직교사는 학교의 느낌을 고스란히 전해주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교육도 마치 공기처럼 평소에는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이곳 아이들의
학구열은 바깥의 학교보다 훨씬 뜨겁다.
더 공부하고 싶은데 몸이 따라주지 않아 문제를 풀다가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
링거를 잔뜩 매달고도 씩씩하게 교실을 휘젓고 다니는 아이, 점심을 미리 먹고 수업시간에
늘 1등으로 나타나는 아이…. 병원학교의 어린이들은 눈빛부터 달라서 보고 있으면
빨려 들어갈 듯 하다는 설명이다.
병원학교는 아이의 병원생활에 활력을 주기 때문에 치료과정에도 도움이 된다.
누군가 치료나 검사를 앞두고 벌벌 떨고 있으면, 먼저 입원한 아이가 ‘그건 참을만해’
혹은 ‘이번엔 조금 아프겠지만 견딜만해’ 등의 조언을 한다. 아이들끼리 대화를
통해 서로 심리적인 버팀목이 되는 것이다.
유 부장에게는 부모들의 문의가 끊이지 않는다. 인터뷰 도중에도 전화가 빗발쳤다.
그러나 통화를 하는 그의 표정에선 평온함이 떠나지 않았다.
“저 역시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예전에는 제 아이가 더 잘나기를 바랐던 욕심
많은 평범한 엄마였어요. 그러나 이젠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는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병원학교에 오지 않았다면 평생 깨닫지 못했겠죠. 병원학교 학생들은 제게 날마다
무엇인가를 가르쳐주고 하루하루 마음의 부자가 되게 해주는 ‘마음의 스승’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