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침반 다른 의협-병협
의료법·유형별 수가계약 등 입장차 확연…봉합에 시간 걸릴듯
의료계의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는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 사이에 갈등의
골이 깊어만 가고 있다. 의료법과 유형별 수가 분류안 등 굵직한 현안에 대해 서로
다른 나침반을 내세우며 마찰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 이익단체인 만큼 각자의 손익계산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당연지사겠지만 단합이 아닌 분열의 이미지는 대 정부 투쟁 등에서
득보다 실이 많다는 판단이 적지 않다. 급기야 의료계 종주단체를 표명하는 의협은
병원계와의 봉합을 위해 병협을 버리고 교수협을 끌어안겠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의협과 병협, 과연 되돌릴 수 없는 길을 가고 있는 것인가, 향후 방향을 짚어본다.[편집자주]
적도 동지도 아니다? 각 단체 이익이 항해 좌표
“적도 아니고 동지도 아니다. 이익에 부합되면 협력하지만 상충되면 바로 등을
돌려 버린다” 각자의 이익만을 따를뿐 양보란 없다고 의료계 인사가 던진 이 말
한마디는 최근 의협과 병협의 관계를 단적으로 표현해 준다.
국회서 의료계와 관련된 커다란 두 가지 법안이 논의 중에 있다. 하나는 의료법이고
나머지는 의료사고법이다. 두가지 법안에 대한 대응을 보면 양측의 좌표는 더욱 명확해
진다.
‘의료법’에 있어 양측은 정면충돌 직전이다. 의협은 사회적 합의가 부족하다며
전면 재검토를 주장하고 있는 반변 병협은 현 정부안대로면 잃는 것보다는 얻는 것이
많다고 판단, 강행을 지지하고 있다.
하지만 의료사고에 대한 입증 책임을 의사에게 전가토록 하고 있는 ‘의료사고법’에
대해서는 완전 동지이자, 협력자다. 지난 10월 이 법안이 법안심사를 통과해 복지위
전체회의에 상정되자 둘은 힘을 모아 재심의를 이끌었다. 결과에 대해서도 ‘합심’이라는
표현을 쓰며 상대방을 인정해 주고 있다.
유형별 수가 분류안도 같은 맥락이다. 의협은 의원과 병원을 묶어 의료계는 하나로
가야한다고 어필해 왔지만 병협은 끝내 반대했다. 양쪽 다 나름의 이유야 있겠지만
당시 커다란 판단 기준이 ‘소속 회원들의 이익’이었던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의-병협 분열, 밥그릇 단체 이미지 우려
이 같은 행보에 대해 “이익 단체인 만큼 회원들의 이익이 최우선 과제이자 목표”라는
두 협회의 명분은 그럴듯 하지만 과연 그 명분이 효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대정부
투쟁에서 분열과 함께 여론에 있어서는 자기 밥그릇만 취하는 단체로 비춰질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모 대학 사회학과 교수는 “싸움에 있어 전술과 전략 못지않게 단합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적이 분열돼 있다고 판단되면 요리하기 쉬운 것은 자명한 일”이라고 했다.
특히 의협과 병협이 나눠져 분열하는 모습은 의료계 전체가 집단 이기주의에 빠져
있다는 이미지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도 많다.
한 일간방송 기자는 “국민건강이라는 큰 틀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만을
쫒다보니 직역 간 싸움이 벌어지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강하다”고 전했다. 그는
또 “이런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하면 정부로서는 자신들의 입맛에 맡는 정책을 펴기
더욱 쉬워진다”며 “일방통행은 위험하다. 민주사회에서 견제와 조언은 반드시 필요하다.
의료계는 이런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전문가 집단다운 행동을 보여줘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병협 “사안 따른 행동이 당연”
이 같은 지적들이 있지만 의협과 병협이 하나로 뭉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병협이 사안별로 입장을 정해 행보를 정하겠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것.
병협 김철수 회장은 “의료라는 큰 틀에서야 협력자가 되겠지만 세부사안으로
나눠지면 회원들의 권익에 따라 상호 시각이 달라지는 만큼 그에 부합된 행동을 보이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냐”고 했다.
더욱이 김 회장은 의협의 구조가 병협을 아우를 수 있는 성격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집행부나 대의원 구성 자체가 개원의 중심으로 이뤄졌다는 것.
김 회장은 “개원의들로 집행부를 꾸리고 개원의를 위한 정책을 펴면서 병원들에게
따르라고 한다면 이는 어불성설”이라면서 “만약 의협이 병원까지 대변하려면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의협과 병협이 걸어가는 길은 협회 성격상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 일선
병원들의 반응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모 중소병원 관계자는 “의료법을 예로 들면 확실하다. 우리(병원계)는 정부안에
거부할 수 없을 만큼 매력을 느끼고 있는데 이를 전면 거부하는 의협을 어찌 지지할
수 있겠냐”고 강조했다.
또 다른 병원 관계자도 “사실 의협이 평소에는 병원 이익에 관심도 없다가 자신들이
아쉬워지면 교수들을 찾는 것 아니냐”면서 “병협이 의협을 외면한다고 하는데 의협도
병협을 동반자가 지원병 정도로 생각하는 것처럼 비춰진다”고 역설했다.
의협 "병원 함께 가야 한다" 교수협에 러브콜
통합의 길이 요원해지자 급기야 의협은 병협 대신 교수협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교수들을 의협 권역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정관 단체 인정과 대의원회 지분 할당’이라는
당근책을 제시하고 나선 것. 현재 의대 교수는 의학회 자격으로 50명이 의협 대의원에
배정돼 있을뿐 교수협 타이틀로의 참여는 전무한 실정이다.
의협 주수호 회장은 “교수협을 정식 정관 단체로 인정하고 대의원 지분도 배분할
수 있도록 전체 대의원수를 현재 242석에서 10%(25석) 정도 증원토록 정관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피력했다.
여기에 주 회장은 병원에 있는 젊은 의사들도 적극 공략하고 있다. 지난 달에는
대한전공의협의회와 면담을 갖고 회비 일괄 납부 문제와 처우 개선 등 그들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겠다고 약속도 했다.
교수와 젊은 의사를 동시에 포용하는 전술인 셈. 의협은 이같은 정책이 현실화되면
병협이 아니더라도 병원계를 의협의 동지로 만들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을 내비치고
잇다.
주수호 회장은 “의약분업 당시 의료계 파업에 병원들이 참여한 것도 병협이 아니라
병원에 있는 교수와 전공의 등 병원 의사들이 움직였기 때문”이라며 “결국 의사들이
나서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에 대한 의협 회원들의 반응 또한 긍정적이다. 한 의료계 인사는 “병협은 병원
경영자들의 모임이라는 성격이 강하다. 결코 병원 의사들을 대표하지 않는다”며
“의료 사안에 대해 국민건강보다는 병원 이익만을 생각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개원의도 “의료계가 더 이상 분열의 길을 가는 것은 의사들이나 국민들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며 “병협과 함께 가는 것은 이상적이지만 그게 안 되는 구조라면
병원 안에 있는 의사들과 의협이 파트너십을 구성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진광길기자 (kk@dailymedi.com)
기사등록 : 2007-12-26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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