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외국에서 배우자가 밀회를 즐기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증거물로 내고 이혼소송을 제기하는 사람을 자주 봅니다. 외도 유형이 갈수록 다양하고 대범해지고 있어요.”(변호사 S씨)
“주부에게 ‘예쁜이수술’을 해 줄 때에는 참고로 남편 성기의 크기를 묻는데, 요즘 주부들은 제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애인 것에 맞춰달라고 주문합니다.”(산부인과 전문의 K씨)
한국은 바람난 사회일까.
많은 사람들이 가족의 행복을 제1의 가치로 삼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곳곳에서 외도와 불륜이 일상화하고 있다. 최근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 와 외도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는 것도 이런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일부 윤리학자는 펄쩍 뛸 수도 있겠지만 많은 과학자들은 인간의 바람기에 돌을 던질 수만은 없다고 말한다. 바람기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므로 욕구 자체를 비난하기 보다는 사회나 가정의 유지를 위해 이것을 어떻게 제어하느냐에 지혜를 모아야 한다는 것이다.
성균관대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신동원 교수는 “진화의 산물인 인간은 유전자의 99% 이상이 본능에 관계하고 있으며 이는 의식적으로 막을 수 없고 가치 판단의 대상도 아니다”고 말했다. 바람기도 본능의 영역에 속하며 이를 억제할 수는 있지만 그 자체를 부인할 수는 없다는 것.
진화생물학자들은 동물이 종족을 보존하고 더 우수한 유전자를 전파하기 위해 끊임없이 다른 성(性)을 찾아 왔으며 이것은 인간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한다.
신 교수는 “바람기는 의식적으로 제어하기 힘든 물리적 본능”이라며 쥐의 사례를 소개했다.
쥐 중에 ‘프라리 볼’이라는 종류는 짝짓기 후 암컷이 새끼를 낳을 때까지 수컷이 가정을 꾸리는데 비해 ‘몬타네 볼’이란 종류는 수컷이 성행위에만 관심이 있어 짝짓기 후 그냥 떠나버린다.
과학자들은 ‘가정적 쥐’인 프라리 볼이 짝짓기 할 때 신경전달물질인 옥시토신, 바소프레신이 갑자기 증가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또 교미시 이 두 물질의 활동을 방해하는 약물을 투여하면 암컷이 임신을 해도 수컷이 떠나 가정을 꾸리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두 종류의 쥐 뇌에서 옥시토신과 바소프레신을 수용하는 세포의 분포가 다르다는 것도 알아냈다. 즉 성 행위의 유형은 개별 존재의 마음가짐이 아니라 종의 선천적 특성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내분비내과 의사나 성의학자들은 성(性) 호르몬의 변화가 외도를 유발하는데 일조한다고 설명한다.
전남대 의대 비뇨기과 박광성 교수는 “중년이 지나면 남성은 여성호르몬의 비율이 높아져 예민해지고 여성은 반대로 남성호르몬의 비율이 높아져 활달해지고 성욕이 강해진다”면서 “이 때문에 여성은 ‘약한 남편’에게서 벗어나고자 하는 반면 남성은 아내에게서 상처받은 자존심을 어린 여성과의 관계를 통해 풀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외도일까. 문화인류학자들은 성(性) 문화나 외도의 기준은 민족마다 다르며 상대적이라고 말한다. 많은 국가에서 일부일처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일부다처제를 채택하는 나라가 적지 않다. 심지어 티베트의 일부 유목민과 인도 토다족 등은 일처다부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한 여성이 여러 남자와 상대한다고 비난하지 않는다.
정신과 전문의 김정웅 씨는 “외도를 용인하는 정도는 시대 장소 정치체제에 따라 다르다”면서 “한국은 급격한 사회 변화와 함께 바람기를 통제할 수 있는 사회적 장치와 합의가 깨어져 외도가 급증하고 있고 외도를 보는 시각도 사람마다 달라 혼란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즉 급격한 도시화와 함께 익명성이 확보되면서 외도 기회가 늘었고
△피임술의 발전
△인터넷 채팅과 휴대전화 보급
△향략 퇴폐 문화의 번성
△배금 이기주의의 만연화
△여권의 신장 등이 ‘바람난 사회’를 부추기고 있다는 것.
이 과정에서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 ‘내가 하는 것은 괜찮지만 배우자가 하는 것은 안 된다’ 등 이중적인 성인식이 보편화되고 있다.
신 교수는 “한국에서는 너무나 많은 가치가 섞여 있기 때문에 개인에 따라 외도를 용인하는 정도가 다르며 결국 배우자가 용인하지 않는 것이 외도”라고 말했다.
한편 정신과 의사들은 인격 유형에 따라 외도하기 좋은 사람이 있다고 말한다.
서울대병원 류인균 교수는 “반사회적, 자기애적, 히스테리적, 경계선 인격장애자는 불륜에 빠질 위험이 높다”고 말했다.
자기애적 인격장애자는 자신의 욕구를 채우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며 반사회적 인격장애자는 자신의 쾌락을 위해서 무엇이든 한다. 경계선 인격장애자는 사람에 대한 평가와 기분이 극에서 극으로 치닫기 때문에 한 사람에게 싫증을 내고 곧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곤 한다.
히스테리성 인격장애가 있는 여성의 경우 상대방이 유혹 당하는데 쾌감을 느끼며 정작 성행위에는 관심이 없다. 이들 중 상당수는 외도를 하면서 불감증에 시달린다.
외도도 심하면 ‘섹스 중독’이라는 정신질환으로 발전한다. 섹스 중독은 섹스를 하지 않으면 급격한 불안감과 우울증 등을 겪게 된다. 약물과 상담 등으로 어느 정도는 치료가 가능하다.
▼불륜남성 아내 자궁경부암 '불똥'
‘방귀 뀐 놈이 화 낸다’고 많은 한국 남자들은 자신의 외도 때문에 아내에게 성병이 생겼는데도 오히려 아내에게 화풀이를 한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외도를 한 경우 자신은 증세가 없지만 아내에게만 병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그러나 의사들은 남성의 외도가 아내에게 자궁경부암까지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외도 시 발생하는 가장 흔한 문제가 성병인 트리코모나스. 남자가 트리코모나스라는 기생충을 아내에게 옮길 때 질 분비물이 많아지고 냄새가 난다. 트리코모나스는 라틴어로 털이 달린 기생충이란 뜻. 전체 질염의 10%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흔하다.
남성은 이에 감염돼도 증세가 나타나지 않지만 여성이 감염되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분비물의 냄새가 고약해지고 질 입구에 거품이 생기기도 한다. 여성에게 가려운 증세가 나타나다가 악화돼 따갑기도 하며 소변볼 때 따끔따끔 통증이 생기기도 한다.
이 기생충은 축축한 곳에 잘 살기 때문에 다른 여성이 입었던 속옷을 통해 전염된 사례도 있지만 남편이 옮기는 경우가 가장 많다. 부부가 동시에 약을 먹으면 쉽게 치료된다.
인유두종 바이러스(HPV)에 감염돼도 남성보다는 여성에게만 증세가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HPV는 75 종류가 넘는데 이 중 몇 가지는 남성에게는 아무런 해가 없지만 여성에게는 자궁경부암을 일으킨다. 자궁경부암의 90∼95%는 남성으로부터 옮겨온 HPV가 원인이다. HPV 바이러스는 10∼20년의 시간을 두고 자궁경부암으로 발전할 수 있다.
HPV 중 몇 가지는 곤지름이라고 불리는 성병을 일으킨다.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여성은 성기 주변에 울퉁불퉁한 돌기가 생기는데 남성은 감염돼도 별 증세가 없다. 이 경우에는 수술로 곤지름을 떼어 내거나 약을 발라서 돌기를 없애는데 몸속에 있는 바이러스는 없앨 수 없어 재발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