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의학과 건강='감기 완전퇴치' 멀기만 한 숙제

 《새 천 년, 의학계는 인류가 왜 늙는지를 밝혀내고 암, 당뇨병 등 수 천 년 동안 인류를 괴롭혀

온 질병을 정복할 것이라는 희망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올해 미국의 기업에 의해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의학의 패러다임이 바뀔 것이며 개인의 유전자파일에 따라 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시기가 올 것이다.

그러나 감기조차 정복하지 못하고 새 바이러스의 등장으로 인류의 생존조차도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울한 전망도 있다. 또 몸의 질병은 정복되는 반면 마음의 병이 중요한 병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 새 천 년엔 미인상도 바뀔 것이며 성형수술의 개념도 전혀 딴판이 될 가능성이 크다. 21세기에 사람들은 ‘멋진 신세계’에서 100여년을 건강하게 살까, 아니면 의학의 비약적 발달에도 불구하고 또다른 질병과 씨름하면서 별로 달라진 바 없는 삶을 유지하게 될까?》

감기는 ‘만병의 근원’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지극히 사소한 질병으로도 여겨지는 두 얼굴의 병이다. ‘감기약을 먹으면 1주일 만에, 먹지 않으면 7일만에 낫는다’는 프랑스 속담처럼, 약을 먹으나 안 먹으나 낫는 시기는 비슷하다.

21세기면 암이나 에이즈 같은 무시무시한 질병도 정복되고, 인간 게놈프로젝트와 같은 어마어마한 유전자지도도 나올 판에 ‘가벼운 감기쯤이야’ 금방 무찌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전문가들의 말은 다르다. 현재 독감의 백신과 치료제는 개발됐고 약효도 나날이 향상되고 있지만 감기 백신과 치료제 개발의 길은 멀기만 하다. 감기 바이러스는 현 인류의 의학수준으로는 결코 죽일 수 없기 때문이다.

▽감기란?〓리노바이러스, 파라인플루엔자바이러스 등 밝혀진 6가지를 비롯해 최소 90여가지 바이러스가 감기를 일으킨다.

감기 바이러스는 몸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상기도(上氣道)의 상피(上皮)세포에 4일∼2주 붙어 산다. 폐렴을 일으키고 감염자를 숨지게하는 독감바이러스와는 달리 인체에 큰 해를 끼치지 않는다. 즉 사람과 공생(共生)하면서 사는 덕분에 쉽게 증식할 수 있다.

대신 감기바이러스는 어떤 약으로도 죽일 수 없다.

시중의 감기약은 모두 고열, 콧물, 기침 등 증상을 완화하는 치료제일 뿐, 바이러스를 죽이거나 쫓는 치료제가 아니다.

1999년 일부 언론에선 “유럽의 의학자들이 한번만 맞으면 평생 감기에 걸리지 않아도 되는 백신을 개발해 동물실험에 성공했다”고 보도했다. 사실이었다면 노벨상감이겠지만 이는 감기와 독감을 구별하지 못해서 빚어진 오보였다.

▽치료제 개발은 언제?〓수천년동안 인간을 괴롭혀온 감기였건만 의학자들이 치료제 개발에 나서지 ‘않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감기가 인명을 위협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성균관대의대 삼성서울병원 감염내과 송재훈교수는 “의학자들은 현재 생명을 직접 위협하고 있는 에이즈 간염바이러스 등의 치료제 개발에 매달리고 있다”며 “20년 내 이 치료제들이 개발되고 다른 바이러스가 창궐하지 않는다면 과학자들이 감기 치료제 개발에 눈을 돌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때부터 감기에 매달려도 21세기 중반까지는 감기치료제와 백신을 개발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감기바이러스의 종류가 원체 많은데다 돌연변이도 잘 하기 때문. 최악의 경우 영원히 감기바이러스를 잡을 수 없을 수도 있다.

▽그 사이 인류는 곪는다〓한방에서 감기의 본딧말은 ‘감사기(感邪氣)’. 즉 나쁜 기운에 반응한다는 뜻이고 몸에 정기(正氣)가 충만하면 걸리지 않는다고 봤다. 면역력이 없을 때 고열, 두통 등 온갖 증세가 나타나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편리하지만 편안하지는 않은 21세기’엔 사람의 면역력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에 감기가 삶의 질을 크게 훼손하는 ‘중병’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본다. 감기가 직접 몸 안에 침범하지 않아도 고열, 염증 등의 2차질환이 심각해질 가능성이 있는 것.

또 감기바이러스 중 특성이 알려지지 않은 것이 돌연변이를 일으켜 인류에게 치명적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바이러스가 언제 어떻게 바뀔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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