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물만 빨아먹고... 나를 그렇게 씹지 마라
●정은지의 식탁식톡 (18) / 추잉껌
동물의 원초적 본능이 ‘저작(咀嚼)’에 있다 하더라도,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가 단순히 ‘씹히기 위함’이라면, 그만큼 기구한 운명의 식품이 또 있을까요? 씹히고 씹히다 단물 빠져서야 버려지는 슬픔, 사람들은 알 리가 없지요. 오늘 ‘씹힐’ 작정하고 이 자리에 나온 저는 껌입니다.
불량하게 씹어대다 길가에 함부로 뱉어내는 사람들 때문에 저는 담배꽁초 다음으로 생활환경 오염의 골칫거리가 되어버렸습니다. 아작아작 씹히는 것도 서러운데, 콘크리트 바닥 위에 붙은 채 옴짝달싹 못하는 ‘껌 딱지’의 운명에 처해진 것입니다. 누군가의 발에 끈적하게 달라 붙기라도 하면 된통 욕을 얻어 먹기 일쑤죠. 무엇보다 껌 딱지 떼어 내는 청소부께 귀찮은 존재가 되어 면목없을 따름입니다.
땅바닥, 건물 벽, 의자 등등 어디에 덕지덕지 붙여 놓은 저로 인해 환경은 점차 오염되고 있는데요. 껌 딱지를 떼어내기 위한 작업에 소요되는 노력과 비용은 엄청납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껌이나 껌 포장지 처리에만 연간 2백만달러(22억840만원)의 비용이 든다는 조사결과도 있습니다. 배보다 배꼽, 아니 땅보다 껌 딱지가 더 큰 격이랄까요.
이런 이유로 영국에서는 콘크리트 표면에 붙지 않는 껌을 개발하기도 했다지요. 하지만이렇게 기능성 껌이니 뭐니 이른바 ‘신분 세탁’을 해도 저는 ‘우아한 초콜릿’은 될 수 없나 봅니다. 어느 ‘노는 언니’의 입에서 딱딱 소리라도 나올라 치면 ‘싼티’ 이미지 벗을 수 없어, 저를 그렇게 밖에 이용 못하는 사람들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껌은 씹어야죠. 씹어야 껌이죠. 저도 압니다. 제 운명이 거기까지라는 것을. 껌은 생명 유지에 필요한 영양 식품도 아니고, 더군다나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식품과는 분명히 다르죠. 그렇다고 하찮게 생각하지만 말아주세요. 저 껌이요. 곱게, 단정하게, 유익하게 씹을 수도 있잖아요.
고대 그리스인들은 유향 나무의 송진인 마스티케를 씹었고, 고대 마야인들은 사포딜라 나무의 수액인 치클을 씹은 것이 저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데요.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이 가문비 나무의 송진을 씹은 데서 미국인 존 커티스가 최초 추잉껌을 발명하게 됩니다. 그리고 점차 상용 생산이 되고, 현재의 추잉껌의 모습으로 변하게 됐지요.
사람들이 저 껌을 씹는 주된 이유는 입 냄새 제거와 각성 효과 때문일 것입니다. 밥 먹고 난 뒤 양치를 할 수가 없을 때, 간편하게 저를 찾죠. 식사를 하고 난 다음 20분 정도 무설탕 껌을 씹으면 치태를 제거하고 치아 에나멜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충치나 치은염이 발생하는 것을 예방할 수 있지요. 또한 껌을 씹으면 입안에 침이 고여 있지 않고 계속해서 순환하기 되기 때문에 이가 썩는 원인이 되는 박테리아가 치아에 정착하는 것을 막을 수도 있습니다. 저를 씹으면 그렇지 않을 때보다 10배가량 침 분비를 자극할 수 있으므로 입안이 쉽게 건조해지지 않지요. 침이 마르거나 입안이 건조해서 불편함을 느낀다면 껌을 씹는 것이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미국 국립생물정보센터(NCBI)에 등록된 논문에 따르면 껌은 정신을 맑게 만드는 효과가 있습니다. 턱을 이용해 씹는 동작이 각성반응과 관련이 있는 뇌 부위와 신경을 자극하고 혈류의 흐름을 증가시키기 때문이죠. ‘껌 좀 씹었던 사람들’은 공부는 안하고 놀았던 사람들에게 표현되는 은어잖아요. 그런데 집중력이 높은 사람들을 가리키면 안 되는 것일까요?
미국 세인트로렌스 대학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저는 정신력을 강화하는데도 도움이 되는데요. 특히 집중력, 기억력, 반응속도 등 인지기능과 연관이 있는 능력을 향상시킵니다. 연구팀이 159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어려운 퍼즐을 맞추도록 한 결과, 껌을 씹으며 퍼즐을 맞춘 학생들이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40%정도 뛰어난 수행능력을 보였습니다. 저를 씹음으로써 혈류량이 많아져 뇌로 공급되는 산소가 증가해 뇌 기능이 향상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껌 씹는다’라는 행위가 이렇게 긍정적인 결과를 일으키는지 모르셨죠?
스트레스 받을 때도 껌을 씹어보세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수치를 떨어뜨리는데도 제가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호주 스위번대학 연구팀에 따르면 껌을 씹으면 코르티솔이 감소하기 때문에 불안감이나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습니다. 나쁜 습관을 고치는데도 껌 씹기를 이용해보세요. 손톱을 물어뜯거나 다리를 떠는 등의 습관을 껌을 씹음으로써 서서히 고쳐나갈 수 있어요.
일정 시간 지나면 저를 뱉어내는 것이 원칙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냥 삼키기도 합니다. 특히 어린 아이들은 ‘뱉기의 원칙’을 자주 무시하죠. 실제로 저를 너무 많이 삼킨 탓에 큰 일이 일어난 경우도 종종 있어왔습니다. 껌을 삼키는 습관 때문에 장폐색증, 변비, 복통 등이 생긴 어린이들의 사례가 보고되기도 했죠.
한때, 절 삼키면 무려 7년간 몸 속에 머문다는 설이 나돌았는데요. 껌이 7년 동안 몸 안에 남아 있는 경우는 엄청난 양의 껌을 한꺼번에 삼킬 때라고 하니,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보통 씹다가 삼키게 되면 저는 소화기관을 통해 자연스럽게 내려갑니다. 대개 2㎝ 이하 작은 것들은 무심코 삼키게 되더라도 위를 통과해 밑으로 내려가 배변을 통해 나오게 됩니다. 따라서 저는 다른 물건보다는 훨씬 부드럽기 때문에 몸에 해를 끼치지 않고 배출되지요.
갈수록 저 껌을 잘 안 씹는 사람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급하게 제가 필요한 순간 있지요. 삼겹살 먹은 후 여자친구와의 키스를 하게 된다거나, 중요한 미팅인데 입에 구린내가 느껴진다거나, 장시간 운전을 해야 한다거나 할 때... 그럴 땐 에티켓을 꼭 지켜주세요. 씹다가 아무데나 버리지 마시고, 종이에 꼭 감싸서 쓰레기통에 버려주세요. 잠시나마 입안의 즐거움을 선사한 저 껌을, 한 순간에 땅바닥의 ‘껌 딱지’ 운명으로 하락시키진 말아주세요. 그렇게 해 주실거죠?
□ 계속 씹히는 이유요?
제가 입안에서 침에 의해 녹지도 않고, 기존의 성질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치클이라는 원료 때문입니다. 껌은 각각의 제품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이 치클이라는 기초제와 감미료, 향료, 방부제 등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중 기초제를 제외한 단맛이나 특유의 향을 내는 성분은 뱃속에 들어가면 쉽게 녹아서 배출됩니다. 치클은 위산과 장속의 소화효소를 견뎌낼 수 있는 성분으로서, 보통 사포딜라 나무에서 채취합니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저 껌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사포딜라 나무에서 나오는 원료만으로는 생산이 부족해졌죠. 이에 따라 현재는 천연이나 인조의 폴리머(고분자량 화합물)를 대부분 사용하고 있습니다.
□ 얼마나 씹는 것이 좋을까요
사람들마다 저를 씹고 뱉는 시간은 다릅니다. 거의 대부분의 껌이 10~15분 정도 씹게 되면 그 맛과 향을 잃게 됩니다. 입안 가득 저 껌의 좋은 기능을 취하시려면 20분 정도씹기가 적당합니다. 이후 뱉는다 하더라도 입안에 향은 최대 한 시간 정도 머물러 있을 수 있습니다. 오래 씹으면 턱 관절에 이상을 일으킬 수 있으니, 입안에 계속 저를 넣고 있지 말아주세요. 더욱이 평소에 편두통이 있는 사람도 절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씹을 때 두개골과 턱이 만나는 턱관절 부위에 압력으로 두통이 유발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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