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원에 1cm 키워드려요

"돈 된다." 성장 클리닉 우후죽순

100만원에 1cm 키워드려요

경기 성남시 분당구 A초등학교의 한 동아리 어린이 10명은 최근까지 한 명도 빠짐없이 한의원에 다녔다. 키를 키우기 위해서였다. 지난해 초 한 아이의 엄마가 아들을 성장클리닉에 보내고 있다고 하자 엄마들이 경쟁적으로 자녀를 한의원에 보낸 것.

대부분 엑스레이를 통한 성장판검사나 혈액검사, 모발검사 등 10만원 안팎의 검사를 받고 한 달 치 20만~50만원인 한약을 몇 달간 복용했다. 한약은 비만 치료, 성장 치료 등을 병행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3개월 당 200만 원인 선불을 내고 1주에 두 번 키 크는 운동을 받은 아이도 있었다.

“못 생긴 것은 용서가 돼도 키 작은 것은 용서가 안 된다는데 나중에 아이들로부터 원망을 받을 수는 없잖아요?”

“큰 기대는 안 해요. 그래도 키 크는 기간이 정해져 있는데 500만원 정도는 내 아이를 위해 써도 되지 않을까요?”

서울 강남권과 목동, 분당 등 중상류층에서 ‘성장클리닉 열풍’이 불고 있다. 이들 지역 외의 일부 서민은 키가 작은 자녀를 바라보며 “부유층은 돈으로 자녀의

키를 키운다고 하는데 부모가 못나서…”하고 한숨을 내쉬기도 한다.

이런 현상의 배후에는 상술로 무장한 성장클리닉이 똬리를 틀고 있다. 성장클리닉이 우후죽순으로 생기면서 자극적인 마케팅을 통해 수요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성장클리닉의 대부분은 한의원이다.

인터넷 포탈 네이버나 다음 등에서 ‘성장클리닉’으로 검색되는 사이트는 거의가 한의원이다. 돈을 받고 사이트를 소개하는 ‘스폰서 링크’나 ‘파워링크’에 올라와 있는 성장클리닉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2cm 키우는데 200만원’ ‘초경(初經)을 늦춰 아이를 롱다리로!’ ‘우리 아이 10cm 키우기 100일 작전’ 등 의학적으로는 허무맹랑하지만 부모가 솔깃해할 자극적인 문구로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심지어 어떤 한의원은 미국의 사설 검사기관에서 한약의 성분검사만 받아놓고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치료 효과’를 공인 받은 것처럼 속이고 있다.

1990년대 한의대의 인가 남발로 한의사가 급증한 데다 한의사들이 더 이상 보약 중심의 기존 치료법으로는 생존하기 힘들게 되자 수익이 비교적 확실히 보장되는 성장클리닉 쪽으로 몰리고 있는 것.

대부분의 성장클리닉에서는 ‘성장단’ ‘성장탕’ 등의 한약 처방과 침, 부황, 뜸 등의 한의학적인 방법을 쓰고 있다. 이밖에 한의원의 특성에 따라 기력 보강, 근기능 치료, 해독치료, 추나요법, 소아성장마사지 등 다양한 방법이 병행된다.

성장클리닉은 검사비와 약값만 해도 어린이 1명에 한 달 25만~50만원을 벌 수 있다. 환자 1명에게 1년 치료를 하면서 운동요법, 추나요법 등을 병행하면 2000만원은 거뜬히 받을 수 있으니 확실한 ‘수입원’인 셈이다.

대한한의사협회 김상우 학술이사는 “키 크기에 대한 환자의 욕구가 많아지고 최근 의료계의 불황으로 인해 이러한 경향이 심해진 것 같다”며 “일부는 한의학의 원리에 반하고 있으니 한의협 차원에서도 어느 정도의 자정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대부분의 한의원은 X-Ray나 초음파검사, 피검사 등 양방 방식을 기본으로 진단하고 자세영양검사, 추나검사 등 한방 방식을 곁들인다. 그러나 치료를 할 때에는 한방 방식을 쓴다.

자녀를 성장클리닉에 보냈지만 아무런 효과를 못 봤다는 성 모씨(43· 서울 서초구 서초동)는 “한방 성장클리닉이 돈이 되는 곳을 찾아 양한방을 넘나드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키가 크든 크지 않든 치료의 효과와 어떻게 연관됐는지 소비자가 알 수 없기 때문에 이런 상술이 활개를 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연세대 의대 소아내분비내과 김호성 교수는 “양방으로 진료하고 한방으로 치료한다는 것이 납득이 되지 않는다”며 “얼마나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치료를 하는지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특히 한의원의 양방 기기를 이용한 진단은 법적 다툼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다. 지난해 서울고등법원은 한의원이나 한방병원에서 CT를 비롯한 진단기기를 사용하는 것은 한의사의 진료범위를 벗어나기 때문에 의료법 위반이라고 판결했고 한방 측은 이에 대해 헌법소원을 낸 상태다.

이에 대해 한의협 김상우 이사는 “한의사는 자신의 고유영역에 한해서 필요한 진단기기를 사용하며 필요 시에는 방사선과에 의뢰해 내용을 판독하고 활용한다”며 “전문성에 대한 의심은 있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취재진이 접촉한 학부모는 대부분 성장클리닉의 효과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서울 송파구 가락동의 문 모씨(42)는 “아들을 두 번이나 한의원에 데려갔지만 효과가 없었다”며 “주변에서도 열이면 예닐곱은 효과를 못 봤고 나머지도 치료 효과 때문에 큰 것인지 자연스럽게 큰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자녀의 극심한 스트레스도 문제. 문씨와 분당의 김 모씨(40) 모두 “자녀가 성장클리닉에 다니면서 중압감 때문에 되레 키가 안 자라는 듯해 치료를 멈췄다”고 말했다.

김호성 교수는 “상당수 한의원에서 초경을 늦추는 방식으로 성장치료를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며 “인체의 자연스러운 성장과 조화를 중시한다는 한방에서 이런 무리한 치료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치료법은 뼈를 빨리 늙게 만들어 성장을 일찍 멈추게 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국제소아정형외과학회 이석현 회장(동국대 일산병원 교수)은 “성장클리닉들은 자녀 앞에서 이성이 마비되는 한국 부모의 특성을 교묘히 이용하고 있다”면서 “아이들의 키는 유전적으로 정해진 한계 이상으로 클 수 없으며 이는 서로 비슷한 환경에서 사는 마사이족은 173cm이지만 피그미족은 140cm 밖에 안 되는 것만 봐도 금세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정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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