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발병 전 유방 예방절제 논란

한쪽 암 걸린 환자 불안해 “이쪽도 잘라 달라”/유전자 검사 없는 절단은 의사 윤리 문제 따라

암발병 전 유방 예방절제 논란

주부 조 모 씨(45)는 2005년 유방암으로 왼쪽 유방수술을 받았지만 최근 오른쪽

가슴에서 멍울이 서너 개 발견돼 A대학병원을 찾았다. 유전자 검사 결과 암 덩어리는

아니었지만 불안한 마음에 의사에게 유방을 잘라달라고 부탁했다. 의사는 조 씨의

건강한 유방을 잘라줬고, 같은 병원 성형외과 의사가 실리콘 보형물을 넣어 성형유방을

만들어줬다. 조 씨의 유방암 수술을 진행한 의사는 “조 씨 같은 수술을 해주면 병원에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 한국유방암학회 등 관련 단체 조사에도 보고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유방암학회가 2005년 말 전국 43개 병원에서 유방암 수술을 하는 학회 회원인

의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암이 없는 건강한 유방을 절제한 경우는 단 한 건도

없는 것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취재 결과 상당수 의사들이 건강한 유방을 잘라낸

경험이 있다고 털어놨다.

◆ 불안 심리에 절제 요구

우리나라 여성에게 가장 많이 발병하는 암이 유방암이다. 최근 유방암 진단 및

치료 기술이 발달하면서 유방암 수술 후 5년 생존율이 81%를 넘어섰다.     

유방암 수술방법은 암 덩어리의 크기나 위치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암 덩어리만

부분적으로 도려내는 수술을 한 다음 도려낸 곳만 성형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큰

암 덩어리가 피부조직과 가까운 곳에 생겼을 땐 유방 전체를 잘라내기도 한다.

그러나 한쪽 유방암에 걸린 환자가 불안심리 때문에 암에 걸리지 않은 나머지

유방의 절제를 요구하고, 의사도 마지못해 잘라주는 수술이 이뤄지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수술이 한해 평균 몇 건이나 이뤄지는지 보고된 바는 없다.

“나도 유방 수술을 여러 차례 해봤지만 그냥 유방을 절제해주면 수술 기록을

안 남기지. 무슨 자랑스러운 수술이라고... 우리끼리(유방 전문의)도 이런 얘긴 안

해.” (A병원 A교수)

“한쪽 유방에서 유방암 수술을 받았던 환자인데 남편까지 데리고 와 불안함을

호소하더라고. 암이 생길 것 같아 불안해서 하루도 살 수 없다는데 다른 방도가 없지

않나. 하도 잘라 달라고 해서 몇 번 거절하다가 결국엔 수술해줬지.” (B병원 B 교수)

“의사들이 공식적으로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유전자 검사도 하지 않고 건강한

유방을 잘라주는 경우는 꽤 된다. 내가 아는 의사도 몇 명 있다.” (C병원 C 교수)

“2명은 유전자 검사해서 암이 아니라고 설명했지만 환자들이 하도 원해서 절제해줬다.

나머지 둘은 검사도 안 하겠다고 버텨서 그냥 잘라준 적이 있다.” (D병원 D 교수)

일부 유방성형 전문의들은 부분 수술로 완치가 가능한 환자도 유방 전체를 절제하고,

심지어 건강한 유방까지 잘라내는 이유 중 하나는 부분적으로 성형했을 때보다 전체적으로

했을 때 더 예쁜 모양의 유방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어차피 성형할 거라면 더 예쁘게 하는 게 좋잖아. 부분적으로 치료를 하다가

부분 성형을 하면 모양이 예쁘게 나올 수가 없어. 하지만 처음부터 다 잘라내고 시작하면

자르기 전에 만들 것을 생각하니까 더 예쁜 유방을 만들 수 있지.” (G병원 G 교수)

“외과에서 환자들이 넘어올 때 유방 전체를 절제하고 오는 환자들이 많다. 부분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환자들인데도 다 자르고 온다.” (H병원 H 교수)

◆ 윤리적 문제

유방암 환자들이 불안감에 건강한 유방을 잘라달라고 부탁한다 해도 이를 들어주는

의사들의 행위에는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서울대병원 유방종양클리닉 노동영 교수는 “아직 마땅한 진료체계가 없다보니

유방 보존과 절제가 의사 개인에 따라 좌지우지 되는 경향이 있다”며 “하지만 의사들이

유전자 검사도 권하지 않고 유방을 잘라주는 것은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의료사고 전문 법무법인 해울 대표 신현호 변호사는 “암이 없는 유방 전체를

절제하는 것은 최소 침습의 원칙을 지키지 않는 의사의 과잉진료다”며 “수술 부위를

결정하고 수술 방법을 선택하는 의사의 고유 권한을 법적으로 처벌할 수는 없지만

환자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가 분명한 만큼 의료계 스스로 반성하고 또 올바른 진료체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내 유방암 발병 유형이 제대로 조사되지 않은 현실에서 외국처럼 예방적으로

건강한 유방을 잘라내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울산대 의대 서울아산병원 유방암 클리닉 손병호 교수는 “외국에선 건강한 반대쪽

유방에서 암이 생길 확률이 80%가 넘는 유전성 유방암 환자에 한해서 예방적 차원의

절제 수술을 허락하는 지침이 있다”며 “외국은 전체 유방암 환자의 5~10% 정도가

유전성 유방암 환자인 반면 우리나라는 유전성 유방암 환자가 거의 없고 이에 대한

통계나 연구도 이제 막 시작 단계이기 때문에 현재로썬 건강한 유방 절제를 합리화

할 수 있는 의학적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원자력 병원 외과 노우철 박사는 “지난 5년간 우리 병원 환자들을 대상으로 관찰한

결과, 유전성 유방암 환자의 암 재발 확률은 5% 미만으로 유방 전체를 절제했을 때

유방암 재발과 비슷한 수준이었다”며 “유전성 유방암 환자의 유방을 전체 다 잘라내도

남아있는 조직에서 암이 발병할 수 있기 때문에 절제하지 않고 부분적으로 치료하는

방법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 성형유방 부작용

유방암 치료를 받았던 여성들은 수술을 받은 후에 생명을 되찾았다는 기쁨보다

정상적인 유방을 잃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 우울증에 걸리기도 한다.

한쪽 또는 양쪽 유방이 없는 여성은 공중목욕탕, 스포츠센터 등에 가거나 여러

명이 함께 여가활동을 하는데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결혼한 여성은 남편과의 접촉을

꺼리게 되고 결국 가족 전체분위기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경우도 있다.

다행히 최근 유방성형수술 기법이 발달해 잘라낸 유방을 수술 전 모습과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복원할 수 있다. 한쪽 유방을 이렇게 성형하는데 드는 비용은 800~1000만원이다.

성형유방은 유방암 환자의 신체적, 정신적인 공허함을 상당부분 채워줄 수 있지만

여러 가지 부작용의 위험도 안고 있다.

성형유방은 출혈, 감염, 유두의 감각저하 등이 있을 수 있으며 피가 고이는 혈종,

맑은 액체가 고이는 혈청종, 젖분비증, 유방처짐, 통증 등 그 부작용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어 큰 수술비용을 들이고도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 있다.

또 수술 후 양쪽 유방 모양이 달라 여러 차례 재수술을 하는 사례도 있다.

고려대 의대 구로병원 유방암클리닉 구범환 교수는 “성형유방이 촉감이나 체온,

외관상 모습이 실제 유방과 비슷해 보여도 내 유방만큼 편안하고 좋을 순 없다”며

“순간의 선택으로 유방을 절제하면 되돌리고 싶어도 소용이 없다. 내 소중한 유방을

지키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했다.

◆ 유전자 검사 필요

한쪽 유방에 암이 생긴 환자들이 다른 쪽 유방에도 암이 발생할 것을 염려해 마저

잘라달라고 요구하고 또 의사들은 환자의 요구에 못 이겨 잘라주는 사례를 줄이려면

환자 개개인에게 정확한 증상과 치료방법을 설명하는 진료시스템이 필요하다.

분당서울대병원 외과 김성원 교수(한국유방암학회 유전성유방암 담당)는 한국유방암학회가

지난해 11월 3일 가진 ‘한국인 유전성 유방암 연구’ 워크숍에서 “국내 유전성

유방암 환자들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고 유방암을 치료하는 진료체계 역시 미흡하다”며

“앞으로 10년 동안 유전성 유방암 환자들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 효율적인 유방암

진료체계를 구축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대전대 간호학과 전명희 교수는 워크숍에서 “서양에서는 유방암 유전상담전문가가

환자를 한 사람씩 맡아서 충분한 상담을 통해 환자의 불안심리를 덜어주기 때문에

유전자 검사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며 “우리나라 진료 시스템은 환자 개개인에게

충분한 상담을 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안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예방적으로 건강한 유방을 잘라내는 것이 바람직할 수도 있는 경우는 유전성 유방암일

때인데 △가족 중에 유방암 환자가 있다 △35세 미만의 유방암 환자 △양쪽 유방에

모두 암이 있다 △남자 유방암 환자 △다른 암과 함께 유방암 발병 등 기준에 포함되면

유전자 검사를 받아야 한다.

노동영 교수는 “한국 정서상 유전적으로 암 돌연변이가 있는 집안이라고 알려지는

것이 겁이나 유전자 검사를 꺼리는 환자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정확한 치료를 위해서

의사는 유전자 검사를 권하고 환자도 인식 전환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학병원에서 유방암 수술을 하는 외과 전문의들에 따르면 국내 종합병원에 등록된

유방암 환자들 중 유전자 검사에 응하는 환자는 전체의 15%도 채 되지 않는 것으로

추산된다.

불안심리가 지나쳐 건강한 유방을 잘라달라고 부탁하는 환자는 정신과 치료를

병행하면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는데 도움이 된다.

성균관대 의대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유범희 교수는 “암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유방을 잘라 달라는 환자의 심리는 건강염려증으로 볼 수 있다”며 “불안심리가

나타나면 전문가의 상담을 받고 심할 경우 우울증 약을 복용하면 치료효과를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조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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