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산소의 몰락

의사의 일은 보람이 없으면 못하는 일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2008년도 전공의 마감 모집 결과, 대부분의

병원에서 외과, 흉부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의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는 소식이다.

반면 성형외과, 피부과, 영상의학과 등은 경쟁이 치열했다고 한다. 전통적 명문 전공인

《내외산소》 중 내과가 겨우 불안한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따름이다.

이 때문에 한 언론사의 온라인 사이트에는 《의대생 여러분, 쌍꺼풀 수술이 생명보다

중요합니까?》라는 제목의 동영상 칼럼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공의 문제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언론에서 다른 모든 분야는 시장논리를

절대시하면서 유독 의사에게만 사회적 가치만을 강요하면 설득력이 약하다.

이런 문제는 사실을 여실(如實)히-불교 용어 그대로-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사실에 대한 솔직한 이해 없이 당위성만 강조하면 공허한 메아리가 될 따름이다.

우선, 사람에서 시작하자.

유교사회 교육의 첫째 목표는 입신양명이었다. 초등학교부터 고교까지 도덕, 윤리

교과서에서도 입신양명이야말로 효(孝)의 끝이라고 가르쳤다. 1960년대 이후 자본주의가

급속히 발전하면서 부가 사회적 출세의 척도가 됐고, 지금의 의사들 역시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초중고교 때부터 교사와 부모에게 입신양명을 통해 부를 축적하라고 담금질

된 사람들이다. 이건 엄연한 사실 아닌가.

더구나 1974년 박정희 정권은 저수가 체제 의료보험을 실시하며, 의사의 '비제도권적

수입'을 용인하는 저수가 의료 시스템을 근간으로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이 과정에서

의사의 직업 소명감은 서서히 자본의 논리에 밀려나갔으며, 2001년 김대중 정부는

의약분업 실시 전 이런 역사를 도외시한 채 의사 사회 전체를 비리집단으로 매도했다.

사회에서 특정집단의 자존심을 바닥까지 내팽개쳐놓고, 사회적 책임만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현재 의사나 예비 의사에게 아무런 배려도 없이 자본을 통한 입신양명을

포기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개인 자유의 침해라고 본다.

그렇다고, 의사가 이렇게 마냥 살아야 한다는 것은 아닐 게다. 필자는 의사는

언론인, 공무원, 교육자와 마찬가지로 돈 보다는 보람에 살아야 할 직종이라고 믿는다.

어떻게 하면 그것이 가능할까?

우선, 사회 전체에 부를 통한 입신양명과 존립하는 또 다른 가치가 대접받을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야 한다. 이 부분은 교육, 언론 등에서 중추적으로 담당해야겠지만,

국민소득의 증가에 따라 자동 성취되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시민사회에서 앞서 언급한 의사, 교육자, 언론인 등의 직종이 '사회간접자본'적

성격이 강하다는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 언론, 교육, 의료는 직접 부를 창출하기

보다는 부를 창출하는 바탕이다. 따라서 이 직종의 종사자가 직접 돈을 번다고 나서지

않게끔 도와주고, 이를 벌충하는 우대와 혜택을 주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산업선진화론》은 산업간접자본에 직접 돈을

벌라고 부채질하는 아이러니가 아닐까.

사회적 분위기의 반전과 아울러 의대 교육 시스템을 바꿔야 할 것이다. 필자가

미국 존스홉킨스대에서 연수하며 놀란 것은 강의 제목부터가 <의사가 교사의 5배

이상 돈을 받는 것이 정당한가><의사의 고수익이 의사의 행복에 도움이 되나>

등 우리 사회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것이었다. 의사가 사람 세상의 중심에서 <문사철의

소양>을 갖춘 리더가 되게끔 이끌어줘야 한다. 의대 교육이 의사가 기능인 이상의

아티스트가 되도록 도와주야 하는 것이다.

의사가 돈에 매달리기 시작하면 너무나 괴로운 직업이 된다. 필자는 최근 사업을

하면서 의사 일이 넌더리가 난다며 사업거리를 찾는 사람을 너무나 많이 봤다. 지금은

종잣돈이라도 있지만 미래의 의사가 일에 진절머리가 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의사의 일은 보람이 없으면 못하는 일이다. 늘 피를 봐야 하고, 매일 죽어가는

사람을 봐야 하는, 잘하면 본전이고 조금이라도 오류가 있으면 멱살을 잡히기 일쑤인

일, 소명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하루하루 사람을 살리고 환자로부터

존경 받는 보람에 살기에는 이 땅의 토양이 너무나 척박한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최근 서점가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미국 하버드대 의대 제롬 그루프먼 교수의

《닥터스 싱킹》에 따르면 의사의 진료란 지나가는 기차의 차창에서 누군가의 얼굴을

찾는 것과 비슷하다. 미국에서는 평균 15분에 한 명을 봐야 하는 진료현실이 오진을

양산하고 있다고 따끔하게 지적하는데, 우리나라에선 1분24초에 한 명을 봐야하니,

환자와의 인간적인 유대감을 기대하기 힘들고, 이 때문에 보람을 느끼는 일이 더

지난할지 모르겠다.

필자는 최근에 작은 사업을 벌이면서 ‘중원의 사부님’들을 찾아다니고 있는데,

이른바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은 자신의 일에 재미를 붙여 보람을 찾아

일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의사들도 비록 힘든 일이지만 보람과 즐겁게 일해야 그

분야에서 대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지금 전공의들이 좇는 인기 과는 미래에도

그 인기를 유지한다는 보장이 없어 쏠림 자체가 비합리적이다.

보람과, 재미, 가치의 직업이 되는 것은 하루 이틀 사이에 이룰 수 없다. 따라서

불행하게도 필자가 아무리 떠들어도, 보건복지부가 아무리 대책을 내놓아도 전공의

쏠림 현상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쏠림의 과가 약간 바뀌는데 그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다각도로 성숙해서 시민들이 가치의 영역에 눈이 뜨고, 거기에

따라 의사들도 자신의 소명에 대해 새로운 혜안을 갖게 된다면 어쩌면 전공의 쏠림현상이

부질없는 논의가 될지도 모른다. 적어도 의사 사회에서 전공의 논의를 해결할 종착점을

명확히 안다면 그 시기를 앞당길 수는 있을 것이다.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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