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경기 증후군에 여성호르몬 맞을까 말까

“어머니가 50대에 돌아가신 것은 호르몬요법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50대 초에

얼굴이 빨개지고 잘 잊어버린다며 치료를 받았죠. 그리고 3년 만에 유방암 진단을

받고 지난해 갑자기…. 호르몬요법을 받는 사람을 말리고 싶습니다.”(김모씨·34·부산

서구)

“2004년 얼굴이 화끈거리고 우울증이 심해져 호르몬제를 먹기 시작했죠. 재작년

6월 갑자기 온몸이 마비돼 응급실에 실려 갔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호르몬제 탓 같았어요.

주위에 물어보니 부작용이 많다고 하대요. 의사가 부작용에 대해 알려줬더라면….”(박모씨·56·서울

관악구)

폐경기 증세 때문에 호르몬제를 복용했다가 부작용을 호소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지난달 호르몬제가 유방암 발생률을 네 배나 높인다는 미국 프레드 허치슨 암센터

연구진의 연구결과가 발표되자 호르몬요법(HRT)의 효용에 대해 의학자 간 격론이

또다시 벌어졌다. 프레드 허치슨 연구진은 3년 동안 HRT를 받은 폐경 여성 1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국내에선 지난해 말 HRT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하버드대 의대 제롬 그루프먼

교수의 베스트셀러 "닥터스 씽킹"이 출간되면서 논란에 불을 지폈다. 하지만

대한폐경학회는 의사가 조심스럽게 처방하면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는 공식 견해를

유지하고 있다.

폐경기 여성은 난감하다. 얼굴이 후끈거리고 잠은 안 오고, 게다가 우울증에 살

의욕마저 뚝뚝 떨어지는데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HRT의 희비곡선

미국에서 HRT가 확산되는 데에는 1966년 발간된 로버트 윌슨 박사의 베스트셀러

"영원한 여성성"이 큰 역할을 했다. 이 책에서 HRT는 여성의 삶을 획기적으로

개선시켜 주는 마법의 치료법으로 소개됐다.

1976년 하버드대의 지원을 받아 시작된 ‘간호사 건강연구’에서 HRT의 장점에

대한 연구결과가 쏟아졌다. 호르몬요법이 폐경기의 주 증세를 완화하는 것은 물론

심장병과 골다공증, 각종 암을 예방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2002년 호르몬제를 만드는 회사에 재앙이 닥쳤다. 1991년부터 국립보건원(NIH)의

지원을 받아 여성 2만7500명을 대상으로 역학조사를 하던 중 HRT가 여성의 유방암

발병률을 25% 높인다는 결론이 나와 연구 자체가 중단된 것이다. HRT는 심장병·뇌졸중·폐색전증의

발병률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제약회사가 『영원한 여성성』의

발간을 후원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이때부터 산부인과 의사와 내과·외과

의사간에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2006년 월스트리트 저널과 뉴욕 타임스에는 NIH의 조사가 완벽하지 않을 수 있으며

HRT의 장점이 간과됐다는 내용의 기사가 잇따라 게재됐다.

미국에서 산부인과 의사들은 대체로 HRT의 장점을 강조한다. 예일대 의대 산부인과의

메리 민킨 교수는 “호르몬요법의 효능을 믿고 나 역시 호르몬제를 복용한다”고

말했다.

반면 코넬대 의대 심장내과 리처드 푸크스 교수는 “HRT가 심장병과 뇌졸중·폐경색·유방암을

증가시킨다는 합리적 증거가 있다. 여성들은 이 요법을 중단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최근 NIH 후원의 연구에서 HRT를 받은 사람은 유방암을 진단하는 ‘마모그램’에서

부정확한 결과가 나와 유방암 조기진단에 실패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환자의 선택

국내 산부인과 의사들은 “우리는 미국과 실정이 다르며 HRT의 부작용이 과장됐다”고

주장한다. 폐경기의 우울증과 무기력증 같은 증세로 삶의 질이 위협받고 있는데 부작용을

겁내 치료를 못 받게 하는 것은 무책임하다는 것이다.

서울대 의대 산부인과 김정구 교수는 “HRT는 폐경 증상뿐 아니라 수면장애도

누그러뜨리며 피부노화도 늦춘다”며 “한국의 유방암 발병률은 미국의 6분의 1에

불과한 데다 이 가운데 3분의 2는 폐경 전에 발생하므로 정기적으로 유방암 검사를

받는다면 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폐경학회는 HRT가 비뇨생식계 건강에도 도움이 되며 대장암과 치매를 예방하는

효과도 기대된다고 설명한다. 다만 유방암을 앓은 적이 있거나 가족력이 있는 사람,

자궁내막암·급성혈전장애·간질환·담낭질환이 있는 사람은 전문의와

상의해야 한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골다공증으로 인한 골절을 예방하는 데도 HRT가

효과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한양대병원 내과 최웅환 교수는 “골다공증 예방을 위해 HRT를 받아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콩이나 올리브·야채·과일을 듬뿍 섭취하고

야외에서 적절하게 운동하는 것이 더 이로울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의대 외과 한원식 교수는 “폐경기 증세는 시간이 지나면서 줄어들기 때문에

호르몬제제는 짧게 복용하는 것이 좋으며 10년 이상은 곤란하다”면서 “65세 이상은

심장병·치매·뇌졸중 위험을 높이기 때문에 복용을 자제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미국의 내분비내과 전문의 캐런 델가도는 “의사가 모든 환자를 각각 한 명의

개인으로 보고 최선의 예방책을 내놓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유방암

가족력이 있지만 폐경 증세 때문에 도저히 사회생활이 불가능한 폐경 여성에게 에스트로겐을

처방했다. 그러나 그는 “호르몬이 젊음의 샘은 아니다”고 단언했다. 호르몬이 심장병,

기억력 상실 등 노화현상을 예방하는 데 만병통치약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폐경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식사, 운동, 규칙적 수면, 취미활동 등을 곁들여야 하며

약은 꼭 필요할 때 최소한으로 써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 기사는 중앙 SUNDAY 3월 2일자에 게재됐던 것입니다.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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