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 아니 "우리 할머니"

외가 위상 높아지며 양가 '갈등'

외할머니? 아니 얼마 전 이기순 씨(30·경기도 용인시)는 시집에 가서 난처한 일을 겪었다.

유치원에 들어간 딸이 글씨 연습을 하다가 아빠 성이 아닌 엄마 성으로 이름을 쓴

것. “잠깐 깜빡했어”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아이를 보니 할 말이 없었지만 당황한

시부모님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정 모 씨(36)도 아이를 시집에 데려가기가 껄끄럽다. 직장 때문에 친정 엄마에게

아이를 맡겼더니 아이가 외할머니와 과도하게 친한 것을 시어머니가 섭섭해 하는

것이 문제. 아이는 친할머니한테는 그냥 할머니, 외할머니한테는 ‘우리 할머니’라고

부른다. “할머니, 우리 할머니는 간식도 잘 만들어요”라고 말하는 걸 들으면 가시방석에

앉은 느낌이다.

■외할머니? 그냥 ‘할머니’

과거에는 친할머니는 ‘할머니’로, 외할머니는 ‘외할머니’로 불렀다. 그러나

요즘 대부분의 아이는 친할머니를 ‘친할머니’로, 외할머니는 그냥 ‘할머니’로

부른다. 1년에 한두 번 얼굴 보기 힘들던 외가의 위상이 하루아침에 격상된 것.

이기순 씨는 “친구네 가족을 봐도 대부분 외가와 친하다. 친가와는 명절 때만

만나는 가족도 있다”며 “양육을 대부분 친정 엄마가 도와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여성의 사회 진출과 함께 권익이 신장하고, 양육 문제로 친정에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생긴 현상이라고 진단한다.

동시에 친가와 외가 사이 갈등도 늘었다. 신 고부갈등이라 불리는 ‘친정엄마-사위

갈등’이 늘어난 것도 같은 현상이다.

■벨기에 연구팀, “친가보다 외가 친해”

최근 벨기에 뉴캐슬대와 앤트워프대 공동 연구팀이 《진화심리학지(the journal

Evolutionary Psychology)》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친가보다 외가와의 왕래가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네덜란드 800명의 조부모를 조사했는데 외가는 25% 이상이 일주일에

서너 번 손자와 만나는 반면, 친가는 15%였다.

또 30km 이내의 가까운 거리에 사는 조부모 중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30%가량이

매일 혹은 일주일에 몇 차례 손자손녀를 만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비해 친할아버지나

친할머니는 단 15%만이 아이들을 자주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친가-외가 갈등, 2세대 역할 중요

친가와 외가가 손자 문제로 갈등 중이라면 무엇보다 자녀(사위, 며느리)가 중재자로서

역할을 수행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양가에 고루 잘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힘이 든다면 외가에서

자라는 손자를 친가에도 자주 가게 한다. ‘손자를 뺏겼다’고 생각하는 친조부모가

상대적 박탈감을 덜 느낄 수 있다.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권준수 교수는 "가족 갈등을 풀기 위해선 서로를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며 "문제가 있다면 허심탄회하게 얘기하고

해결하려는 의지를 가지면 쉽게 풀릴 수 있다"고 충고했다.

또한 친조부모와 외조부모는 자식을 ‘내 소유’라고 생각하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 친가와 외가의 영역 다툼에서 죽어나는 것은 자식들뿐이라는 걸 명심하자.

 

    이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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