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과 웰다잉 사이

신현호의 의료와 법

웰빙과 웰다잉 사이

“지난 16개월보다 어제 오늘 이틀이 저희 가족에게는 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겨진 후 존엄사 할머니 가족은 눈물을

흘리며 제 손을 잡았습니다.

할머니는 2008. 2. 18. 아침 세브란스병원에서 폐조직 검사를 받던 중 폐혈관이

터져 심장이 멈추고 뇌기능 대부분을 잃어 인공호흡기를 낀 채 연명하고 있었습니다,

할머니와 분가한 3녀 1남의 자녀들은 일요일이면 함께 모여 가족예배를 보는 독실한

종교생활을 하였으나, 의료사고를 당하여 중환자실에 입원하게 되면서 가족예배는

생각지도 못하였습니다.

사고 후 주치의로부터 “회복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가족들은

할머니의 평소 뜻을 전하며 “인공호흡기를 떼어 달라”고 하였습니다. 할머니는

3년 전 남편이 심근경색으로 뇌사에 이르렀을 때도 인공호흡기를 달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그 때 “나에게도 안좋은 일이 생기면 기계를 대지 말라”며 단호하게 말씀하신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공호흡기를 단 것은 할머니의 평소 뜻과는 관계없이 병원 측에서

응급상황에 이르자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한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병원 측은 처음에는 “병원윤리위원회를 열어 제거하여 주겠다”고

하다가, 얼마 후 말을 바꾸어 “호흡기를 떼면 돌아가신다. 환자를 돌아 가시게 할

수는 없다”며 가족의 요구를 거절하였습니다. 기대했던 가족들은 당황했고 답답한

나머지 제게 소송을 의뢰했습니다.

말기환자의 연명치료기술발달로 뇌사에 가까운 중환자들이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무의미한 치료를 받으며 죽음의 고통이 연장되고 있는 경우를 드물지 않게 봅니다.

1년가량의 소송 끝에 대법원은 할머니의 손을 들어 주었습니다.

생명권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죽음이 삶보다 나은 분기점을 넘어선 경우에는 인공적

기계장치를 제거하고 존엄하게 죽음을 맞이할 권리가 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16개월

동안 중환자실에서 외롭게 계시던 할머니는 2009년 6월 22일 일반병실로 옮겨지게

되었고, 인공호흡기만을 제거한 채 약물치료는 계속 되었습니다.

일반병실은 마음대로 드나들며 간병할 수 있는 곳이라 가족들은 예배를 비롯해

할머니가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드리고, 팔다리를 주물러 드리며 사랑 가득한 보살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200여일 더 사시다가 2010년 1월 19일 편하게

돌아가셨고, 5년전 같은 날 돌아가신 남편 곁에 합장되었습니다.

우리는 다양한 죽음의 형태를 보게 되는데, 어느 것이 바람직한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죽음도 인생의 일부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사에서 죽음을

생물학적 관점, 즉, 생명의 무조건 연장이 좋은 의료라는 견해는 바꾸어야 할 것입니다.

중환자실에서 감염우려를 이유로 가족과 격리된 채 기계에 의지하며 무의미한 연명을

하다가 혼자서 쓸쓸히 죽는 것처럼 비참한 일은 없습니다. 인생오복에 고종명(考終命,

명대로 살다가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집에서 편안히 숨을 거두는 것)이 속해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죽음의 질을 고민하는 것(웰 다잉)은 곧 최선의 삶을 고민하는 것(웰

빙)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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