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가협상이 남긴 과제
유형별, 첫 해부터 삐걱…공급자-정부, 수가조정 방식 개선 공감
지난달 21일 의협과 병협의 수가가 건정심 표결처리로 결정됨으로써 내년 수가인상률
책정이 완료됐다. 이로써 주요 5개 의약단체의 내년 수가인상률은 의협 2.3%, 병협
1.5%, 약사회 1.7%, 치협 2.9%, 한의협 2.9%로 결정돼 두 달여간의 긴 여정이 막을
내렸다. 하지만 올해 처음으로 도입된 유형별 수가협상을 두고 의료계는 본래의 취지를
살리지 못했다는 판단이 지배적이다. 당초 정부는 유형별 수가협상의 도입 배경으로
각 단체별로 균형적인 진료보상을 해주기 위함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공급자와
공단의 본협상 과정에서도 드러났듯이 예년과 다름없이 수치 싸움으로 얼룩졌고,
오히려 각 단체간 상호 불신만 초래했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첫 단추부터 삐걱거리고
있는 유형별 수가협상 과연 무엇을 남겼는지 짚어본다.
공단-각 단체, 따로가는 연구용역 결과…입장차 조율 진통
지난 9월 28일 약사회를 시작으로 본격 논의된 유형별 수가협상은 기존과 달리
각계전투방식으로 진행됐으며 대표들은 회의 내용에 대해 철저하게 보안을 유지했다.
왜냐하면 특정 단체의 회의내용이 다른 단체에 알려지면 그만큼 특정단체가 불리해줄
수도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공급자단체의 한 관계자는 “정해진 파이 안에서 단체별로 협상력에 따라
나눠먹기 식이다”고 주장한 바 있다. 협상단계에서 드러난 유형별 수가협상의 문제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당초 기대했던 각 단체별 원가분석을 토대로 한 협상보다는 누가
먼저 유리한 조건에서 고지를 선점하느냐가 관건이었다.
본격적인 수가협상이 들어가기 전부터 공단을 비롯한 각 단체들은 나름의 연구용역을
바탕으로 협상준비에 만전을 기했고, 본협상에서 각자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한
수가인상률을 제시했다. 하지만 공단과 각 단체들의 상호 입장차는 매우 컸고, 이를
조율하는데도 상당한 진통을 겪었다. 공급자와 공단간의 입장차 괴리는 각자의 입장이
반영된 연구용역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공단 이평수 재무상임이사는 “보험자는 제도의 수지균형과 사회적
효율성을 공급자는 요양기관의 수지균형과 개별적 효율성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시각차가 생겼다”며 “양자간 추구하는 방향이 불일치하므로 상황에 대한 상호 이해와
협조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공급자 입장에서는 공단이 제시한 수가인상률이 의료계의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의협 전철수 부회장은 “유형별 수가협상을 계기로 의원급
현실이 고려된 형평성 있는 수가조정이 되기를 기대했지만 공단과의 입장조율이 쉽지
않았다”고 밝혔다.
의협의 경우 유형별 수가협상제도에 대해 가장 환영하는 입장을 취한바 있다.
그동안 단일계약제도 하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했다고 판단했기 때문. 이에 원가보전에
입각한 의협의 현실이 반영된 적정수가를 올해 협상에서 이끌어내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하지만 공단이 제시한 연구용역결과와 상당한 차이를 보여 협상 진행이 답보상태를
거듭했다.
의협의 원가보전 요구에 공단 김경삼 실장은 “의협에서 원가보전을 보장하라고
주장하지만 공단 입장에서는 의협이 내민 자료가 신빈성이 부족하다고 판단 했다”며
“공단이 의원의 비효율적인 행위까지 보장해 줄 수는 없다”고 말했다.
공급자 "비민주적인 현 제도하에서 협상은 부당"
이번 협상과정에서 공급자측에서 가장 많은 불만을 토로한 내용은 현 수가협상
제도가 불공정하다는 것이다. 올해 처음으로 유형별 수가협상이 도입되긴 했지만
예전과 비교했을 때 정부의 일방적인 태도는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게 공급자
대표들의 일관된 주장이었다.
의협 전철수 부회장은 “현행 공단 수가고시제 하에서는 협상 자체가 의미없는
것이며 이 제도 안에서는 공급자가 반 강제적으로 협상에 임해야 하고 정부 통제의
희생양이 될 수 밖에 없다”며 “유형별 수가협상은 정부의 일방적인 협상이라는
점에서 달라진 게 없고 정부가 이 제도를 도입해 공급자간 불신과 경쟁을 조장했다”고
비판했다.
반면 공급자 대표의 일방적인 협상 지적에 대해 공단은 “일방 통보식이 아니라
공단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카드를 먼저 제시한 것이다”며 “공단 협상단은
재정운영위원회 회의결과를 토대로 협상에 임했다”고 반박했다.
이러한 공단의 대응에 의협 한 관계자는 “공단은 협상기간 동안 계속 물가인상률에도
못 미치는 재정운영위원회의 불합리한 수가인상률을 절대시 해 협상의 여지를 없앴다”며
“의원의 수가인상에 따른 타 유형의 수가인하와 이에 대한 반발을 무마하려는 정치적
태도로 일관했다”고 지적했다.
병협 역시 지난 10월 18일 열린 상임이사 및 전국시도병원장 합동회의에서 공단이
총급여비를 먼저 정하고 이를 단체별로 통보하는 현 수가협상 방식에 대한 문제점과
유형별 수가협상이 요양기관 간 불신을 초래했다고 비판한 바 있다.
당시 병협은 성명에서 “건보재정 적자와 재정지출의 모든 책임을 병원에 떠넘겨서는
안되고 병원의 생존을 위협하는 수가협상 방식에 분노한다”며 “보건의료종사자
평균 임금인상률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가인상률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커지는 불신 속 대안은?…4월수가제 등 근본적 제도개혁 필요
일단 공급자와 정부의 상호 다른 시각차를 제도적인 장치 마련을 통해 처음부터
조율할 필요가 있다. 공급자와 정부의 입장차는 앞서도 언급했듯이 각자가 맞추고
있는 초점이 다르다는데서 기인된다. 이러한 입장차를 해결하는 실마리로 현재 정부와
공급자가 공동으로 인정하는 기관 및 단체에서 연구용역을 담당하고 이를 상호 인정하는
시스템을 도입하자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유형별 수가협상의 취지를 잘 살리려면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협상장에서 신경전과 기싸움을 벌이기보다는 객관적인 자료의 분석을 토대로
한 협상이 필요하다”며 “이를 현실화 시키기 위해서는 공급자와 정부가 서로 인정,
지정한 곳에 연구용역을 맡겨야 하고 이 결과를 전제로 협상에 들어가야 상호 입장차를
조율하는데 더욱 용이할 것이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협상과정에서 공단과 공급자측은 상호 조사된 연구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고
수차례 문제제기를 한 적 있다. 서로가 인정하는 곳에서 조사가 실시된다면 적어도
연구용역 결과에 대한 부당함은 토로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연구용역을 담당할 곳이 공급자와 정부가 신뢰할 수 있는 곳이라 하더라도 무엇을
기준으로 연구를 해야 하는지도 중요하다. 심평원 이용재 책임연구원은 유형별 수가계약이
제대로 정착되려면 요양기관의 경영수지를 기준으로 한 환산지수를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한다.
경영수지 분석이란 요양기관이 발생시킨 비용과 수익을 일치시켜 손익분기점에
도달할 수 있도록 환산지수를 산출하는 방식을 의미 한다. 기존에는 원가분석을 토대로
환산지수를 산출했는데 이는 해당기관에 따라 편차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경영수지 분석을 통해서 환산지수를 산출하더라도 자료에 대한 신뢰성 역시 문제점으로
남아있다. 즉, 해당 데이터의 신빙성 문제는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다.
협상과정 동안 의협은 끊임없이 현 수가협상의 폐단을 막기 위해 근본적인 제도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해 왔는데 핵심은 4월 수가계약제와 국고지원 확대다. 4월 수가계약제의
경우 정부 예산 반영 시기를 고려해 조기조정 한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이는 지난 10월 23일 1차 건정심에서 의협 좌훈정 이사는 "복지부가 4월
수가제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복지부 '제도개선소위원회
회의결과 보고'에서도 공익측이 수가 및 보험료 인상시기를 조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또한 공익측은 지난 제도개선소위에서 수가 조정방식 개선방법과 관련해 물가,
소득상승률 등에 연동한 환산지수자동조정방안을 개발하자는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공급자측은 공단에서 제시한 총액 2%의 근거가 부족해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물가 및 임금상승률을 고려한 인상이 필요하다는 문제제기를 한 바 있다.
수가 조정방식 개선은 공급자측에서 지난 제도개선소위에서 계속 주장하고 있는 사항인데
공익측이 이에 대해 공감을 했다는 점에서 개선의 가능성이 보인다.
국고지원 확대의 경우 지출합리화 방안이 선행돼야 한다. 의협이 제도개선소위에서
제기한 지출합리화를 위한 수입확보 방안으로는 ▲피부양자 인정기준 강화 ▲국고지원
정산제도 신설 ▲담배 부담금 인상 등이다. 특히 이중 피부양자 인정기준 강화는
복지부와 의협이 의견을 함께 했으며 현실화 되면 890억 원의 수입이 확보될 것으로
복지부는 분석했다.
김영남기자 (maha@dailymedi.com)
기사등록 : 2007-12-31 11:35
출처: 데일리메디( www.dailymedi.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