탯줄혈액 보관하는 것이 좋을까?

주부 정모씨(41)는 최근 늦둥이를 낳았다. 병원은 아이가 만일의 질병에 걸렸을 때를 대비해 보험 차원에서 150만원을 내고 탯줄혈액을 보관하라고 제의했다. 병원측은 “엄마로서 당연한 책무가 아닐까요”라면서 권했다. 그러나 정씨는 친구 사이인 다른 병원 의사가 “돈 아깝게 그런 걸 왜 하느냐”며 말리자 친구 말을 따랐다.

정씨는 요즘 아기의 탯줄혈액을 보관한 다른 산모의 얘기를 들을 때마다 엄마로서의 역할을 다 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들곤 한다.

10여개 탯줄혈액 보관 회사가 그야말로 ‘피 튀기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회사마다 고객의 관심을 끌기 위해 TV 광고, 인터넷 이벤트 등 다양한 판촉전을 벌이고 있다. 이처럼 경쟁을 벌이는 것은 ‘사업’이 되기 때문. 업계 추산에 따르면 현재 전체 신생아의 15∼20%가 탯줄혈액을 보관하고 있다. 그러나 상당수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에 대해 다소 우려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탯줄혈액 은행과 이식=탯줄혈액 은행은 탯줄에서 혈액 줄기세포인 ‘조혈모(造血母)세포’를 80∼150cc 뽑아내 냉동 보관했다가 나중에 아이나 가족이 백혈병이나 특정 질환에 걸렸을 때 이식하는 것이다. 현재 이식을 위해 탯줄혈액을 사려면 800만원 정도 드는 반면 탯줄혈액의 은행 보관비는 한 번에 100만∼170만원 정도. 탯줄혈액 이식은 이전에는 골수에만 들어있다고 알려진 조혈모세포가 탯줄에도 들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에 가능해졌다. 조혈모세포의 양이 적어 주로 어린이에게 쓰인다.

▽탯줄혈액 이식의 장점=탯줄혈액 보관 회사들은 탯줄혈액 이식의 경우 수술 후 공여자의 혈액이 환자의 몸을 ‘적’으로 알고 공격하는 경향이 적다고 설명한다.

골수 이식의 경우 세포벽마다 붙어 있어 면역계가 피아(彼我)를 구별하는 일종의 식별기호인 ‘사람백혈구항원(HLA)’ 6개 중 대부분이 일치해야 이식이 가능하다.

그러나 탯줄혈액 이식은 4개 이상만 맞으면 가능하다는 것. 골수 이식은 현실적으로 골수를 구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탯줄혈액 보관은 만약의 경우 가족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

가톨릭대 의대 내과 김동욱 교수는 “국내에서 골수이식이 필요한 환자 중 절반 이상이 골수 공여자를 찾다가 세상을 뜨는 현실에서 쉽게 채취할 수 있는 탯줄혈액 이식은 ‘백혈병과의 전쟁’에서 유용한 무기”라면서도 “그러나 효과가 너무 과장돼 있다”고 말했다.

▽‘로또 보험’이라는 주장=많은 의사들은 탯줄혈액을 보관했다 실제로 사용할 가능성이 너무 낮아 ‘로또 보험’이라고 혹평한다. 탯줄혈액 이식이 가능한 아이는 백혈병, 재생불량성 빈혈 등 혈액질환과 신경아세포종, 유전적 대사질환 등이 있는 환자다.

이론상 최대 10만명 가운데 7, 8명이 이식의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어린이 백혈병 환자의 60∼80%가 항암제로만으로도 완치되기 때문에 굳이 탯줄혈액 이식이 필요 없다는 것.

게다가 탯줄혈액이 제대로 보관되지 않아 막상 병이 생겨도 이식을 못 받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탯줄은행들은 “골수 이식이 처음에는 백혈병에만 쓰이다가 지금은 각종 장기의 암과 류머티즘 질환, 다발성경화증 등의 치료에 쓰이듯 탯줄혈액 이식도 적용 범위가 넓어질 것”이라고 반박한다.

▽탯줄혈액 이식은 최첨단 시술법?=일부 탯줄은행 회사들은 탯줄혈액 이식이 골수 이식보다 훨씬 진일보한 치료법이고 탯줄혈액의 조혈모세포로 미래의 상당수 질환을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김 교수는 “아직까지 탯줄혈액 이식은 골수 이식보다 성공률이 낮고 적용 대상도 적다”고 말했다.

현재 골수 이식은 한 해 900∼1000건 시행되고 있지만 88년 개발된 탯줄혈액 이식은 국내에서 96년 도입 이후 모두 50여건만 시행됐다.

또 탯줄혈액 이식은 골수 이식에 비해

△회복이 늦으며

△조혈모세포가 환자의 몸속에서 똬리를 틀 확률이 낮은 데다

△재발할 가능성도 높다는 것.

이 때문에 국내에서 탯줄혈액을 이식받은 아이 50여명 중 50∼60%만이 1년 반 이상 살았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반면 골수이식을 받은 사람은 70∼80%가 5년 이상 살고 있다. 고려대 의대 내과 김병수 교수는 “골수 이식이든 탯줄혈액 이식이든 환자를 거의 죽였다가 살리는 방법이기 때문에 뛰어난 효과의 항암제들이 쏟아져 나오면 결국은 사라져야 한다”면서 “탯줄혈액 이식의 용도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또 같은 대학 내과 김열홍 교수는 “향후 특정 장기에 줄기세포를 주입시켜 온갖 질병을 고칠 때에도 탯줄혈액보다는 골수의 줄기세포를 이용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설명했다.

▽과연 안전할까?=탯줄혈액 은행은 15년 동안 혈액을 보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현재 15년 이상 보관할 수 있다는 논문이 나왔지만 이는 이론적인 것일 뿐 5년이 지난 탯줄혈액이 실제 이식에 쓰일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김 교수는 “골수의 경우 2년 이후 세포가 변질될 가능성이 있어 5년이 지나면 폐기한다”면서 “5년이 지난 탯줄혈액의 경우 안전성이 보장되지 않아 의사들이 이식을 거부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가톨릭대 세포유전자치료연구소 오일환 소장은 “보관 상태에 따라 세포가 손상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현재 탯줄세포의 채취, 보관, 이용 등에 대한 관리 감독이 전혀 이뤄지지 않아 문제”라고 말했다.

또 탯줄혈액 이식은 골수 이식보다 큰 장점은 없다고 해도 자신에게 맞는 골수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현실을 감안하면 분명 필요성은 있다.

가천의대 내과 방수미 교수는 “아기의 탯줄혈액을 보관해오다 나중에 가족만이 쓰는 ‘가족 제대혈 은행’ 대신 버려지는 탯줄을 모아 공익 차원에서 보관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한양대 소아과 이영호 교수는 “탯줄을 공적으로 모아두면 백혈병 등의 환자들에게 삶의 빛이 되는데도 이를 국가가 방치하고 있기 때문에 가족 탯줄은행이 융성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공공 목적으로는 메디포스트, 서울탯줄은행, 라이프코드 등 탯줄혈액 보관 회사와 일부 대학병원에서 탯줄혈액을 보관하고 있다. 보관 혈액 수가 8만개가 되면 백혈병 환자의 90%가 이식수술을 받을 수 있고 6만개이면 70∼80%의 환자가 혜택을 볼 수 있다.

울산대 의대 내과 이규형 교수는 “탯줄혈액을 보관한 아이의 형이 백혈병이 걸렸는데 불행히도 형제의 ‘사람백혈구항원(HLA)’이 서로 맞지 않았다”면서 “이때 부모는 다른 아이에게 이식할 수 있는 혈액을 폐기해 버렸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100여만원을 내고 자신의 아이에게만 쓰고 다른 아이에게 쓰지 못하도록 한다면 차라리 보관하지 않는 것보다 못하다”고 주장했다.다만 공공 탯줄은행을 운영할 경우 혈액세포를 보관하기 위해 드는 비용 (한 명당 50만 여 원)은 정부에서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실제 외국에서는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골수 이식을 더욱 활성화하기 위해 골수 기증 운동을 보다 적극적으로 벌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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