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분명처방, 게임의 법칙

문제 생기면 국민이 움직일 수 있도록 해야

‘또 속았다.’

  근육통으로 동네약국에 가면 늘 생각 없이 약사에게 ‘약효 센 근육이완

크림 하나’를 주문한다. 상표를 확인해야 하는데…. 집에서 바르고 나서야 ‘물

크림’임을 깨닫게 된다. 자연스럽게 5, 6년 전 기자시절에 일부 약사들이 “성분은

똑같아도 약효에 차이가 크다”고 일러준 사실이 떠오른다. 전문의약품에서 ‘상품명

처방’이 ‘성분명 처방’으로 바뀌면 이런 현상이 급격히 확산될 수도 있다.

  이 논리는 의사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의사도 많은 약들

중에 자신의 이익에 가장 부합하는 ‘밀가루 약’을 처방할 수도 있다. 그 약이 전문의약품이라면

약사는 더 좋은 약이 있어도 ‘밀가루 약’을 처방해야 한다.  ‘상품명 처방’이

‘성분명 처방’으로 바뀌면 거꾸로 의사가 ‘밀가루 약’을 처방했는데 약사가 좋은

약을 조제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가 9월부터 ‘성분명 처방 시범사업’을 벌이려고 하자 의사단체가

반발하는 형국이다. 필자는 의사들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본 사업’도

아니고 ‘시범사업’인데 ‘원내 약국’으로 맞불을 놓는다는 등의 주장은 과잉반발이

아닐까.

  첫째, 이는 민주주의의 기본원리에 반하는 것이다. 정부가 권위를

잃어 그렇지, 우리나라처럼 정부가 정책을 발표할 때마다 관련 단체에서 반발하는

민주주의 국가는 없다. 정부가 아마추어여서인 측면도 있지만 아직 우리 사회 전체가

민주주의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 아닐까.

  민주주의의 바탕에는 다수결의 원리가 있다. 미우나 좋으나 노 대통령은

다수의 선택을 받았다. 선택에 따른 정치권력이 결정하는 모든 것에 사사건건 반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방책은 현재의 다수를 설득하거나, 아니면 차기에 ‘새로운 다수’를

똑똑하게 만들어야 한다. 지역에 따라 무조건적으로 선택하거나, 아니면 선거일에

외유를 나가고 나서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는 우(愚)는 더 이상 없기를!

  둘째, 범인(凡人)은 ‘밀리면 진다’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약승강(弱勝强)이고 유승강(柔勝剛)이기 마련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이 탄핵당함으로써 총선에서 여당의 압승과

 지지기반의 결집을 이끌어냈다. 가치의 관계를 떠나 적어도 전략적으로는 제3자에게

합리적이지만 밀리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이 승리를 위해 현명한 방책이다. 특히

반복게임(Repeated Game)의 양상을 띠는 문제에 대해서는 힘으로 얻은 것이 결국은

추후 입상과정에서의 입지 상실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의사들은 ‘무조건적 성분명 처방’을 막기 위해서라도 1차원적

반대가 아니라 좀더 현실적인 방법을 채택했으면 한다.  필자가 의사단체의

핵심인물이라면 이 순간에 백기(白旗)를 들겠다. 그리고 적어도 시범사업에 적극

협조하겠다. ‘시범’이라는 명분을 앞세우며 콩팥, 쓸개 다 내놓겠다.

  이 과정에서 의료인의 협력을 받아 모든 우려상황을 현실에 대입해

보겠다. 그런데도 시범사업에서 실보다 득이 많다면 양보를 하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개연성은 아주 낮지 않은가.   

  시범사업에 협조를 하면 할수록 모순(矛盾)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한 사람이 생물학적동등성 시험에 몇 번씩 참가하는 나라,  GMP 공정이 미흡해

공개적으로 국제기준의 채택을 거부하는 나라, 약사들 스스로 “우리끼리는 약을

가려 먹지요”라고 말하는 나라에서 동일 성분 제제의 동가성(同價性)을 기대하기란

힘들지 않은가.

  의사단체는 가치와 논리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라도 △외형적

약제비 절감이 결국 어떻게 전체 약제비의 상승을 불러오는지 △생물학적 동등성시험과

GMP 과정이 얼마나 엉터리이며 그것을 감독하는 시스템은 얼마나 엉터리인지 △약효와

순도가 떨어지는 약의 성분명 처방이 일상화할 때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매일매일 자료를 내놓아야 한다. 그래서 국민들을 우군(友軍)으로 만들어야 한다.

  국민은 그렇게 어리석지 않다. 일반의약품 시장의 경험을 통해 약국에서

약사들은 이익을 따라 약을 선택한다는 것을 암묵지(暗?知)로 알고 있다. 상품명

처방을 무시한 대체조제를 전면 허용하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의사 편에 서려고 하지 않는다. 거꾸로

의사들도 자신의 이해에 따라 움직인다고 믿기 때문이다. 의사들이 늘 싸움에서 이겨온

‘강자’이고, 정부를 로비로 움직여온 집단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번만이라도 전략의 패러다임을 바꿨으면 한다. 제발 양보할 최소한의

것은 양보하기 바란다. 그리고 만약 문제가 생기면 국민들이 움직이도록 도와줘야

한다. 설령 의사가 일순간 진다고 해도 결국은 이기는 것이다. 의사는 환자를 위해

존재하는데다, 반복 게임에서는 신뢰를 꾸준히 확보하는 쪽이 최종적으로 이기기

마련이다.

이성주 기자 stein33@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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