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금녀 구역 봄바람 분다

대학병원 흉부-신경외과 알파걸 도전 잇따라

의료계 금녀 구역 봄바람 분다대학수학능력시험 만점으로 수석 입학했던 화제의 인물 남혜석은 의과대학도 수석으로

졸업하고 인턴 성적도 최고였음에도 기피학과에 속하는 흉부외과를 지원해 또 한

번 병원 내 화제가 된다. 인기리에 방영중인 MBC드라마 ‘뉴하트’ 여주인공 남혜석

역을 맡은 탤런트 김민정은 당차고 씩씩한 젊은 세대 여의사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흉부외과 교수는 남혜석의 뛰어난 실력은 인정하지만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떨어뜨린다. 남혜석은 남녀차별에 항거하며 병원 앞 농성에 들어가고, 마침내

교수의 마음을 움직여 흉부외과 전공의 과정을 시작한다.

10여년 전만해도 외과 파트는 여의사들이 감히 넘볼 수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요즘엔 TV 드라마가 아니라도 금녀의 벽을 무너뜨리고 열심히 활동하는 여성 외과

의사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최근 5년 새 외과파트

여의사 늘어

“외과의사가 여자면 환자나 보호자들이 깔보는 경향이 있어요. 나이 드신 분들은

간호사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응급실에서 제가 흉관 삽입술을 한다고 하면

믿기지 않는지 보호자분이 한 번 더 물어보기도 합니다. 이런 여의사에 대한 차가운

편견에 신경쓰다보면 끝이 없어요. 매순간 제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해요. 열심히 하다보면 언젠가는 좋은 의사라는 얘길 들을 수 있겠죠.”

한양대병원 흉부외과 전공의 1년차 송영주 씨는 오는 3월 2년차에 올라간다.

“여의사는 못 믿겠어, 남자 의사로 바꿔줘요” “여의사도 심장 수술을 할 줄

알아요?” 환자가 무심코 던지는 이런 말들이 여의사에겐 상처가 되기도 한다. 환자들은

아직도 ‘수술을 집도하는 외과의사는 남자’라는 편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 흉부외과에 가겠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에게 별의별 말을 다 들었습니다.

체력적으로 힘들어 남자들도 꺼리는 판국에 여자애가 왜 그 고생을 사서 하느냐,

대부분이 장시간 수술이고 응급 상황도 많은데 나중에 결혼하면 어쩌려고 그러냐,

남자들 사이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냐... 모두들 반대했죠. 무엇보다도 전공의 4년

동안 죽어라 배워도 흉부외과 전문의가 돼 심장수술을 계속할 수 있는 기회는 전체

전공의의 10%도 채 안 됩니다. 나머지는 흉부외과 수련을 하지 않아도 되는 가정의학이나

응급의학 분야에 가게 되죠.”

하지만 송 씨는 “매일 죽음의 길목에서 새 생명을 얻는 환자들을 볼 때마다 흉부외과에

지원하길 잘 했다는 생각을 한다”며 “환자가 건강을 되찾는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끼고 스스로도 자부심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최근엔 신경외과에도 여의사의 진출이 늘고 있다. 공개모집의 높은 경쟁률을 뚫고

3월 1일 연세의료원 신경외과 전공의 과정을 시작하는 김소연 씨는 합격 이후 자신에게

쏟아지는 관심에 대해 특별할 것이 없다며 담담한 모습을 보였다.

“저는 원하는 곳을 지원하고 합격했을 뿐인데, 여자라는 이유로 주목받는 것은

조금 의아합니다. 전 강북삼성병원 신경외과에서 인턴 생활을 했어요. 신경외과는

흉부외과와 마찬가지로 수시로 환자의 경과를 살펴야 하기 때문에 잠잘 시간이 항상

부족해요. 그래서 남자다 여자다 할 것 없이 체력적인 한계를 쉽게 느낄 수 있죠.

이럴 때 환자에 대한 애정과 내 일에 대한 자부심이 없다면 결코 버텨낼 수가 없어요.

인턴 생활을 하면서 신경외과와 환자에 대한 각별한 마음을 갖게 됐고 그 마음이

저를 여기까지 이끌었을 뿐이에요.”

한국여의사회 천정은 청년분과위원회부위원장(서울대어린이병원 소아영상학과

교수)은 “과거엔 외과 면접을 가면 '우리는 여자 안 뽑습니다'라는 한마디를 듣고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며 “한 명, 두 명 외과파트에 진출한 여의사가 제몫을

잘 해낸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최근 5년 사이에 외과 파트에 여의사 진출이 늘어나고

있다”라고 말했다.

       유명 대학병원

인턴 절반이 여성

요즘엔 대학병원에서 교육받는 전체 인턴의 절반이 여성이다. 여성의 합격은 특히

유명 대학병원에서 두드러졌다. 삼성서울병원은 합격자의 63.6%가 여성이었고, 서울아산병원은

49.3%, 서울대병원은 43.3%였다.

환자가 대학병원, 의원 등에서 만나는 의사 10명 중 2명이 여성이라는 통계도

나왔다. 보건복지부는 2007년 12월 기준으로  전체 9만1485명 중 여성이 20.9%(1만9127명)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2000년에는 17.6%, 2005년에는 19.7% 로 여의사 수는 점차 증가하고

있다.

2005년까지는 서울대 의대 여학생 수는 남학생의 1/4 정도에 불과했다. 재작년

남녀 비율은 50 대 50으로 화제가 됐고, 작년에는 여학생의 비율이 60%까지 증가했다.

이처럼 여의사 수가 많아지면서 흉부외과, 신경외과, 정형외과, 비뇨기과 같은

금녀의 구역에도 자연스레 여의사의 진출이 확대되고 있다.

부산대 의대 흉부외과 장윤희 교수는 “외국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흉부외과에

근무하는 여의사는 거의 없다”며 “흉부외과로 한정지으면 오히려 외국보다 우리나라의

여의사 진출과 활동이 더 활발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고려대 안산 정형외과 왕준호 교수는 “현재 대학병원 전체에서 정형외과 여자

교수는 2, 3명에 불과하며 여전공의는 2명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여의사 경쟁력

높아 진출 확대될듯

전문가들은 외과 파트에서 여의사의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앞으로는 여의사의 외과

진출이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연세의료원 신경외과 윤도흠 교수는 “옛날엔 수술 전 과정을 의사 개인이 몸으로

때워야 했다”며 “아무래도 여자는 체력적으로 약하다고 생각해 뽑지 않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의료기술이 발달해 로봇수술이나 최첨단 의료 기구를 이용해 수술하기

때문에 체력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며 “오히려 여의사의 섬세한 수술 기술이

막강한 경쟁력을 갖는다”고 말했다.

천정은 부위원장은 “의대생활을 살펴보면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집중력이 뛰어나고

학업성취도가 높은 편”이라며 “요즘 여학생들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 외과를 지망하는 여학생이 많아져 여성의 외과 진출이 확대될 것이고, 그에

따라 외과 여의사에 대한 사회적 편견도 점점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금녀의 벽에 도전한 최초의 여의사는 서울대 의대 소아외과 박귀원 교수다. 박

교수는 1977년 당시에 외과를 지원한 유일한 여성 전공의였고, 1980년 서울대 의대에

여교수로는 가장 처음 이름을 올렸다.

30년 전 박귀원 교수가 금녀의 벽에 한 줄기 균열을 일으킨 이후로 많은 여의사의

도전이 금녀의 성곽을 무너뜨리고 있다. 무너진 성곽 너머로 봄바람이 드나들면서

여기저기 새싹이 솟아나고 꽃들이 피어났다. 여의사의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이대목동병원 비뇨기과 윤하나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비뇨기과 여의사가

됐다. 그의 뒤를 이어 비뇨기과에 진출한 여의사는 현재 14명이다.

연세의료원 심장혈관센터에는 여의사 5명이 함께 일하고 있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심장혈관외과 이삭 교수, 심장마취과 곽영란 교수, 심장내과 심지영 교수, 소아심장과

유병원 교수, 영상의학과 김영진 교수가 그 주인공들이다.

남성보다 씩씩하고 겁 없는 여성을 알파걸이라고 한다. 사회 각 분야에서 알파걸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으며 이런 현상은 의료계에도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윤도흠 교수는 “알파걸 같은 신조어가 등장할 만큼 똑똑한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면서 여의사에 대한 의료계의 편견은 물론 환자의 편견도 줄어들고

있다”며 “여의사는 꼼꼼하게 진단하고 섬세하게 수술하는 등 환자에 대한 배려도

뛰어나 외과파트에서 여의사 진출은 점차 확대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조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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