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하다고 숭례문 방화”
반사회적 인격장애 보이는 피의자 정신분석
국보 1호인 숭례문을 10일 밤 잿더미로 만든 방화 피의자 채 모(70) 씨는 경찰조사결과
자신의 토지 재개발 보상에 대한 ‘불만’을 참지 못해 이번 사건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12일 채 씨가 1997~8년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 있는 자신의 토지가 재개발되는
과정에서 시공사로부터 보상을 충분히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불만을 품고 숭례문에
불을 지르겠다는 마음을 먹게 됐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채 씨 집에서 발견된 ‘오죽하면 이런 일을 하겠는가’라는 제목의 4장짜리
편지에 토지보상금 문제, 민원 제기가 제대로 처리되지 못한 데 대한 서운함, 사회에서
받은 냉대 등의 이야기가 빼곡히 담겨 있었다고 전했다.
채 씨의 범행은 계획적이고 반복적이었다. 채 씨는 지난해 7월과 12월 두 차례에
걸쳐 숭례문을 사전답사 하는 등 치밀한 사전계획을 세웠다. 채 씨는 같은 이유로
2006년 4월 창경궁 문정전에서 불을 질렀다가 문화재보호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방화는 타인의 건물이나 재산에 의도적으로 불을 내는 범죄를 말한다. 방화의
목적이나 이유는 개인적 원한에 의한 앙갚음, 협박, 공갈, 사회 반항심의 표출, 관심
끌기, 어린이의 장난, 경제적 이득, 범죄 은폐, 정신질환, 혹은 반사회적 성격장애
등이 꼽힌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채 씨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충동을 참지 못하고 반복적으로
방화를 한 점 등으로 미뤄 반사회적 인격장애인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성균관대 의대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전홍진 교수는 “보통 사람들은 분노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수그러들지만 방화를 통해 분노를 지속적으로 표출한 채 씨는 반사회적
인격장애 증세를 보인다”며 “남성이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보이면 알코올 중독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은데 채 씨가 방화 당시 술 냄새가 났다는 정황으로 볼 때 알코올
중독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전 교수는 “숭례문 화재와 같은 사회적 사건 이후에는 모방범죄가 늘어난다”며
“언론에서 너무 선정적인 보도를 내보내 잠재적인 반사회적 인경장애자를 자극하기보다
문화재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는 쪽으로 보도 방향을 잡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성균관대 의대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오강섭 교수는 “채 씨의 행동은 사회와의
소통에 문제를 겪고 분노조절을 제대로 잘 못하는 정신병으로 인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며 “범죄자의 정확한 심리적 배경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조사와 진단이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심리학자들은 채 씨가 토지보상 등 ‘억울함’을 해소하려는 수단으로 폭력수단
중 하나인 방화를 택했다고 분석했다.
중앙대 심리학과 정태연 교수는 “서양 심리학에서 억울함은 잘 거론되지 않지만
한국인의 심리에서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며 “억울함이 해소되지 않으면 결국
한(恨)이 되는데 억울함을 해소하기 위해 간혹 폭력적인 방법을 택하든가 극단적인
경우 자살을 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채 씨는 처음에 건설사, 시청, 대통령 비서실 등을 상대로 수차례
진정과 이의를 제기하며 합리적인 방법으로 억울함을 해소하려 했지만 실패하자 폭력적인
방법으로 공공유산인 숭례문에 방화를 했다”며 “본인의 뜻대로 되지 않는 사회체제에
대한 반항, 저항, 분노의 표출이기도 하다”고 분석했다.
정 교수는 “억울함은 많은 사람들이 겪기 때문에 억울한 상황에 양보하거나 협상할
줄 아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채 씨처럼 억울함을 다스리지 못할 경우 심리치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