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 세분화와 민주주의
의사가 세부전공에 몰입할 수 있는 시스템이 중요
가톨릭대 의대 혈액내과 김동욱 교수와 한양대 류마티스 병원 배상철 원장은 공통점이
많다. 무엇보다 진료실 뿐 아니라 밖에서도 환자와 끊임없이 소통한다는 것, 40대
중후반의 나이에 자신의 분야에서 ‘톱’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이 닮았다.
두 사람은 서로를 존경한다. 필자와 ‘삼각인연’도 있다. 필자는 비록 ‘미완’에
그쳤지만 한양대 배 원장의 중증 환자를 가톨릭대 김 교수에게 보내 골수이식으로
치료하고 배 교수가 다시 관리하는 것을 제안, 상당히 깊숙한 협조가 진행되기도
했다.
최근 1주일 사이 두 사람을 연거푸 만났다. 김 교수와는 그가 유럽 출장을 다녀오던
날 저녁에 만났다. 아마 국내에서 김 교수처럼 출장이 잦은 교수가 드물 것이다.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 분야에서는 아시아 대표선수이기 때문에 항암제와 관련한
온갖 학회와 회의, 강의가 줄을 잇기 때문이다.
김 교수와는 최근 항암치료의 경향에 대해 여러 얘기를 주고받았는데, 12월 미국
애틀랜타에서 열리는 미국암학회에서 글리벡을 중간에 몇 달 간 끊었다 다시 복용해도
된다는 의미 있는 논문을 포함해 7개의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로 예정돼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김 교수에게 환자를 위한 그의 연구 열정에 대해 감탄하는 말을 전했더니,
의외의 말이 나왔다.
“저야 서울대 의대 방영주, 허대석 교수 같은 분에 비하면 많이 떨어지죠. 다만
만성골수성백혈병이란 한 분야에 집중했기 때문에 세계에서 인정을 받을 따름입니다.”
방영주가 누구인가? 1999년 동아일보에서 21세기를 이끌 ‘프런티어’를 연재할
때 후배였던 이나연 기자를 보냈더니 이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서울대병원 박용현
원장, 박재갑 암연구소원장, 김노경 내과 주임교수에게 그 분에 대해 물으니 모두
첫 일성이 ‘그 친구 천재지’로 똑같았어요.”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한 인사도
“방 교수가 보직을 맡지 않고 한 연구에만 집중했으면 노벨상을 안겨줄 첫 인물이
될 수도 있는데…”하고 말한 그 인물이 아닌가.
허 교수는 또 누구인가. 확고한 통계에 근거한 연구는 정평이 나있고, 종양학
연구 뿐 아니라 호스피스의 정착을 위해 자신을 잊은 사람 아닌가.
김동욱 교수는 방, 허 교수가 한두 가지 분야의 연구에 전념했다면, 두 사람은
세계 항암제 연구의 선두주자였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은 혈액내과 분야를 세부로 쪼갠 스승 김춘추 교수 덕분에
다국적 제약회사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는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며칠 뒤 만난 배상철 원장의 입에서도 똑같은 얘기가 나왔다. 자신이 비록 하버드대
보건대학에서 ‘임상경제학’을 공부했지만, 루푸스라는 질환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기에
자신의 분야에서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는 설명이었다. 스승인 김성윤 박사가 이런
시스템의 얼개를 짜지 않았으면 ‘막강 한양대 류마티스병원’이 불가능했을 것이며,
자신도 스승의 뜻을 이어 병원 내 세부정착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 의료계 전반으로 본다면 세부전공에 대해 무심하다. 필자가 운영하는
회사에서는 온라인을 통해 환자에게 자신의 병에 가장 맞는 의사를 소개해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세부전공별로 소개해주려는 시도는 수포로 돌아갔다. 직원들은
“전공별로 모든 치료를 하고 세부전공이 뚜렷한 의사는 너무 드물다”며 혀를 내둘렀다.
대학에서 교수들이 세부전공 분야에 집중하면 당연히 연구의 깊이가 깊어진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모두가 자신의 세부전공에 천착하면 전체를 아우르는 눈이 부족해질
수 있을 것이다. 종양학에서는 혈액학보다 이런 점의 한계가 더 심할 것이다. 또
세부전공 시스템의 병원에서는 일정 시간만 되면 선배가 후배의 연구를 감독할 수
없다는 ‘문제’가 생긴다. ‘잘난 주니어’가 특정 주장을 펼치면 ‘보스’조차도
어떻게 할 수 없게 된다. 우리나라 의대 시스템에 맞지 않을 수 있다.
필자는 오히려 이런 의미에서 의사가 세부전공에 몰입할 수 있는 시스템이 중요하다고
본다. 과 전체가 세부전공 시스템으로 돌아가면 보스나 선배는 큰 테두리만 정하고
후배 교수의 말에 경청해야 한다. 권한은 수평적으로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변화는
의료분야 밖의 다른 분야에서 많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바로 시스템이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 옮아가는 과정이다.
필자는 2006년 ‘황우석의 나라’를 펴낼 때 한국 과학과 언론의 민주주의 시스템의
부재가 황우석 사기극을 낳는데 일조했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반증과
오류 정정 시스템’을 민주주의 시스템의 근간이라고 주장했는데 전문화와 의사결정의
변화는 이러한 시스템이 작동하는 바탕이 된다.
어떻게 보면 이미 전공의 세분화와 의사결정의 민주화는 전례를 갖고 있는지 모른다.
서울대 소아과 홍창의, 연세대 신경외과 이헌재 교수 등은 당대로서는 획기적인 세분화
시스템으로 우리 의학사에 획을 그었다. 연세대 신경외과의 막강한 파워도 이 때문에
정착됐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과거 외형적 전문화의 시기를 넘어 이제는 내실의 전문화가 이뤄져야 할
시점이 아닐까? 전공의 세분화를 통한 의사소통의 민주화는 의학 발전의 필수요소로
작용하고, 따라서 더 이상 미뤄선 안 될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