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 산후조리법 불변의 진리?
출산후 3개월 폭식 평생비만 원인
수은주가 올라가면 산모(産母)는 괴롭다.
뼈가 뒤틀리고 살이 찢어지는 산고(産苦)를 치러 기력이 빠진 상태에서 고단한
산후 조리기간을 지내야 한다. 한국의 산모들은 온몸이 땀범벅인데도 씻지도 못하고
머리도 감지 못한다. 아무리 더워도 양말을 신어야 하고 찬물에 설거지도 못한다.
외출은커녕 며칠 동안 꼼짝 않고 누워 있어야 한다. 아직도 한여름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땀을 뻘뻘 흘리는 산모도 적지 않다. 요즘 산모들은 이 같은 산후 조리법에 대해
거부감을 갖기도 하지만 집안의 ‘어른’, 특히 ‘시어른들’이 용납하지 않아 ‘울며
겨자 먹기’로 따라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비합리적인 산후 조리문화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이 만만찮다. 양방은 물론 한방에서도 이런 주장이 나오고 있다.
▽전통적 설명=한방에서는 산후 조리를 잘못하면 나중에 온몸이 아프고 뼈가 시린
‘산후풍(産後風)’으로 고생한다고 설명한다.
많은 한의사들은 적어도 1주일, 가능하면 3주 동안 머리를 감거나 샤워하는 것을
금하고 외출도 삼가라고 권한다. 가급적 찬바람을 피하고 몸을 따뜻하게 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중년 이후의 동양 여성들은 양방에서는 병의 존재조차 알지 못하는 온갖 병에
시달리는데 이것의 원인이 잘못된 산후 조리에 있다는 것이다.
많은 양방 의사들은 이런 설명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다. 한방에서 말하는 산후풍도
사실 특별한 병이 아니라 심신의 스트레스로 인해 신체가 아픈 ‘신체화 장애’의
일종이며 한국 여성은 온갖 골칫거리가 많아 이 장애가 서양인에 비해 많이 나타날
따름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은미 내추럴미한의원장은 “산후풍은 분명히 존재하며 많은 여성이
전통적 산후조리를 따르지 않아 병을 얻고 있다”고 반박했다.
▽꼼짝 말고 있어야?=양방에서는 예전에 산모를 3주 정도 돌아다니지 않도록 한
것은 면역력이 약할 때에 돌아다니면 감염성 질환에 걸리기 쉽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가정의학과 전문의 박용우 박사(리셋클리닉 원장)는 “위생환경의 개선으로 감염의
위험이 줄었고 감염돼도 생명이 위태로운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오히려 무리하지
않으면서 몸을 움직이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이전에는 외과 수술을 받은 환자도 꼼짝 않고 누워 있도록 했지만 지금은 몸을
움직이도록 해야 빨리 회복한다는 것. 산후에 적절히 움직이는 것이 늘어난 자궁을
원상태로 돌리고 파열된 복근이 회복되는데 좋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한양대 의대 산부인과 박문일 교수는 “그렇다고 서양인처럼 출산 직후
돌아다니며 운동하는 것은 좋지 않다”면서 “서양인은 핏속에 혈전(血栓·피떡)이
잘 생기지만 한국 여성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산후 무리하게 운동 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특히 출산할 때 근골격계에 무리가 가기 때문에 움직여봐서 뼈마디에 부담이 느껴지거나
치골에 통증이 있다면 3주간 조리를 하는 ‘3·7 풍습’에 따르는 것이 좋다.
그러나 박문일 교수도 이외에는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범위에서 움직이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한편 산욕기(産褥期)인 출산 뒤 6주까지는 성생활은 피하고 항문을 조였다
푸는 ‘케글운동’ 정도는 꾸준히 하는 것이 좋다.
▽산후 비만 부르는 전통 산후조리=지나치게 움직이지 않으면서 잉어, 가물치
등 온갖 음식만 듬뿍 먹는 현재의 산후 조리법은 평생 비만의 원인이 된다는 데 문제가
있다.
박용우 박사는 “임신 때 급격한 체중의 변화를 겪고 나서 출산 후 3개월 동안
체중의 기준점을 다시 조정하는데 이때 너무 많이 먹으면 평생 비만의 원인이 된다”고
설명했다.
즉 뇌의 시상하부는 식욕, 포만감 등을 조절해 체중을 유지하는데 산후 조리 때의
적은 운동량과 많은 식사량을 리세팅해 버리면 평생 비만이 고착될 수밖에 없다는
것.
▽생활환경의 변화에 맞춰야=양 한방 모두 이제는 여름철 산모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뻘뻘 땀을 빼는 것은 ‘미련의 극치’라고 말한다.
땀을 내는 것은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자연스러운 반응이지만 억지로 땀을
내거나 발한작용을 막으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
김상우 한의학 박사는 “이불을 쓴 채 땀을 흘리는 것은 사우나에서 땀을 흘리는
것과 비슷한데 체력이 떨어지고 부종이 더 심해진다”고 설명한다.
김 박사는 “이전에는 쪼그려 앉아서 머리를 감을 수밖에 없어 임신 막달이나
출산 직후 머리를 감으면 복압이 증가해 여러 가지 부작용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이전에는 통속에서 목욕을 했기 때문에 감염 우려가 있었지만 요즘에는 샤워가
있다.
김 박사는 “산후 조리법은 한방 이론에 민간요법이 혼재됐는데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추종하기 때문에 시대에 맞지 않는 것이 많다”고 설명한다.
그는 “한방에서는 산후조리를 가리킬 때 산후조섭(産後調攝)이라는 말을 쓰는데
이는 생활환경의 원리에 따르라는 뜻”이라면서 “생활환경이 바뀌면 조리법도 바뀌는
것이 원칙인데 그러지 않아 오히려 산모에게 해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모유수유, 최고의 산후조리법
‘모유 수유는 최고의 산후조리.’
산부인과 전문의들은 산모가 모유 수유만 제대로 해도 몸의 회복과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고 입을 모은다.한양대 산부인과 박문일 교수는 “모유를 먹이면 이 과정에서
자궁 수축 호르몬 등 유익한 물질이 듬뿍 분비되고 생식기 감염 빈도가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또 아기에서 젖을 먹이면 저절로 다이어트가 되므로 음식을 골고루 먹으면서 칼슘이
든 우유, 철이 포함된 영양제나 철 결핍성 빈혈 치료제 등을 복용하는 것이 좋다는
것.
박 교수는 “요즘 여성 중에는 임신 중에도 다이어트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위험천만하다”면서
“태아 때 영양분이 부족하면 아이가 나중에 당뇨병, 심근경색, 심장병에 걸릴 위험이
급증한다”고 말했다. 태아 때 영양이 부족하면 생존에 위기감을 느껴 어른이 됐을
때 필요한 효소나 단백질, 에너지를 미리 써버리기 때문이다.
산모가 젖이 잘 안 나오면 젖 짜는 ‘유축기’를 쓸 수 있지만 시도 때도 없이
쓰면 정상적 분비 시스템이 방해돼 더 안 좋다.
가급적 젖꼭지를 통해 젖을 먹이도록 하며 젖을 빨면 엄마와의 피부 자극이 이뤄져
뇌 발달에 도움이 된다.
박 교수는 “최소 6개월은 먹여야 하고 아기가 엄마 젖을 거부하지 않을 때까지는
모유를 먹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이 경우 산모는 직장에서 유축기를 통해 젖을 짜서 냉장고에 보관해 뒀다 아기에게
먹이고, 집에서는 젖꼭지를 물리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