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 밥을 잘 안 먹어요”
식욕부진 지속 성장호르몬 감소-면역력 저하
긴 겨울방학이 끝나고 개학을 한 뒤 어린이가 입맛이 없어하고, 밥을 잘 먹지
않는 일이 많다. 방학 동안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서 입에 당기는 대로 군것질로
배를 채우다가 규칙적인 학교생활로 바뀌는 데 적응하기 쉽지 않은 탓이다. 오는 3월
새학기가 시작되면 어떤 어린이는 새로운 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나 적응하는 데서 오는
긴장과 스트레스가 원인이 돼 식욕부진을 일으킬 수도 있다.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을 키우는 부모들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아이가 잘
먹지 않아 성장이나 두뇌 발달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부모가 밥그릇을
들고 쫓아다니며 성화를 부려도 한 숟갈 뜰까 말까한 어린이들이 많다.
경희의료원 한방병원 소아과 이진용 교수팀이 작년 5월 어린이 환자를 소화기
질환 종류별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소아 소화기 환자의 70% 가량이 식욕부진인
것으로 드러났다. 보통 배가 아프다고 병원을 찾는 어린이들의 3분의 2 이상이 밥을
잘 먹지 않는 것이다.
식욕부진은 단순히 키가 잘 크지 않는 등의 발육 문제뿐만 아니라 성장호르몬
분비를 감소시키고 면역력을 저하시켜 만병의 원인이 된다. 심하면 소아 당뇨병을
부를 수도 있다.
▽식욕부진 증상과 영향
주부 이 모 씨(40)는 여덟 살 된 아들과 식사 시간마다 전쟁을 치른다. 아이가
입이 짧아 밥도 조금 먹고 그나마도 먹이려면 애원하고 윽박지르기를 수차례 해야
한다. 잘 먹지 않아 환절기마다 감기를 앓는 등 잔병치레가 많고 얼마 전엔 장염에
걸려 입원하기도 했다.
소아 식욕부진은 증상에 따라 크게 여섯 가지로 나뉜다. 구체적으로 보면 △간식이나
군것질도 하지 않으면서 식사량이 적은 경우 △음식을 잘 삼키지 못하고 입에 물고만
있는 경우 △며칠은 잘 먹다가 다음 며칠은 거의 안 먹는 등 주기적인 경우 △좋아하는
것만 먹고 새로운 음식은 먹지 않으려는 경우 △식사할 때 복통을 호소하며 식사를
거부하는 경우 △식사에 집중하지 못하고 텔레비전을 보거나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식사하는 경우가 있다.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과자나 음료수와 같은 고탄수화물 음식은 성장호르몬 분비를
감소시킨다. 미국에서도 어린이들에게는 과일주스 등의 음료를 하루에 한 잔 이하로
먹을 것이 권장된다.
성장호르몬은 뼈와 근육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단백질이 풍부한 음식을
먹어야 성장 호르몬 분비가 많아진다. 성장호르몬은 근육을 만드는 아미노산의 흡수를
높여 단백질의 합성을 자극해 근육을 자라게 하므로 어린이 성장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한창 성장하는 어린이들은 영양분 섭취가 매우 중요하다. 식욕부진이 지속되면
면역력이 저하되어 쉽게 질병에 노출될 수 있다. 게다가 대부분의 식욕부진은 복통,
어지러움, 두통 증상을 동반한다. 어린이들은 심리적 요인으로 한 곳이 아프면 다른
곳도 아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체력저하로 감기 등에 걸리기 쉬운 것은 물론 짜증을 잘
내는 신경질적인 성격이 될 수도 있다.
어린이들이 초콜릿, 사탕류 등 당분이 많은 음식을 즐겨 먹거나 밥은 잘 먹지
않으면서 스파게티, 라면, 국수 등 면류를 잘 먹는다면 탄수화물을 과다 섭취해 소아
당뇨병에 걸릴 수 있다. 종전에는 소아 당뇨병 대부분이 유전적 요인에 의해 발병했지만,
최근에는 후천적 생활환경 요인에 의한 발병이 증가하고 있다.
가톨릭대 의대 강남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서병규 교수는 “식욕부진만으로 당뇨병에
걸리는 것은 아니지만 식욕부진으로 군것질만 한다면 당뇨병에 걸리는 하나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박민선 교수는 “대부분의 소아 식욕부진은 어린이가 제대로
먹지 않는 경우보다는 간식을 많이 먹어 밥을 먹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며 “체중이
줄거나 성장에 이상이 없다면 부모가 지나치게 걱정하기보다 일정 기간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것도 좋다”고 조언했다.
박민선 교수는 “2~3주 지켜보아도 아이의
식욕부진이 좋아지지 않는다면 축농증, 비염 등의 감염이나 갑상선 기능저하 등 내분비계
질환이 있을 수 있으므로 주치의와 상담해 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어린이 식사지도법
어린이가 특별한 병이 없다면 일시적 식욕부진은 별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린이가 2~3주 이상 잘 먹지 않는다면 다음과 같은 방법을 사용해 보는 것이
좋다.
△‘새 나라의 어린이’가 되도록 교육한다=적어도 밤 10시 이전에는 잠자리에
들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도록 한다. 똑같은 시간에 잠을 자고, 일어나는 것이 중요하다.
△규칙적인 식사시간을 정한다=식사를 걸렀다고 아이들이 편한 대로 음식을
주지 말고 일정한 식사 시간을 정하고 식사 10~15분 전에 어린이에게 알린다. 어린이가
스스로 먹는 것에 준비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강제로 먹이지 않는다=아이가 잘 먹지 않는다고 쫓아다니면서 강제로
먹이거나 혼을 내면 먹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역효과가 나타난다. 먹기 싫어할 때는
그냥 놀게 두고 다음 식사 때 잘 먹으면 칭찬을 해 주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신체활동을 늘린다=움직이지 않고 집에서만 있게 되면 에너지 소비가
적어 식욕이 없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잘 먹지 않으려고 하면 실내보다는 실외 운동
등 움직임이 많은 활동을 적당히 시키는 것이 좋다. 반대로 먹지는 않는데 신체활동이
지나치게 많아 감기에 자주 걸리는 어린이들은 놀다가 밥을 먹게 하지 말고, 먼저
먹고 놀게 하면 힘이 빠져 감기에 걸리는 일은 거의 없어지므로 먹고 움직이도록
생활패턴을 바꿔 준다.
△고탄수화물보다는 고단백질 식단=총 에너지의 60% 이상이 탄수화물로
구성되는 전통적 한국 식사는 철분,칼슘,아연이 부족하거나 성장호르몬 분비를 저해할
수 있다. 어린이들은 신체조직 구성을 위해 단백질이 많이 필요하므로 고기, 생선
등의 동물성 단백질을 충분히 먹을 수 있도록 한다. 또 아연이 부족한 경우도 식욕부진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해산물, 고기, 굴 등도 많이 먹도록 하는 것이 좋다.
△스트레스는 없는지 살핀다=아이의 표정이 밝지 않고, 갑자기 2~3주 이상
잘 먹지 않는다면 주변 친구나 선생님과의 관계에는 문제가 없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어린이들도 어른과 마찬가지로 스트레스가 있으면 잘 먹지 않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