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이여 행복을 얘기하자
왜 모두들 조용할까. 온라인에서 의사의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낮다는 조사결과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의사가 여론몰이 식 공격을 받고 있는데도 ‘이건 아니다’라고 맥을 짚어 말하는 사람은 없을까. 발단은 교육인적자원부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최근 발간한 ‘미래의 직업세계 2007’에서 의사가 직업 만족도가 낮다고 나온 데에서 시작됐다. 조사팀이 국내 170개 직업에 종사하는 남녀 4343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의사와 모델의 직업 만족도가 최하위로 나온 것. 온라인은 들끓었다. 조사결과에 대해 초딩, 중딩, 고딩까지 모여들어 “의사가 제 직업에 만족 못 하는 것은 배부른 소리”라고 비난했다. 한국 사회의 천박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한 모습이다. 남들이 선망하는 자리에 가서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해야 하며, 그렇지 않다고 여기면 안 된다는 단순한 논리는 ‘배 아픈 소리’, ‘평등 강박주의’일 따름이다. 그러나 이번 조사가 근원적 한계를 갖고 있지만, 다른 차원에서 보면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직업 당 20~30명을 조사해 직업 만족도의 순위를 매길 수 있을지는 논외로 치자. 결과를 깔아뭉개기보다는 뒤집어 보고 곱씹어 보면 보약이 될 수도 있다. 이번 조사에서 직업만족도 꼴찌로 나온 의사와 모델은 공통점이 많다. 반면, 이번 조사에서 직업만족도가 최상으로 나온 사진작가, 작가, 항공기 조종사, 바텐더 등은 자유로운 직업이다. 항공기 조종사의 경우에도 자동항법장치의 등장에 따라 스트레스가 과거보다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많은 의사가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한국의 의사들은 행복에 대해 배우지 못했고, 행복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다. 행복이 어디서 나오는지 넓게, 멀리 보기보다는 부모나 주위의 기대에 따라서 달려만 왔다. 게다가 의사는 대학 입학 후 다른 영역의 사람과 교류를 하지 않고 비슷한 사람끼리만 어울린다. 대체로 인문사회학적 소양이 부족하며, 행복이나 가치, 보람 등에 대해 체계적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자본주의 경쟁 구도에서 쳇바퀴처럼 사는 사람이 많다. 미국에서 각광받고 있는 ‘긍정심리학’에 따르면 행복의 전제는 목표의식이라고 한다. 의사들은 부정할지 몰라도, 한국의 의사 수입은 소득 대비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필자가 미국에서 연수할 때 강의 제목이 ‘의사가 중등학교 교사보다 5배 이상 수익이 많은 것이 정당한가’였다. 그때 미국 의사의 평균 연봉은 18만 달러로 교사 평균 3만~4만 달러의 5배 이상인 것은 물론 영국, 프랑스 등의 의사 평균 수입 6만~7만 달러보다도 월등히 많았다. 한국 의사들의 수입은 유럽보다는 미국 의사의 수입과 가깝다. 소득 대비 수익으로 본다면 미국보다도 훨씬 많다고 할 수 있다. 유럽 의사의 수익이 7만 달러 이하라고 하면 많은 의사들이 그러면 무슨 낙으로 사느냐고 의문을 표시하지만, 유럽 의사의 직업 만족도는 우리와 달리 1, 2위를 오르내린다. 한 의료전문 변호사는 “유럽에서 의사들에게 물어봤더니 사람을 치료하는 보람을 느끼는데 왜 행복하지 않을 수 있느냐고 대답했다”고 전했다. 주어진 여건 속에서 환자를 치료하고 환자로부터 존경받는 데에서 행복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의사들도 이제는 행복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 의대 재학 때부터 어떻게 하면 행복한 의사가 될 수 있는지, 그것을 위해서는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야 한다. 어차피 사회의 본질은 모순(矛盾)일지라도, 그 속에서 자신이 하는 일의 행복을 찾도록 의사의 보람과 윤리를 깨닫게 해야 한다. 사람을 치료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긍지감을 갖도록 가르쳐야 한다. 인생의 목표는 행복이 아닌가. 환자의 행복을 위한다는 사람이 진작 자신은 불행하다면 이 얼마나 모순인가. 의사가 행복해야 환자가 행복해지고 의사가 행복해야 사회가 행복해진다. 의사들이여, 적어도 오늘은 행복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