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병원,악순환의 고리
내년 전공의 지원 1명도 없는 과 특히 많아…"선배없는데 후배 오겠냐"
‘이미 예견했던 일’이라고 하지만, 외과와 흉부외과, 산부인과 등 ‘비인기과’의
지원율은 올해에도 밑바닥이었다. 지난해보다 과별 양극화가 더욱 심화됐다. ‘공식’처럼
돼버린 외과와 흉부외과 등의 미달 사태. 반면 ‘뜨는 과’도 확실해졌다. 뿐만 아니라
서울·수도권과 지방에 위치한 병원들의 명암도 분명하게 갈렸다. 그러나 이들의
목소리는 하나로 모아진다. “더 이상 이대로는 안된다”는 요구다.[편집자주]
“물론 이 상태로도 갈 수는 있다. 별로 문제되지 않아서가 아니다. 문제를 안고
근근이 꾸려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과가 돌아가느냐 멈추느냐의 차원을
넘어 ‘어떻게 해야 제대로 갈 수 있느냐’란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이번 2008년 레지던트 모집을 지켜본 한 지방대 병원의 ‘비인기과’ 교수의 말이다.
상위권 학생 가운데 절반 정도를 서울로 보냈다. 올해 배정된 정원은 3명인데, 단
한 명의 전공의도 지원하지 않았다. 비인기과는 ‘미달 속출’이라고 하니, 다른
병원 사정도 매한가지겠지만 ‘지방병원’이라서 어려움이 곱절로 늘어나는 것은
사실이다.
올해 외과, 흉부외과, 산부인과 등의 미달 여파는 지방병원에게 더욱 가혹했다.
방사선종양학과, 병리과, 진단검사의학과, 응급의학과 미달과 함께 그 영향이 훨씬
크게 작용하고 있다.
지원자가 1~2명 모자라 정원을 채우지 못한 경우보다 아예 지원자가 1명도 없어
미달된 경우가 다수였다.
전북대병원은 산부인과, 방사선종양학과, 진단검사의학과에서 지원자가 1명도
없었다. 영남대병원은 외과 정원 6명 중 지원자는 0명이었으며 산부인과, 방사선종양학과도
마찬가지로 지원자가 없었다. 인제대부산백병원은 흉부외과, 방사선종양학과, 진단검사의학과,
응급의학과에서 지원자가 1명도 없었으며 건양대병원은 산부인과, 마취통증의학과,
병리과, 응급의학과, 경북대병원은 방사선종양학과, 진단검사의학과에서 지원자가
없었다.
지방의 A병원 교육수련부장은 “서울에 위치한 병원들에서도 미달이 많다고 하는데
지원자가 한 명도 오지 않은 진료과는 극히 일부 아니냐”며 “외과나 산부인과 등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특히 응급의학과나 병리과, 마취통증의학과 등의 진료과에서 지원자가
한 명도 없으니 더 답답한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미달이 되더라도 지원자가 1명도 없는 진료과가 올해처럼 많은 것은 처음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다른 문제는 제쳐두고라도 당장 마취통증의학과, 응급의학과 레지던트
1년차가 없는 것부터 걱정이라는 얘기다.
이처럼 해를 거듭할수록 사정이 나아지지 않지만 획기적인 지방병원 육성책은
요원하기만 하다. 한 국가의 의료체계가 ‘제대로 돌아가려면’ 수련보조수당과 같은
임시방편이 아닌, 지방병원을 위한 보다 실질적인 제도가 마련돼야 지금의 사태를
그나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만 되풀이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 질렸다는 듯 지방의 한 국립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는 “이제는
특별히 할 이야기가 없다”고 말을 아끼면서도 “악순환에 악순환이다. 선배가 없는데
어떤 후배가 들어오려고 하겠는가. (지금 상태라면 진료과든 병원이든 전공의가 몰리는
곳에만 계속 몰리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깊은 우려를 내비쳤다.
이와 관련, 대한전공의협의회 변형규 회장은 지방병원 전공의들이 겪고 있는 ‘이중고통’의
심각성을 지적하며 “수가체계를 바꿔 미래를 보장해주지 않으면 기피과, 지방병원
문제는 더 악화될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정부와 학회 등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전공의가 없으면 병원에서
전문의를 더 채용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며 “전문의가 없을 때 문제가 큰
것이지 전공의가 없는 것이 매우 심각한 일은 아니”라며 전공의 업무 범위에 대한
인식이나 수련 환경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근주기자 (gjlee@dailymedi.com)
기사등록 : 2007-12-07 07:05
출처: 데일리메디( www.dailymedi.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