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도 한 때 ‘홀딱’... 당신이라고 안 반하나?

아담도 한 때 ‘홀딱’... 당신이라고 안 반하나?

 

정은지의 식탁식톡 (22) / 바나나

지금은 싼 값에 어느 때고 접할 수 있지만, 한때 노란색 길쭉한 과일 다발은 ‘부(富)’를 상징했다고 하지요. 원숭이도 간단하게 껍질만 벗겨 부드럽게 씹어먹는 그 과일, 이젠 원숭이보다 사람들에게 더 친숙한 ‘먹이’가 된 저는, 바나나입니다! 이름만큼이나 부담 없이 먹기 쉬운 저 바나나! 라틴어에서 비롯된 제 이름을 먼저 소개하자면, 바나나 송이(a bunch of bananas)는 ‘손(a hand)’을, 낱개의 바나나 한 개는 ‘손가락(a finger)’을 의미한답니다. 손과 손가락, 바나나의 모양이 딱 그러하지요?

그러고 보니 세계 농산물 무역시장의 ‘보이지 않은 노란색 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죠. 유엔식량농업기구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저 바나나는 세계 농업 생산물 중 밀, 쌀, 옥수수에 이어 4번째로 가장 많이 수확되고 있으며, 1년에 1000억개 이상이 소비된다고 합니다. 2013년 한해 생산된 바나나 무게만 해도 1억7백만 톤에 이르고, 평균적으로 한 사람이 1년간 섭취하는 저 바나나는 무게로 치면 12kg에 달합니다. 보통 1kg에 이르는 바나나 송이(bunch)에 10~12개의 열매가 달려있는 걸로 계산하면, 세계 평균 1인당 낱개 120~144개 정도의 바나나를 섭취하는 셈인 것이죠.

세상에는 1000여개가 넘는 바나나 종이 있지만 현재 세계 주요 식량으로 섭취되고 있는 저는 카벤디쉬(Cavendish)라는 개량된 품종입니다. 제 안에는 원래 검은 빛깔의 납작한 씨가 박혀 있었지만 사람들 편의에 따라 먹기 좋게 씨 없는 바나나로 바뀐 것이죠. 그래도 가만 들여다보면 거뭇거뭇 씨 자국이 있는데요, 지금은 전혀 발아할 수 없는 씨의 흔적이랍니다.

바나나가 유럽에 전해질 당시 16세기에는 저를 ‘아담의 무화과(Adam’s fig)’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발가벗은 아담이 가리고 있던 잎이 바나나 잎과 같게 생겼다면서 선악과는 무화과가 아니라 바나나라는 주장까지 제기됐었습니다. 선악과가 어떤 과일이었는지 실체를 두고 많은 추측이 난무하지만, 에덴동산에 제가 있었는지 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네요.

어찌됐든 많은 사람들이 제 노란 껍질과 하얀 속살의 매력에 빠져 세계주요 식량으로 등극했으니, 굳이 선악과가 아니다고 하더라도 그 명성은 두말하면 입 아프지요. 배고픔을 달래주는 든든한 식품, 다이어트에도 제격, 변비에도 좋더라 등등 저의 건강학적 이점! 제가 이렇게 좋은 이유에는 다양한 과학적인 원리가 작용한답니다.

먼저 장 건강에 왜 좋은지를 설명해볼까요? 요거트와 같은 발효음식에 들어있는 장 건강에 좋은 유익균 프로바이오틱스 아시죠? 제 안에는 올리고당과 같은 탄수화물로 구성된 프리바이오틱스가 들어있는데요. 이는 프로바이오틱스의 먹이가 되어 이 유익균이 건강하게 성장하고 활동할 수 있도록 영양을 공급한답니다. 요거트나 우유 등 유제품이 저 바나나와 찰떡궁합인 이유도 이런 상호작용 덕분이지요. 장내 유산균의 왕성한 활동을 위해 프리바이오틱스가 함유된 식품과 함께 저 바나나를 자주 섭취해 보세요. 더욱이 껍질과 과육 사이에 식이섬유의 일종인 펙틴도 풍부해 변비에도 탁월하답니다.

흔히들 저를 ‘천연 식욕 억제제’라고 하는데요. 다이어트에도 제격인 이유는 저의 전분(녹말)덕분입니다. 탄수화물이 풍부한 음식에는 ‘저항성 전분’이 함유돼 있죠. 저 또한 이 전분이 함유된 덕분에 소화과정의 속도를 늦춤으로써 포만감을 오래 지켜주는 것입니다. 또한 제 안의 저항성 전분은 지방을 없애는 역할을 해서, 식욕은 억제하고 지방은 태우고 일석이조의 다이어트 효과를 지니고 있답니다.

바나나 하면 칼륨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제 안의 칼륨은 혈압을 조절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천연 이뇨제로서 칼륨 섭취량이 늘어나면 나트륨 배출량이 증가한다. 저를 꾸준히 섭취하면 칼륨 섭취량이 늘어나므로, 뇌졸중과 심장질환의 위험률이 감소한다는 연구결과들도 많이 발표됐죠. 비타민 B6도 그 어느 과일보다 풍부합니다. 비타민 B6는 특히 여성들에게 생리로 인한 배나 허리 통증을 완화시키고 흥분을 가라앉히는 효과가 있습니다. 생리 전 증후군 때문에 고통인 여성분들은 그때다 싶으면 바나나 한 개씩 챙겨먹어 보세요. 증상이 조금 나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거에요.

이 뿐 인가요. 저는 여러분의 기분에도 관여를 하는데요. 저를 먹고 난 뒤 왠지 모를 안정감이나 행복감 느껴진 적 없었나요? 제 안에 트립토판이라는 성분이 행복호르몬인 세로토닌의 분비를 자극해 기분을 업 시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저의 과학적인 건강 효능, 하루 한 두 개만 먹어도 충분하답니다. 어떤 전문가들은 3개까지도 괜찮다고 하지만 너무 많이 먹으면 다른 과일에 비해 칼로리가 높아서 주의해야 합니다.

아, 그렇다고 제 속살만 먹고 말면 섭섭합니다. 제 노란색 껍질에 숨겨진 비밀과 용도 알고 보면 껍질도 그냥 버릴 순 없죠! 바나나 관련 통계에 따르면 세계 곳곳에서 바나나를 먹고 버려지는 껍질만 해도 한해 3천만 톤이 된다지요. 농약 잔여물이 걱정이라구요? 껍질 바깥은 깨끗이 씻고, 안쪽 부위를 이용하는 것이니 크게 우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식물 영양분에서부터 치아 미백, 가죽 제품 광택, 피부 관리까지~버리기 전 한번 더 활용하는 지혜! [그래픽 참조] 잊지 마세요~

껍질이 검게 변하는 이유?

저를 냉장 보관하면 껍질이 검게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제가 ‘질식’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10℃ 이하의 저온에 보관하면 제가 숨을 쉬기가 어렵게 됩니다. 저는 껍질이 노란색인 상태에서 계속 호흡작용을 하고 있는데 낮은 온도에서 질식 상태가 되어 껍질이 검게 변하게 되는 것이죠. 맛은 좀 떨어지지만, 먹어도 위생상 아무 문제 없답니다. 다만 바나나 고유의 색과 맛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실온에 보관하는 것이 좋겠지요?

바나나 멸종설?

저도 생각하면 끔찍한 일입니다! 2013년 12월 『네이처』가 세계 바나나 전문가 벨기에 루벤카톨릭대학교 로니 스웨넨 박사와의 인터뷰 및 네이처에 발표된 관련 논문들을 기사화하면서 세계적으로 바나나 전염병의 심각성이 제기 된 바 있습니다. 2014년 미국 CNBC뉴스에서도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이러한 사실이 널리 알려지게 됐지요. 1960년대까지만 해도 저 바나나는 ‘그로스 미셸(Gros Michael)’이라는 품종이 대량 수확됐습니다. 그런데 일명 ‘파나마병’이라 하여 바나나마름병이 강타하면서 작물을 초토화시키고 사람들의 건강까지 위협하면서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이후 이 곰팡이에 내성을 가진 새로운 품종이 태어나게 됐는데요. 앞 전에 언급한대로 '캐번디쉬'라는 품종입니다. 하지만 이내 말레이시아 일부 농장에서 이 품종에서마저 바나나마름병에 관여하는 새로운 균주가 발견되면서 바나나 산업계가 바짝 긴장하게 된 것입니다. 학자들은 이를 ‘바나나마름병균 TR4’라 명명하고 유전자 조작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전세계가 이 바나나 전염병 하나에 떨고 있는 이유는, 세계 곳곳에서 즐기고 있는 바나나가 캐번디시 품종이 유일하기 때문입니다. 이 품종에 전염병이 돋았다간 인간의 건강 및 세계 경제에 재앙이 닥치는 것은 한 순간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에 따르면 아직 그만한 위험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더 큽니다. 그러니 제 전염병 건강 걱정 마시고, 하루 2-3개씩 즐기면서 개인 건강 더 튼튼히 하시길 바랍니다.

참고

Nature 504, 195–196 (12 December 2013),

라이브사이언스닷컴(http://www.livescience.com)_바나나

메디컬뉴스투데이 http://www.medicalnews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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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편_버섯> “날 먹는 순간 당신은 다른 사람이 된다”

20편_감자> 나를 벗기지 마라... 그러면 ‘감자’ 아닌 ‘금자’

    정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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