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보다 생명이 먼저 아닌가”
영등포구, 공원 만들려 헌혈의 집 철거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신길 7동 공원에 있는 대방역 헌혈의 집이 철거될 위기에
처했다. 영등포구청은 지난달 26일 매년 갱신하던 부지사용계약을 연장할 수 없다고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에 통보했다. 혈액관리본부는 재고를 요청했지만 영등포구청은
철골 임시건물로 지어진 헌혈의 집을 철거하고 녹지대를 조성하겠다는 입장이다.
■“새로 둥지 틀 곳 없어”
헌혈의 집은 혈액관리법에 의거 △건물 임대 △헌혈의 집 용도로 건물 신축 △국가
및 시에서 부지 무상 제공 등 3가지 유형으로 운영된다. 대방역 헌혈의 집은 1997년부터
영등포구청이 신길7동 공원 내 부지를 무상으로 임대해줘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영등포구청의 계약 해지로 이번 달 말일 운영이 종료될 예정이다.
영등포구청은 처음 계약서에 명시된 내용이니 문제될 것 없다는 입장이다.
영등포구청 감사담당관실 고병하 팀장은 “97년 계약 당시 조건은 구에서 부지를
필요로 하면 언제든지 철거하겠다는 것이었다”며 “헌혈의 집이 나가면 시민을 위한
공원으로 조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구청은 공원 조성을 위해 지난달 공원 내 화장실을 신축했으며 앞으로 신길동
전역 미화에도 신경 쓸 예정이다.
그러나 대방역 헌혈의 집을 담당하고 있는 대한적십자사 서부혈액원은 대방역
헌혈의 집을 옮길 마땅한 장소를 아직 찾지 못했다.
서부혈액원 성낙준 대리는 “헌혈의 집 건물이 미관상 좋지 않다고 해서 올해
외관도 주변 환경에 맞게 꾸며놨는데 나가라니 당혹스럽다”며 “계약 조건이 있으니
나가라면 나가야지 별수 없다”고 말했다.
성 대리는 이어 “영등포구청에 헌혈차가 있긴 하지만 성분헌혈은 하지 못하는
등 제약이 많다”며“영등포구 내에 헌혈의 집을 새로 설립할 마땅한 곳도 없다”고
덧붙였다.
■백혈병 환자 혈소판 수혈 차질
현재 대방역 헌혈의 집 일일 평균 헌혈자수는 30여 명으로 연간 만 명 정도다.
적십자사에서는 헌혈의 집 하루 헌혈자수가 20명이 넘으면 많은 것으로 본다. 무엇보다
대방역 헌혈의 집은 ‘혈소판’ 헌혈의 ‘창고’다.
인근 여의도 성모병원에서 국내 백혈병 환자 대다수가 진료를 받다 보니 이들을
위한 혈소판이 많이 필요한데 대방역 헌혈의 집에서 성모병원 사용량의 50% 정도를
충당한다.
대방역 헌혈의 집 혈소판 헌혈자수는 전체 헌혈자의 20%로, 연간 2000명 정도다.
다른 헌혈의 집 혈소판 헌혈자 5%보다 4배나 많다.
한국백혈병환우회 안기종 사무국장은 “공원을 조성해 시민들의 휴식 공간을 만드는
것도 좋겠지만, 당장 백혈병 환자들에겐 목숨이 달린 일”이라며 “환경보다는 생명이
먼저 아니냐”고 주장했다.
■가뜩이나 피 부족한데
2004년 보건복지부는 혈액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9년까지 헌혈의 집을
150개로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현재 전국 헌혈의 집 수는 120개(혈액원 내 헌혈의
집 포함)다. 기한이 2년 남은데 비해 채워야 할 헌혈의 집은 30개나 되는 셈이다.
2007년 12월 13일 현재 혈액 재고량은 6572유닛으로 적정재고량 3만2914유닛의
20%도 못 미친다. 이는 혈액 경보 ‘경계’수준에 해당한다. O형과 A형은 각각 690유닛,
967유닛으로 적정량인 9198유닛, 1만1340유닛의 10%도 되지 않는다.
지난 국감에서 적십자사가 노웅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07년 9월까지 적혈구 재고량은 2006년 월평균 1만7430유닛으로 적정재고량의 53%,
2007년 2만3063유닛으로 70% 수준이다.
또한 2006년 이후 지난 9월까지 총 21개월 동안 단 두 달만 적정재고량을 유지했고
14개월은 관심, 주의, 혹은 경계의 위기관리 상황이었다. 나머지 5개월도 적정보유량을
달성하지 못했다.
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홍보팀 주희조 씨는 “가뜩이나 혈액이 부족한
상황에서 헌혈량이 많은 헌혈의 집을 폐쇄한다니 안타깝다”며 “헌혈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