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도 진료받는 요령이 있다
의사-환자 대화·신뢰구축 치료효과 높아져
젊은 시절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고생을 한 할머니 김 모(64) 씨는 한 종합병원에서
수년째 관절염 치료를 받고 있다. 지금은 경제적으로 여유롭게 살고 있지만 자식들의
재산 싸움에 스트레스를 받아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다. 담당 의사는 스트레스
해소가 관절염 치료에도 효과가 있다고 생각해 김 씨에게 속내를 털어놓도록 유도했다.
김 씨는 일주일에 두 번씩 관절염 진료를 받으면서 의사에게 답답한 속내를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고 고백했다. 담당 의사와 김 씨의 신뢰가 깊어지면서
최근 김 씨의 관절염 치료 속도도 한결 빨라지고 있다.
관절염, 당뇨, 심장병 등 만성질환의 치료에 의사-환자 사이의 효과적인 대화가
약물 치료에 못지 않게 큰 역할을 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미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원활한 환자와 의사의 대화를 위해 의사의 교육뿐만
아니라 환자의 교육에도 노력해 왔다. 우리나라에서도 필요성을 인식해 의대 교육
과정에 의료윤리 교실을 운영하는 대학들이 늘어나고 있다. ‘의사-환자 관계 윤리’
과목은 의사가 환자를 대할 때 필요한 경청, 공감, 안심, 설명, 유머 등의 대화 기술과
표정 등을 가르친다.
의료계는 ‘18초 진료’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의사가 환자를 만나 진료하는 시간이
짧은 것이 문제점으로 대두되고 있다. 의사들 역시 시간에 쫓기는 진료 환경에 답답함을
느끼지만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는 문제가 아니므로 짧은 시간에라도 효율적인 치료가
이뤄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취지에서 의사-환자간의 신뢰 구축을 위한 대화가 중요한 것이다.
같은 병을 가지고 있어도 모든 환자를 동일시 할 수는 없다. 개개인의 치료 방침은
똑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의학적인 질병의 차이 외에 개인의 성격, 나이, 경제적인 여건, 직업, 시간적
여유 등의 여러 가지 조건에 따라 사람마다 치료방법은 달라진다.
맞춤 양복이 기성복보다 더 편한 것과 같은 이치다. 의사와 환자 사이에 바람직한
대화가 이뤄졌을 때 환자에게 꼭 맞는 치료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의사의 노력
진료 중에 환자에게 의도적으로 말을 놓거나 암이나 백혈병 등 환자에게 예상하지
못한 진단 결과를 알릴 때 환자의 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쉽게 말하는 의사들이
있다.
어려운 의학 용어를 쉽게 설명하려 노력하는 의사는 많지 않다. 진료 과목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하루에도 30~100여 명을 쉴 틈 없이 진료하다보면 빨리 다음 환자를
진료해야 한다는 심리적 부담 때문에 성의껏 설명하는 것에 인색해지는 것.
환자 마음이 답답하고 급하듯이 의사도 주어진 시간동안 여러 환자를 치료해야
하기 때문에 몸과 마음이 매우 바쁘다.
의료계 스스로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교육을 확대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울산대 의대 인문사회의학과 구영모 교수는 “의료윤리 교실에서는 의사가 환자에게
애정을 갖고, 환자가 의사를 믿고 의지할 수 있도록 만드는 기본적인 생명존중과
인류애적 자세를 교육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의사-환자 관계 윤리 수업에서는 환자가 충격, 부정, 분노, 원망에 휩싸였을
때 최적의 진료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대화법을 미리 공부하기도 한다”며 “진료
현장에 있는 전공의들도 의료윤리의 중요성을 인식해 틈틈이 시간을 내 사이버 강의
방식으로 수업을 듣고 있다”고 덧붙였다.
일부 의사들은 환자의 진료기록을 미리 검토해 환자의 단기-중기-장기 치료계획을
세워두고 진료에 임한다. 미리 환자의 상태를 알고 있기 때문에 진료 시간에는 환자의
눈을 바라보며 환자의 말에 경청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한 의사는 질문과 동시에 환자의 기록을 살펴보기 때문에 환자와 눈을
마주칠 여유를 갖기 힘들다.
환자들에게 인기가 좋은 의사들은 하나같이 실제 진료 시간엔 환자가 왜 병원에
왔는지, 가족 환경은 어떤지, 개인적인 스트레스 요인은 무엇인지 등을 파악하는
것에 더욱 중점을 둔다. 환자의 신뢰를 얻었을 때 의사의 진료가 더 큰 효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환자의 노력
환자 역시 짧은 진료 시간을 잘 이용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준비를 해둬야 한다.
병원에 가기 전 메모 용지에 중요한 질문 사항은 꼭 적어 간다. 진료 시간이 촉박할수록
한 번에 모든 것을 알려고 하지 말고 한 번 방문에 몇 가지씩 중요한 순서대로 차근차근
풀어나가는 것이 좋다.
가능하면 구체적으로 질문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병의 상태가 어떤가요?”라는
질문보다는 “얼마나 오래 치료해야 하나요?”라고 묻는 게 좋다. 또 “임신이 가능한가요?”
보다는 “본인은 원하지 않지만 남편이 외동아들이라 시댁 어른이 강력하게 아들을
원하는데 임신이 가능할까요?”라고 묻는 것이 바람직하다.
질문했던 내용은 집에 돌아간 후에 기록해두면 잊어버리지 않고, 다음에 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일을 줄일 수 있다.
한양대병원 류마티스 내과 배상철 교수는 “의사는 진료하면서 알게 된 개인적인
사항은 절대 비밀을 유지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일이 누설될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약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을 때는 꼭 자기가 먹고 있는 약과 처방전을 들고
가서 물어 보는 것이 짧은 시간동안 정확한 답변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다”고 설명했다.
[도움말]
한양대병원 류마티스 내과 배상철 교수
울산대 의대 인문사회의학과 구영모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