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병원, 제2의 황우석 사태?
드디어 불거졌네, 터질 것이 터졌는데, 어, 어디로 가고 있나?" 요즘 의료계 최대 화두인 ‘우리들병원 사건’을 지켜보면서 느끼는 감정이라고나 할까. 한나라당 고경화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우리들병원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기 이전에도 이 병원에 대한 말들은 끊이지 않았다. 경영의 귀재, 의료계의 학벌주의를 극복한 의사라는 찬사에서부터 과잉 척추수술 경향을 부추긴 장본인이라는 비난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에서…. 어떤 이는 노무현 대통령 취임 이후 우리들병원이 고속성장을 했다고 주장하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 이 병원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었다. 이상호 원장은 출판계의 전설적인 베스트셀러 ‘당신의 허리 튼튼하십니까’로 유명세를 타면서 공격적인 경영으로 다른 의사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급속히 병원을 키웠다. 그리고 세계 최대 규모의 척추 전문병원을 지어, 그 자체만으로 우리 의료사에 획을 그었다. 물론 참여정부 출범 이후 성장에 가속도가 붙은 것은 사실이다. 전국에 5개 병원과 16개 계열사를 거느린 데다 제주도에 실버-레저 복합 타운을 건설하고 있으니 규모가 가히 재벌그룹과 맞먹는다고 할 수 있겠다. 이 병원 그룹은 영화 ‘웰컴 투 동막골’ ‘박수칠 때 떠나라’ 등 영화를 만든 자본이면서 2003년 노 대통령의 측근인 안희정씨에게 1억9000만원의 자금을 지원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 와중에서 의료계와 증권가에서 숱한 의혹이 나돌았고, 한나라당 의원들이 잇따라 문제를 제기한 것. 고경화 의원은 우리들병원이 ‘관혈적 척추간판절제술’(AOLD)이라는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수술과 재발률이 높은 내시경 수술로 폭리를 취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수술이 없이도 치료가 가능한 환자에게 고가의 척추수술을 남발해 대한민국이 척추수술 과잉국으로 전락하게 했지만 노 대통령의 비호 때문에 누구도 못 건드리는 성역(聖域)이 됐다고 주장했다. 우리들병원은 즉각 반발했다. 이 병원은 시중의 근거 없는 소문으로 자신들을 악의적으로 음해하고 있다며 고 의원에게 30억원의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이 병원은 AOLD는 선진국의 의대 교과서에도 소개된 치료법이며 대한신경외과학회에서도 이 치료법에 대한 의료급여를 요청한 적이 있다고 했다. 또 500명 이상의 외국인 환자가 방문한 것은 성역이어서가 아니라, 좋은 병원이어서라고 주장했다. 복지부도 고 의원의 주장에 대해 우리들병원을 잘 봐주기 위한 외압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고 의원은 AOLD가 의료논문검색 사이트인 ‘펍메드’(필자가 연수한 미국 존스홉킨스 보건대에서는 학기 초 펍메드 사용법부터 가르친다)의 검색에서 한 건의 논문도 나오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어느 교과서에 이 치료법이 효과적이라고 나왔는지, 신경외과학회에서 언제 AOLD의 급여 적용을 요청했는지 자료를 대라고 되받았다. 같은 당의 이종구, 김양수 의원은 이상호, 김수경 씨의 수도약품 공짜 인수설과 그룹 간 내부거래설 등에 대해 추궁했다. 우리들병원이 수세에 물리는 듯했던 20일 역전의 계기가 터졌다. 대한신경외과학회가 김문찬 이사장과 강삼석 회장 명의로 우리들병원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한 것. 네 문단의 짧은 성명서인데 세 문단은 평어체, 한 문단은 경어체여서 공식 성명서로는 아주 독특한 형식으로 돼 있는데다 김 이사장의 임기가 끝나는 날에 발표해 말들이 무성한 모양이다. 의료계에서는 이 원장이 이번 사태를 신경외과 학회와 정형외과 학회의 대결구도로 몰고 간다는 얘기까지 나돌고 있다. 이런 와중에 척추신경외과학회에서는 이 성명서에 대한 공식 입장을 추후 발표한다고 한다. 필자는 우리들병원 사건의 진실을 낱낱이 모른다는 사실부터 고백해야겠다. 하지만 ‘황우석 과학사기극’이 우리 과학사에 이정표로 남듯, 이 사건 역시 우리 의학사에서 상징적 사건으로 남을 것이라는 점은 확신한다. 이 원장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유명 대학 병원 출신의 의사들은 아무리 나쁜 짓을 해도 누구도 그 어떤 문제를 제기할 수 없지만, 지방대 출신의 의사가 어려움을 떨치고 성공하면 모두가 ‘벌떼’같이 들고 일어나 발목을 잡으려고 한다는 것. 반면 이 원장이 환자를 볼모로 한 졸의(拙醫)일 가능성도 전혀 없다고 할 수 없다. 필자는 이 원장을 몇 번 만났지만, 만날 때마다 잘 생긴 외모와 예의가 넘치는 어법, 필자 같은 어리보기를 다루는 능수능란한 처세술에 감탄했다. 이런 부분이 장점으로 작용해 이 원장이 성공했다고 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황우석 박사에게서 느껴지는 ‘그 남자의 체취’가 나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이 사건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언론의 태도다. 평소 노무현 대통령을 난타하는 것을 상품으로 내세우는 언론도, 반대편에서 조중동과 격전을 벌이는 언론도 한나라당 의원이 노무현 대통령과 관련한 의혹을 제기했고 이 때문에 거액의 소송을 당했는데도 놀랄 정도로 침묵하고 있다. 일부 경제지와 인터넷 신문에서 이 사건을 중요하게 다루는 것과 대조적이다. 조선일보 17일자 정치면에 ‘우리들병원-고경화 의원 충돌’을 짤막하게 소개한 것이 전부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 당선 직후 주위의 만류를 물리치고 우리들병원에서 허리 수술을 받았다. 필자는 당시 의학 기자로는 유일하게 현장에서 취재했다. 당시 많은 전문의들은 “허리 수술은 가급적 받지 않는 것이 원칙이고 자리보전할 정도가 아니라 유세를 다닐 정도인데 왜 수술을 받을까”하고 의문을 던졌다. 그리고 참여정부 출범 이후 무수한 말들이 떠돌았다. 김화중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무회의 때 노 대통령에게 “그 분은 시중에 말들이 많으니 멀리 하시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했더니, 노 대통령이 “그 사람 좋은 사람입니다”고 잘라버렸다는 일부터, 이번에 문제가 된 심평원 신영수 원장의 경질에 이 원장이 관여했다는 얘기까지…. 이런 상황은 의학을 담당한 기자들은 대부분 들어본 적이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언론은 잠잠하다. 참 이상하고 야릇하다. 황우석 사태 때 기자들이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내가 왜 총대 매냐”고 고갱이에서 벗어난 것과 유사하다. 물론 신문사마다 사정이 있을 것이다. 조선일보는 전 편집국장이 이 원장과 절친한 사이여서 의학 담당 기자들이 민원성 기사를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앙일보는 한때 사회부에서 특별 취재팀이 우리들병원의 과잉시술에 대해 취재하다가 최고위급 간부의 지시로 취재를 중지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동아일보와 한겨레신문이다. 동아일보는 2003년 말 척추 과잉 수술을 막자는 ‘척추포럼’이 출발했을 때 사설(社說)을 통해 이 흐름을 격려했던 신문이다. 이 신문에서 이런 중요한 이슈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 한겨레신문은 2004년 2월 우리들병원이 치료비 이중청구, 약값 허위 청구, 분리 기장(記帳) 등의 방법으로 건강보험 부당청구를 해오다 적발돼 벌인 6년간의 소송에서 패소해 6억7900만원의 과징금을 내게 됐다는 사실을 특종 보도했다. 그런데도 이번 사건에는 아무 말이 없다. 우리들병원이 패소했을 때 소송의 변호사가 조중동이 그렇게 사갈시하는 노 대통령과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인데도 조중동도 조용하고, 반대편인 한겨레신문도 조용하니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필자는 이번 사건은 반드시 바로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본다. 지방대 출신이라는 한계를 떨치고 입지를 구축한 의사에 대한 소위 명문대 의사의 시기심으로 결론이 나면 이번 기회가 학벌주의를 타파할 기회가 될 것이다. 그동안 이 원장의 치료법을 비난해온 의사들은 이 원장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하고, 학계를 떠나야 할 것이다. 반면 이 원장이 환자들의 절박한 사정을 이용해 폭리를 취해 왔다면 이 원장 뿐 아니라 김문찬, 강삼석 교수 등 이 원장을 지원해온 의사들도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물론, 한국의 독특한 ‘발목잡기 문화’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언론이 시시비비를 가릴 생각을 아예 않았고 대통령이 거론될 뿐만 아니라 막대한 돈이 얽혀있다는 점 등에서 이번 사태가 황우석 사태와 닮은 점이 많아 꺼림칙한 것은 사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