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에서 선진화란 무엇일까

의료시스템 정상화, 의료산업 기초 확립부터

의료에서 선진화란 무엇일까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화두는 ‘의료산업선진화론’이다. 의사도, 치과의사도,

제약회사 관계자도 “새 대통령이 우리 의료산업을 어떻게 선진화할까요?”라고 묻는다.

의사 A씨는 “정부가 의료에 투자를 하면 막대한 외화를 거둬들일 자신이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러나 개념부터가 잘못됐다. 도대체 의료에서 선진화가 무엇일까?

다른 분야와 달리 의료 분야에서는 ‘선진 모델’이 없는데…. 의료인들이 말하는

의료산업선진화란 미국이 모델인 듯하다. 미국은 의료시스템에서 자본주의적 요소를

강화해서 비록 일부가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불평등이 있지만 돈만 있으면 최선의

진료를 받을 수 있고, 또 막대한 외화를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의료인뿐이 아니다. 필자가 만난,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측근 상당수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얘기를 들은 미국의 한 의료사회학자는 경악을 했다.

한 마디로 범주오류이고, 아전인수식 해석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의학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발전한 것은 의료시스템에 자본주의

요소를 도입해서가 아니다. 예를 들어 미국 존스홉킨스대의 뇌신경과의 한 교수는

“연봉이 10만 달러가 조금 넘는데, 개원가에서 3배 넘는 돈을 준다고 해도 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곳에서 다른 의학자와 연구하는 것이 재미있고 보람차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미국 의학이 발전한 것은 기초 의학에 엄청난 투자를 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국립보건원(NIH)의 예산만 30조가 넘는다. 보건복지부 예산의 3배다.

거기에다 화이자를 비롯한 거대 제약회사가 수익의 60~80%를 R&D에 재투자하니,

의학자들이 일에 재미를 느끼고 연구에 매달린다. 열매가 주렁주렁 달릴 수밖에 없다.

  미국의 대형병원은 수익의 3분의1만 벌고, 나머지는 정부와 기부자들이

대준다. 당연히 어떻게 돈을 벌어야할까보다 어떻게 환자에게 최선의 진료를 할까,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다. 기초가 튼튼하니, 여기에서부터 온갖 과실이

맺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최선의 진료보다는 최고의 수익이 강조되는

환경을 누가 부정하겠는가? 공무원 사이에서는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 10~30년을

바라보는 투자는 낭비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있지 않은가? 그러면서도 당장

눈앞의 결실만 보려니, 황우석 사기극 같은 사건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무엇보다 의료시스템은 그 나라의 경제를 받쳐주는 사회간접자본이다.

미국의 포드나 GM의 자동차가 도요타, 혼다의 같은 급 승용차보다 200만 원 이상

비싼 것은 정확히 의료비 차이 때문이라는 것은 미국 사회에서는 누구나 다 안다.

그래서 미국의 자동차 회사들은 부시 정부에 의료보험료 인하를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미국의 의료보험은 이른바 의료관리기구(HMO) 중심으로 보험회사와

의료공급자, 수요자가 엮어있는 ‘관리 의료 체제’다. 공화당 소속인 리처드 닉슨

대통령 때 보험회사의 건의를 받아들여 도입한 이 의료 시스템이 금융업의 발전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큰 틀에서 미국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이른바 의료산업선진화론이라는 것의 이론적 배경을

어디에서 제공하는지 톺아볼 필요가 있다. 보험회사의 수익은 높아지지만, 국민과

정부의 부담은 커질 가능성은 없는지 꼼꼼히 따져야 한다.

  새 정부에서 우리 보건의료 시스템의 건전성과 효율성을 냉철히 따지기를

바란다. 지금까지 참여정부에서 추진했던 의료산업선진화론은 우리 의료의 수준을

향상시키지도, 건전성을 확보하지도 못할 공산이 크다.

  현재 구상되고 있는 의료산업선진화론을 아주 단순화하면 진료를

수익행위로만 보는 일부 의사들이 국내에서 한계에 부딪히니까 외국 환자를 유치해서

돈을 벌겠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의료 수요자인 환자에 대한 사랑이 빠져 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의료시스템의 미비로 매일 중환자실과 응급실에서 죽고 있는

환자들, 의료가 상술로 바뀌면서 온갖 사기극이 만연하고 있는 상황, 건전한 의료인들이

이러한 현실 앞에서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는 실태를 방치하고 의료산업선진화론

운운하는 것은 한편의 슬픈 코미디일 따름이다. 새 정부는 의료산업선진화론에 앞서

의료시스템 정상화, 의료산업 기초 확립부터 신경 써야 할 것이다.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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