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의사 돕는 변호사 되겠다

변호사 최초 의사국시 합격 이경권 변호사

동네의사 돕는 변호사 되겠다의사나 변호사나 웬만큼 공부해서는 되기 어렵다는 전문직이다. 법무법인 이지의

이경권 변호사(38)는 지난달 19일에 발표한 72회 의사 국가시험에 통과해 의사 자격도

얻었다. 의사가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일은 있지만 변호사가 의사 시험에 합격한

것은 그가 최초다.

“의료 소송을 맡으면서 법률지식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의학 전문 서적을 찾으면서 열심히  노력해도 모래 위에 집 짓는 느낌이었거든요.”

법무법인의 보통 변호사들은 각자 전담하는 분야가 있어 한 분야를 여러 건 맡다

보면 노하우가 쌓이는 법인데 의료 소송은 맡을 때마다 새롭고 어려웠다고 한다.

문제가 제각기 다른 소송을 맡을 때마다 체계적인 지식이 없어 조금씩 공부해둔 의학지식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 변호사는 1998년 성균관대 법대를 졸업하고 이듬해 사법시험 41회에 합격해

법률사무소에서 의료 소송을 담당하는 변호사로 활동하던 중 한계를 느껴 2004년

가톨릭대 의대에 편입했다. 가톨릭대에서는 사법연수원생이나 공인회계사에겐 편입

조건의 하나인 화학 물리학 생물학 수업 이수를 면제해줬다. 그래서 영어, 심층 구술시험,

면접 등의 시험을 거쳐 들어갈 수 있었다.

더 나은 의료전문변호사가 되고 싶어 의대에 진학했지만 고난의 연속이었다. 학기

중엔 학교에 나가 방대한 양의 의학 공부를 하고 방학 때는 회사에 나가 변호사 일을

해야 했다. 아내와 아들을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 보내 생이별하고 열 살 이상 어린

학생들과 경쟁하는 것도 힘들었다.

의학도로서 응급실을 경험한 것은 잊을 수 없는 일이다. 다 죽어가던 환자가 며칠

뒤 멀쩡하게 제 발로 걸어 나가는 걸 보면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다. 이 변호사는

응급실에서 사망 직전의 환자를 대상으로 심폐소생술을 두 번 해봤는데 모두 실패했다.

그런 그에게 심폐소생술로 환자를 살리는 의사들이 위대해 보이는 것은 당연지사다.

무엇보다 분만실에서 아기가 나오는 걸 봤을 때 느꼈던 뭉클한 감동. 생명의 탄생을

돕는 의사를 보고 의사란 생명을 관장하는 직업이라는 걸 깨달았다.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게 의사라는 직업의 가장 큰 매력이죠. 굉장히 보람찬

일이고요. 그러나 저는 어디까지나 의료전문변호사 일을 제대로 하고 싶어 의학을

배운 겁니다. 의사가 생명을 살리는 일을 충실히 해낼 수 있도록 법률적 지원을 제대로

하고 싶습니다.”

의학을 공부하면서 과거 맡았던 소송에서 변호 활동을 잘못한 부분도 깨달았다.

수술 후 나타난 증상이 이상하다는 환자의 변호를 맡았는데 환자는 승소해 손해배상금도

많이 받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환자의 말이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인데다가 수술

후 충분히 나타날 수 있는 경과였다. 의료지식이 부족한 상황에서 환자 말만 듣다보니

생긴 일이다.

“앞으로 소규모 의원의 의사들을 돕는 피고 전문 변호사가 되고 싶습니다. 큰

병원은 법무팀도 있으니 의료사고를 해결할 능력이 있지만 작은 의원의 의사들은

속수무책이거든요.”

과거에 비해 의료소송이 많이 늘고 있지만 작은 의원급의 개원 의사들은 이에

대한 대비가 전혀 없어 의료소송이 나면 업무중지 상태에 직면한다. 일도 일이지만

의사들이 겪는 정신적 스트레스도 상당하다고 한다. 인기리에 방영중인 MBC TV 드라마

‘뉴하트’에서 ‘정의로운’ 외과의사 최강국(조재현 분)이 악의적인 의료소송에

휘말리자 “환자 꼴 보기도 싫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왔다.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악질 의사도 있지만, 악질 환자도 있다.

최근 의료소송 수요가 크게 증가하면서 환자 전문 변호사는 늘고 있다. 대형 병원은

법무팀에서 의사 전문 변호사를 고용해 의료 소송에 대처한다. 이 변호사는 방패막이가

없는 동네 의원 의사들을 돕는데 자신이 배운 의학 지식이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의사와 환자가 서로 적대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의료소송을 걸어

법정까지 가는 것은 서로에게 상처가 될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타협을 이끌어내는

변호사가 되고 싶습니다.”

이 변호사는 의사 자격증은 있으나 환자를 진료한 일이 없고 앞으로도 개원의가

될 생각은 없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의사보다는 환자의 입장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의사와 환자  모두의 눈으로 의료계를 바라볼 수 있어 앞으로 일을 할 때 양쪽

입장을 모두 고려하며 변호할 계획이다. 그는 무엇보다 의사와 환자 사이에 신뢰를

구축하는 게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요즘 의사와 환자 사이에 불신이 깊어져 있어

안타깝다고 한다. 환자들은 의사를 무시하고 믿지 않기보다 진심으로 의사를 존중해주면

의사도 자신감을 얻어 진료에 성심껏 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의사들도 리베이트

등에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환자를 위하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는 변호사인 동시에 의사지만 변호사 일을 먼저 시작해서인지 변호사에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변호사 사회도 못지않지만 의사 사회가 좀 더 경직돼 보이더군요.

앞으로는 의사 사회도 좀 변하겠죠? 저도 이런 변화에 힘을 보태겠습니다.”

이 변호사는 의사 자격증을 따면 바로 인턴(수련의)을 할 계획이었지만 지금 당장은

바빠 짬을 내지 못한다. 2~3년 후에 인턴을 수료한 뒤 시간이 허락한다면 레지던트(전공의)에도

도전하고 싶다고 포부를 비쳤다.

 

 

    이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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