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먹는아이, 약물중독 위험 높다
회사원 홍모씨(40)는 요즘 술자리에서 걸핏하면 초등학교 4년생 아들에 대해 ‘자랑’을 한다. 홍씨는 별명이 ‘폭탄제조창’. 점심 반주로 폭탄주 30잔을 마신 적도 있다. 집에서도 아내와 와인 대신 폭탄주를 나눠 마시곤 한다. 그는 최근 아들이 주스에다 콜라를 섞어 마시는 것을 우연히 봤다. 아내는 아들이 콜라에 맥주를 타서 마신 적도 있다고 귀띔했다. 홍씨는 “역시 피는 못 속여”라며 아들을 대견하게 여긴다. 그러나 아이가 어릴적 아버지 흉내를 내 술을 마시면 무의식 중 술에 대해 좋은 느낌을 갖게 돼 청소년기에 술에 빠질 위험이 높아진다. 청소년 때 음주는 뇌 발달을 방해하고 약물중독의 위험도 높인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아이들은 술에 ‘노출’돼 있다. ▽어린이들의 음주실태〓한국음주문화센터가 전국의 초등학교 5, 6년생 1720명을 대상으로 면접조사를 한 결과 52.1%가 ‘술을 마신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 중 13. 3%는 부모가 이 같은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20.5%는 초등학교 입학 전에 음주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초등학생이 함께 술 마신 사람은 ‘부모’(46.3%), ‘친구’(7.1%)였으며 17.7%는 ‘혼자서 마셨다’고 말했다. 청소년들의 음주도 심각했다. 이 센터가 전국 중고생 4373명을 조사한 뒤 분석한 결과 25.8%가 ‘문제 있는 음주자’로 풀이됐다. ▽왜 해로운가?〓술을 접한 시기가 어릴수록 청소년기에 술에 빠질 위험이 많다는 연구결과는 수없이 나왔다. 중추신경은 15∼16세 때 고도로 발달하는데 청소년기의 술은 이를 방해한다. 청소년 때부터 술을 마신 사람이 나중에 ‘필름’이 잘 끊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술을 일찍부터 마신 경우 어른이 돼서 발기부전과 불임 등에 빠질 위험도 높아진다. 또 청소년기에 술을 마시면 담배나 약물에 중독될 가능성도 커진다. 서울시교육청 조사 결과 상습적으로 음주하는 학생일수록 우울 성향이 높았다. 특히 술 마시는 친구들과 사귀게 돼 비행 청소년이 될 우려도 있다.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이번 음주문화센터 조사에서 어린이의 음주는 부모가 술에 대해 관대한 경우 주로 나타났고 29.8%는 부모가 명절 제사 생일 때 권해서 마신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초등학생 자녀에게 ‘음복’ 등을 이유로 술을 권하는 것은 아이의 건강생활이란 관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자녀에게 주도(酒道)를 가르치는 것도 고교 3년생 이후가 적당하다. 어린이나 청소년이 술을 마실 때 일방적인 훈계는 오히려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술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또 부모가 자녀 앞에서 술취한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해야 하며 자녀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이번 조사에서도 부모가 자녀와 얘기를 많이 하는 가정일수록 아이들이 상습 음주에 빠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